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도 괜찮아요!

청년농민 농정수기 공모 수상작 - 대상

  • 입력 2019.08.11 12:00
  • 수정 2019.08.11 21:04
  • 기자명 박주원(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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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농민 박주원(경기 여주)

청년농민연합회 농정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농민 박주원씨는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여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청년농민연합회 농정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농민 박주원씨는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여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저는 20대에 농업을 선택했습니다. 20대에 농업을 선택한 저를 보고 주위사람들은 2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훌륭한 결정을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제정신이냐며 펄쩍 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은 칭찬해주는 쪽이고 친한 친구나 선후배들은 펄쩍 뛰며 말리는 쪽이었죠. 특히 부모님은 더욱 말리셨죠.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 농사일과 남의 집 농사일까지 해온 전형적인 농부였습니다. 할아버지 또한 해방 전에 이북에서 강원도 산골로 내려와 직접 척박한 땅을 일구어서 농사를 지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고된 농사일을 잘 아는 부모님으로서는 말릴 수밖에 없으셨겠죠.

저 또한 처음부터 농사지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나름대로 공부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국립대학에 장학금 받고 입학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광고 카피라이터나 방송국 PD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마냥 대학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살던 스무 살 5월,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농활이었습니다.

처음 농활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우리 집도 농사짓는데 굳이 다른 지역의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을 왜 해야 하나 생각했고, 집에서도 부모님 농사일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저로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한 선배와 친구들이 농활 가서 신나게 막걸리 먹자며 끈질기게 권유를 하였고 저는 그 말에 넘어가서 농활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집에서 아버지와 농사일 할 때 아버지가 시켜서 억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일 그 자체도 싫었지만 그것보다 아버지의 모습이 더 못마땅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농사일을 시킬 때마다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는 농사일을 해봐야 된다. 그래야 농사일이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나처럼 흙 묻히며 힘든 농사일 하지 말고 번듯한 회사 취직해서 넥타이 매고 시원한 책상에 앉아 일을 해야 된다.” 이것이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입니다.

TV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아버지가 일하는 멋진 모습에 감명 받아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렸을 그 당시 나는 “왜 우리 아버지는 자식에게 자신처럼 되라고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할까? 왜 항상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할까?”하면서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아버지가 되면 자식에게 나처럼 살아보라고 멋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도 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농활 가서 그것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습니다. 농활 하는 동안에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농민과 농촌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토론을 하면서 왜 농민들이 힘없고 가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농민들이 열심히 땀 흘린 만큼 대가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생활이 더욱 어려워져 결국에는 농약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아버지를 원망하고 부끄럽게 생각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 아버지처럼 해 뜨기 전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해 진 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는 농부들이 이 나라의 농업을 지켜가는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농활을 빠짐없이 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농활대장도 하며 농활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대학 다니는 동안 스무 번 가까이 농활을 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숙명처럼 저는 결국 농업을 선택했고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라고 대학까지 공부시킨 아들이 농사짓겠다고 집에 돌아온 것에 속상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화도 많이 내셨지만 이제는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저도 한편으로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농사짓는 아들을 조금은 대견스럽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도 많았지만 이제는 제가 행복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보답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저 역시도 다른 청년농부들처럼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청년농부들과 얘기하다보면 농업을 포기하는 이유가 농업소득이 낮아서가 아니라 의외로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님과의 갈등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농사방식에 대한 의견충돌입니다.

저는 농사를 시작하며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생을 농약과 비료를 뿌리며 관행농업을 해 오신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제가 친환경인증을 받은 밭에 저 몰래 가서 농약을 뿌린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평생 농사일을 해오며 경험으로 터득하신 농사기술이 있었고, 저는 저대로 농업대학에서 배운 과학적인 농사기술에 대해 시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아버지가 모르는 새로운 품목을 재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콘 농사를 시작하였고 그것이 제법 성과를 거두면서 아버지가 저의 농사에 대해서 인정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버지방식으로 농사짓는 품목과 내방식대로 농사짓는 품목으로 구분해서 농장을 운영하는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농업소득에 대한 분배 문제입니다.

저는 농사 시작하고 몇 년 동안 따로 수입이 없었습니다. 농업소득은 전부 아버지 통장으로 들어갔고 저는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께 돈을 타서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과 함께 일하는 농장을 회사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업소득에서 자식이 일한 것에 대해서 소득을 나누어 줘야 하는데 많은 경우 그렇지 않습니다. 자식들은 직장에 출퇴근하는 것과 같이 농장에서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월급이 없습니다. 여전히 청소년들처럼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청년농부들이 많습니다.

