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매시장과 농민

  • 입력 2019.08.11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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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 대아청과 매각 사태가 사방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아청과의 그간 열악한 처우와 무책임한 매각결정, 상인출자법인이라는 정체성 포기에 중도매인들이 규탄 목소리를 높인 데 이어 출하자단체 또한 수익 환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그마치 564억원. 연쇄적인 가격폭락으로 출하자와 중도매인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시기에 대아청과 경영진들이 법인을 매각해 받은 돈이다. 길길이 날뛰는 출하자와 중도매인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대아청과 이정수 대표는 최근 위로금조로 중도매인들에게 8억원, 대아청과 직원들에게 7억원을 지급해 갈등을 봉합했다고 한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출하자단체(한유련)에도 얼마간의 위로금 지급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마무리해도 좋은 것일까.

액수가 적절한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산지수집상 조직인 한유련에 얼마간의 돈이 주어진다 한들 농민들에게 혜택이 분배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도매법인에 고혈을 빨려온 전국의 농민들은 위로를 구할 길이 없다.

한유련도 위로금보다는 위탁수수료 인하와 출하장려금 확대 등 거시적인 수익환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 정도 장치라면 단편적인 위로금보다는 농민들에게도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실현가능성이다. 기존의 수익구조를 보고 거액을 들여 대아청과를 인수한 호반그룹이 자발적으로 위탁수수료 인하나 출하장려금 확대 같이 제 수익을 깎아먹는 조치를 취할 리 만무하다. 농업에 엄청난 애정을 가진 기업이라면 모를까 상대는 농업의 농자도 모르는 호반그룹이다.

자발이 안되기 때문에 강제해야 한다. 가락시장엔 거래제도 다변화, 독과점 타파를 중심으로 하는 시장 개혁의 설계가 이미 짜여져 있다. 독과점이 깨지고 경쟁이 활발해지면 위탁수수료는 낮추기 싫어도 낮춰야 하고 출하장려금은 높이기 싫어도 높여야 한다. 강제적 환원을 통해 도매법인의 수익을 적정 수준으로 돌려놓으면, 매각이나 현금배당으로 농민들의 돈이 엉뚱하게 새나가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출하자가 특별히 조직화돼 있는 대아청과라 산지유통인들의 목소리라도 등장하지만, 여타 도매법인 매각의 경우 산지의 목소리는 설 자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수십 수백억 돈잔치에 부아는 치밀고 목소리를 낼 길은 없다면, 적어도 누가 이 엉망진창인 도매시장을 개혁하려 하고 누가 반대하는지 농민들이 두 눈을 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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