인문학의 부재

청년농민 농정수기 공모 수상작 - 최우수상

  • 입력 2019.08.18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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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청년농업인연합회는 청년농민들이 바라는 농정을 주제로 수기 공모전을 열고 우수한 수기들을 시상했습니다. 대산농촌재단이 후원하고, <한국농정>은 수기 심사에 참여했습니다. <한국농정>은 지난달 31일 열린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을 포함, 수상작 4편을 매주 지면에 담습니다.

청년농민 현윤정(강원 홍천)

청년농민연합회 농정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농민 현윤정씨는 부모님이 계신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해 친환경 소농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강원도 홍천 서면 모곡리로 귀농을 결심하고 내려온 지 만 3년째이다. 나는 농민으로 살기로 결정하면서 친환경 농업을 하는 소농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땅을 살리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농촌 생활, 농업이야 말로 내 사는 방식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그대로다. 아마도 젊은 시절 농촌목회 활동을 하시면서 수입농산물은 반대하고 GMO의 위험을 강조하시며 농업 농촌이 국가의 근간이 됨을 상기시키고 농민이 자긍심을 가지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을 주장하신 부모님이 가장 큰 영향을 주셨던 것 같다. 물론 사랑하는 나의 모교 풀무학교에서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들 말하는 부모님 카드를 가지고 귀농했지만, 귀농정착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농지였다. 농민이 되기 위해서는 농지가 1,000제곱미터 이상이어야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농촌에 정착하셨으나 농민은 아니므로 농지가 없었다. 모곡에 있는 땅을 임대하기 위해 수소문했더니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무상임대를 해줄 터이니 맘껏 짓고 싶은 농사를 지으라고 하셨다. 다만, 임대차 계약서는 써줄 수 없다고 하셨다.

경영체를 등록하기 위해서는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내 명의의 농지가 필요하다. 가까스로 농지는 있지만 공무원이라 농업을 하고 있지 않은 옆 동네 동막리에 위치한 친구 아버지의 농지를 300평가량 임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전문 농업 경영인이 되었다.

집 가까운 곳에 농지를 임대하고 싶어서 농지은행에 문의를 해봤다. 청년들을 위해 농지은행에서 배려를 많이 해준다고 여러 번 들었던 바가 있었기 때문에 내심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농지은행에 나오는 땅은 너무 외진 곳에만 있었다. 강촌, 가평과 가까운 탓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펜션을 짓다보니 땅값이 많이 오른 탓도 있을 것이다. 인근 마을에 토지매매가 한 건 있어 알아보았더니 절대농지 평당 40만원에 판매한다고 농지은행에 올라온 건이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농지는 더 이상 농산물을 생산하는 1차 산업의 근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잘 가지고 있다가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부동산 혹은 노후를 위한 재테크가 된 것만 같았다. 창농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큰 난관은 토지이다. 왜 청년들은 땅을 일구지 않고, 보조금 타서 가공이나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지 묻는 것이 야속한 이유다. 땅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산이 아닌 가공으로 쏠리고, 가공을 했기 때문에 더 잘 팔아야 해서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무너지고, 농지가 투기와 자산의 대상인 한반도에서 농지에 대한 대책을 논하기는 힘들다. 다만 현재의 제도로는 청년들이 농지에 접근하기는 너무 어렵다. 부재지주의 농지를 국가가 최대한 사들이고,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갈 수는 없을까? 농지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용권을 주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친환경의 길, 너무 많은 장애물

나의 농사는 주로 엽채를 기르는 텃밭과 여름에 쪄서 팔 찰옥수수를 심는 것이다. 물론 농약을 치지 않으니 풀과의 전쟁은 혹독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좀 더 환경에 좋은 방법이 뭘까 궁리하다 농민으로 살기 중 두 번째 난관을 만나게 된다. 비닐멀칭은 환경에 좋지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업용 비닐을 포함한 대부분의 비닐은 재활용이 어렵고 토양과 하천에 오염을 유발해서 처리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풀과의 전쟁에 이길 자신이 없던 나는 그나마 친환경 비닐을 찾아냈는데, 우리 지역에는 아직 보조사업이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 대량으로 구입하는 작목반 위주로 판매를 해서 나 같은 소농은 대상이 되기도 어려웠다. 얼마 전부터는 친환경 다기능성 종이 멀칭지를 시도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는 블로그도 눈에 띄었다. 멀칭 효과가 우수하고 토양에서 완전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종이 멀칭지는 재생지를 활용해서 자원순환이 가능하고,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수거할 필요가 없어 노동력도 절감된다고 한다. 오염을 줄일 뿐만 아니라 토양도 살찌우게 된다고 하니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이렇게 농민의 어려움도 해결하고 환경에도 좋은 제도에 지원사업이 생기고, 나 같은 소농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농업에 뛰어드는 청년농민들은 농업과 자연의 소중함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땅 주인이 농약을 치라고 해서, 부모님이 해온 방식을 거스를 수 없어서, 그리고 소농이고 아직 작목반이 없거나 조합원이 아니라서 그런 초심을 지킬 수 없을 때가 많다. 환경을 지키면서 농민도 자연도 건강한 농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함께 변하면 좋겠다.

