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지어도 팔 곳이 없다”

16년 친환경농사 지어온 제주 농민 부부 극단적 선택
“경쟁력 중심의 정부 농업정책 바꿔 재발 막아야”

  • 입력 2019.08.11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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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16년 동안 친환경농사를 지었던 제주도의 농민 부부가 지난달 31일 세상을 떠났다. 철저히 시장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경쟁력 중심의 정부 농업정책 속에서,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친환경농업계는 비통한 분위기 속에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 중이다.

고인들은 생전에 제주도에서 콩과 단호박을 유기농법으로, 감귤·감자·메밀 등을 무농약 농법으로 재배했다. 지역 영농조합법인을 통해 생산한 먹거리들을 팔았다. 판로를 찾기 위해 고심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새로운 판로로서 언급되는 생협도, 급식체계도, 대형마트도,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 곳은 없었다. 고인들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유기농 감자 70톤, 마늘 10톤, 양파 30톤, 단호박 10톤 등을 팔 곳을 못 찾아 고심했다.

고인들과 같은 영농조합에 몸담은 농민 A씨는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판로를 찾을 수 없기에 빚은 쌓여만 갔고, 그 과정에서 돈을 빌려줘도 다시금 빚이 늘어만 갔다”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팔 곳을 찾아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태풍으로 인해 메밀밭이 망가졌고, 감자·무·당근·배추·대파 등은 농사가 잘 됐지만 팔 곳이 없어 폐기해야 했다. 올해 봄엔 2주일 동안 비가 내려 고추가 다 병들었고, 다른 농산물도 판로가 없어 임대한 냉장고에 그대로 쌓여갔다.

A씨는 “급식체계와 생협, 백화점 등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친환경농가는 전체 농가 중 소수다. 나머지 농가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친환경농산물 국가수매제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친환경농업계는 지난 5일 고인들을 애도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을 통해 친환경농업계는 “(고인들의 죽음에는) 안전장치 하나 없이 시장논리에 맡겨진 농산물 유통체계를 비롯한 경쟁력 중심의 정부 농업정책이 있다”며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겠다고,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현실은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고 일반농산물로 판매하거나 갈아엎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는 현실”이라 비판했다.

친환경농업계는 이어 “농부로서 가치철학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도 그 농부가 살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으로 내모는 이 모순적인 구조를 바꿔내야 한다”며 “생명을 가꾸는 농민이 살 수 없는 환경은 결국 식량주권을 상실한, 먹을거리 식민지 나라로 가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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