저는 제가 운영하는 품목을 부모님과 구분하여 나누면서 그것에 대한 농업소득을 제 소득으로 가져왔습니다. 소득을 가져온다는 것은 지출에 대한 책임도 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득을 제 앞으로 하는 대신 그 품목에 대한 인건비, 자재비등 농사에 들어가는 생산비 지출도 제가 해결합니다. 이전에는 아버지 지시를 받는 직원의 개념에서 이제는 영농계획, 생산, 판매 등에서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농장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세대 차이에 따른 생활방식의 충돌입니다.

부모님과 자식 간에는 당연히 나이 차에 따른 세대차이가 존재하며, 생활습관과 삶의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일단 저의 아버지는 저녁 8시면 주무시고 새벽 4시면 일어납니다. 저는 일부러 아버지와 같은 시간에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옵니다. 그리고 새벽 4시에 일어나면 하루 종일 피곤합니다. 저는 한 달에 며칠은 휴일이 있어야 하고 1년에 두세 차례는 휴가를 가야 합니다. 아버지는 비 오는 날이 휴일이고, 이틀만 농장을 비우면 마음이 불편해 못 견뎌 하십니다. 아버지는 쓰러지더라도 최대한 외부 인력을 안 부르고 본인이 일을 하려고 하고, 저는 인건비가 나가더라도 외부 인력을 고용해 적기에 일을 집중적으로 끝내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농사일을 하며 돈을 벌지만 아버지는 농사일 하는 그 시간이 즐겁습니다.

이상의 청년농부들이 갖고 있는 부모님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승계농업인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청년농부는 그 형태에 따라서 대략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귀농·귀촌을 하는 청년농부, 농촌에 살지만 부모님과 상관없이 농장을 창업하는 청년농부,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을 하는 청년농부가 그 3가지입니다. 따라서 청년농부 육성정책은 이 형태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져야 합니다.

유명한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가면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부모님의 농장을 이어받아 농사짓는 청년농부들도 이렇게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후계농업인처럼 승계농업인 제도를 마련해서 선정하고 그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여 성공적인 영농정착을 지원해야 합니다.

승계농업인들의 첫 번째 애로사항은 부모님과의 갈등입니다.

이 갈등해결을 위한 상담센터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상담센터에는 승계농업인이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 할 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코너를 설치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을 다른 청년농부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지만 지역적으로 고립된 청년농부도 있고, 다른 청년농부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있기에 손쉽게 전화를 하거나 온라인을 통해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상담센터에서 이런 내용의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육을 진행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위한 교육, 승계농업인을 위한 교육, 부모와 승계농업인이 함께 갈등을 해결하는 교육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승계농업인들의 두 번째 애로사항은 가족농의 기업화입니다.

기존의 가족농의 문제는 기업과 같은 논의구조, 소득분배, 업무분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농 운영의 매뉴얼과 모델을 만들어 승계농업인 농가에 전파하고 협약을 위한 캠페인 진행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사는 농촌이, 우리가 일하는 농장이 행복하고 즐거운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구슬땀 흘리며 쌀 자급 대한민국을 만들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농촌의 어르신들! 농촌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농촌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 공부의 목표가 결국 고향을 떠나는 것인 청소년들! 농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도시로 떠나지 못했다며 자의반 타의반 낙오자로 낙인찍힌 농촌의 청년들! 열심히 맞벌이하며 휴가 한 번 없이 살지만 밤만 되면 우리 아이 어떻게 이곳에서 탈출시킬까 고민하는 농촌의 엄마아빠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여기에 살아도 괜찮아”하며 재미있게 사는 농촌을 만들고 싶습니다.

청년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며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하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농촌을 만들고 싶습니다.

도시와 농촌을 가르는 개울이 있다면 청년농부가 그 개울을 폴짝폴짝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돌이 되면 좋겠습니다.

올 여름, 청년농업인연합회는 청년농민들이 바라는 농정을 주제로 수기 공모전을 열고 우수한 수기들을 시상했습니다. 대산농촌재단이 후원하고, <한국농정>은 수기 심사에 참여했습니다. <한국농정>은 지난달 31일 열린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을 포함, 수상작 4편을 매주 지면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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