스스로의 가치를 외면하는 농민들

모곡 2리는 총 132가구 262명이 모여 산다. 그 중에 20~30대는 대략 10명 내외, 40대는 20명 내외 정도 된다. 절대 고령화에 접어들었다. 65세 미만은 너무 젊어서 노인정에 발도들이기 어렵다. 귀농하는 젊은이들은 점점 더 어울릴 곳 없이 떠돌게 된다.

젊은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면 당연히 일꾼이 되는데, 나 역시 마을 사무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3월쯤 마을에서 개발위원회가 조성되었다. 폐비닐을 더 이상 수거해주지 않아서 자체적으로 치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작년까지 부녀회에서 수거하여 140여만 원의 이익을 내던 사업이 사라지고 폐비닐을 처리해야 하는 이 상황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긴 회의 끝에 나온 방안은 마을에 사용하지 않는 옛 사격훈련장에 폐비닐을 쌓아놓는 것이었다. 어렵게 용기 내어 한 말씀 드려봤다. “앞으로도 계속될 문제일 텐데 생분해 비닐사용이라던가 짚으로 덮는 자연농법이라던가 하는 폐비닐에 대한 대책을 저희 안에서도 조금씩 세워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단칼에 “그건 정부에서 정하면 될 일이고!”라고 거절당했다. 이 후 개발위원회 회의내용은 부녀회의 수입이 사라진 데에 대한 안타까운 위로의 말들로 채워졌다.

아직도 농촌 들녘에서는 비닐이나 쓰레기를 태우는 농가를 보게 된다. 지난 산불 사태 이후로 다들 경각심이 높아지다 보니, 집에서 몰래 숨어서 태우는 경우도 있다. 환경에도 좋지 않고 화재의 위험도 있다. 농촌에서 그동안 쓰레기는 그냥 태우는 것이었다. 그런 어르신들에게 친환경 종이멀칭이나 환경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순간 나는 고립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생산자이기도 하지만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농민수당은 우리 농민이 농사를 지어 만들어내는 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이라고 들었다. 참 좋고 당연한 제도이다. 그렇게 대접받아야 하는 우리 농민이 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하고 있을까. 어르신들과는 왜 환경에 대한 얘기, 식량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 걸까. 단지 세대 간의 거리감일까.

지금 농촌엔 인문학이 필요해

쓰레기 처리 문제로 시작된 나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농업기술교육이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거창하게 인문학이라고 했지만, 우리 농민들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농민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의 농민보다 생산기술과 생산력이 뛰어난 기술자이다. 유럽 같은 농사짓기 좋은 자연조건과 기후를 가진 나라의 농민들과 비교할 때 어려운 환경에서 예술 같은 농산물을 생산해 내는 장인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농민’이라는 직업에 대해 ‘농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배운바가 없다. 유명한 학자들은 농민의 중요성과 새로운 농민의 상에 대해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배운 양반들의 알아먹긴 힘든 얘기일 뿐이다.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농민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식량주권에 대해, 환경을 지켜야 하는 농민의 책임감에 대해 현장에서 소통되는 언어로 말하는 교육이 절실하다.

이런 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다. 우선 청년창업농 지원사업 대상자들은 의무교육을 들어야 하는데, 이 교육에 이런 내용을 필수 교육으로 배정해야 한다. 그리고 전남에서 만드는 농민수당 조례 안에 기본 교육이 들어가 있다고 들었다. 마을 단위로 농민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농민수당이 시행된다면 농민들은 꾸준히 교육을 접하게 되고, 이러한 교육이 반복된다면 미래의 농촌 모습은 많이 바뀌게 될 것이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서 트로트에 맞춰 체조를 하면서 식량주권에 대해 토론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신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시도는 결국 기성세대와 청년, 귀농인과 원주민의 거리를 줄여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낼 것이다.

토지를 투기나 소유의 대상이 아닌 농업의 생산수단으로 경작자에게 기회와 권리를 주는 것, 식량주권을 지키는 농업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농촌은 더 이상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보존해야 한다는 것,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농민에게는 환경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농촌을 만드는 것.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농촌 문화가 정착될 때, 더 많은 청년이 농업과 농촌을 찾게 될 것이고 우리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농촌은 우리의 미래다. 농산물은 국가의 식량주권의 근본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은 도시인들에게 쉼과 회복의 터전이 될 것이다.

농민은 농어촌을 가꾸며 지키는 이들이다. 더불어 국민의 식량을 생산하고 건강을 돕는 이들이기도 하다. 농민들에게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는 철학적 사고와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거짓과 부정에 녹아들 것이며 점점 더 늙고 쇠약해질 것이다.

그 누구라도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기술’, 흔들리더라도 지켜나갈 가치와 철학을 추구하는 인문학의 부재가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각자의 ‘만족’을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청년농민 현윤정씨가 자신의 밭에서 농작물을 돌보고 있다.
청년농민 현윤정씨가 자신의 밭에서 농작물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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