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농업회의소 기초설계 이대로 괜찮나

화성시 사례로 본 지역회의소의 구조적 문제

  • 입력 2019.08.18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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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매년 정부 시범사업을 통해 시군 단위의 농어업회의소 수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화성에서도 농어업회의소 설립이 추진돼 창립총회가 열렸다. 대다수 언론보도와는 달리 창립총회는 실제로 파행됐고, 화성시농어업회의소는 출발선에 제대로 서지 못했다. 이번 사례는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지역 농업회의소 구조의 틀이 지역의 상황이나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농어업회의소들은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설립을 결의한 강원도 정선군을 제외하면 모두 농림축산식품부의 시범사업을 통해 설립이 추진되는데, 이 과정에서 컨설팅을 위탁받은 기관이 제시하는 공통의 구조를 참고해 설립되고 있다.

화성시농어업회의소는 지난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제5차 농어업회의소 공모사업에 화성시가 선정되면서 첫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2년여 기간 준비 끝에 설립추진단은 지난 6월 25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날 과반에 가까운 농민들이 공개된 정관안 내용에 반발하며 총회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았고, 사회자는 거수를 통해 정관 승인을 시도하다 결국 무산됐다. 사실상 창립총회는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정관이 논란이 된 이유는 농민들이 회의소 회원의 권한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창립총회 이후 농어업회의소의 의사결정은 대의원총회가 맡게 되는데, 총회 전 대의원 선출 과정에 대다수의 농민들이 참여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성을 매듭짓고 창립총회가 열린 상황이었다. 대의원이 정상적인 절차로 선출되지 못한 상태에서 공개된 정관은 ‘회장 및 이사 등 주요 임원진을 대의원총회의 결의에 의해 임명한다’고 규정해 반발을 불렀다. 이번 사태는 초기 설립을 주도하는 지자체가 의사결정 기구 설립에 대해 깊은 고민이 없을 경우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현 농어업회의소 체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의원을 제대로 선출한다 해도 과연 이 대의원단이 모든 농민의 의사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의원은 100명 이하의 규모에서 그중 50%를 읍·면지역 대의원으로 구분해 선출하게 돼 있다. 지역 대의원 선출은 각지에서 대표 작목을 생산하는 농민 중 영향력을 가진 자, 혹은 규모가 큰 농민단체 출신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의원 구성에 있어 다양성을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예, 친환경, 가공 등에 종사하는 소수집단은 분과위원회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적은 비중조차 차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여성농민의 참여 역시 구체적으로 보장돼 있지 않다.

또 하나 우려되는 부분은 농협의 영향력이다. 창립총회에서 공개된 예산안에 따르면 화성시농어업회의소의 1년 수입은 1억6,000만원으로, 이는 시·군 단위 농어업회의소 가운데서는 최고 수준이다. 연간 9,000만원이나 되는 지자체 지원금도 상당히 높은 수준인데, 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특별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농협의 회비다. 특별회원의 연회비는 농협중앙회 화성시지부가 500만원, 지역농수축협이 각 300만원, 산림조합이 200만원으로 농협이 내는 회비만 연 4,600만원에 달한다.

지방재정법에 따라 현재 지자체의 지원금은 농어업회의소의 인건비로 지출할 수 없지만, 특별회원의 지원이 워낙 강력한 덕에 연 6,600만원으로 책정된 사무국 인건비를 회비수입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농협은 대부분의 농어업회의소가 사용하는 보편적 정관안에 따라 대의원의 최대 20%를 특별회원 자격으로 가져가게 된다. 또 참여 농수축협의 단위수가 16개나 되는 탓에 이사회는 3분의 1이 조합 관련 인사로 채워지게 된다. 다른 지역의 한 농어업회의소 실무자는 “농협은 보통 설립 이후 회의소의 활동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 회비나 임원 비중이 문제라 생각한 적은 없다. 화성시의 경우에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지난달 1일 성명을 낸 화성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는 “관내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활동하는 단체는 회원숫자와 임의조직이란 이유로 배제하고, 연간 수백만원의 회비를 낸다는 이유에서 관내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당연직 이사로 활동할 수 있는 특혜를 줬다”라며 “이 정도라면 농민을 위한 회의소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지역농협조직’을 지자체가 앞장서서 만든 꼴이 되고 만 것”이라 비판하고 회의소 창설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한편 화성시는 총회 이후 임원 선출과 관련된 반발을 수용하고 다시 지역을 순회하면서 대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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