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30] 당(黨)이 건설되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농민소설가 최용탁님의 근대사 에세이를 1년에 걸쳐 매주 연재합니다. 갑오농민전쟁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대사를 톺아보며 민족해방과 노농투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 입력 2019.08.11 18:0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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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조선공산당 초대 당수 김재봉.
조선공산당 초대 당수 김재봉.

1920년대 초반부터 조선 내에서도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조직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중에 김사국이 주도하던 서울청년회가 가장 큰 세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외국 유학을 하지 않은 국내파 세력이었다. 여기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김약수 등이 주도한 북풍회가 두 번째로 큰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 외에도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청년 단체는 전국적으로 수백 개를 헤아리고 있었다. 1924년 4월 조선청년총동맹 결성에는 무려 250여 단체가 사회주의 기치 아래 모여들었다. 중앙집행위원만 600명에 이를 정도로 큰 조직이었다. 이처럼 20년대 중반에는 조선 내에서 당 창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으며 국제공산당인 코민테른에서도 이미 비밀리에 김재봉, 김찬 같은 요원을 파견해놓고 있었다.

1925년 4월 17일 오후 1시, 지금의 을지로 1가의 중국음식점 아서원 2층에는 2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두루마기를 입은 한복 차림이었고 나비넥타이를 맨 모던보이도 있었다. 일본에서 북성회 영수로 이름을 날리던 김약수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김재봉, 조선일보 기자인 박헌영도 한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연방 요리가 들어오고 술잔도 돌았지만 이 자리는 여느 연회가 아니었다. 일본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온갖 위장 전술을 겹겹이 치고 이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조선공산당 결성이었다. 이들은 요리상을 앞에 두고 짐짓 술판이라도 벌려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회의를 시작했다. 김재봉이 개회선언을 하고 난 뒤 사회를 맡은 김약수가 북풍회 대표 자격으로 치사를 했다.

“조선에 있어서 사상단체 운동은 그 역사로 볼 때는 몇 년 밖에 안 되었지만, 그 양에 있어서는 대단히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하등의 질서 잡힌 운동 방침이 없습니다. 오늘 모임을 통해 이에 대한 대응책을 협의코자 합니다.”

김재봉이 다시 이었다.

“조선 내에서 사상운동은 나날이 복잡함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결사체 조직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업이 되었습니다.”

김찬이 일어났다.

“결사체 명칭은 조선공산당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조선공산당 창당 주역 김약수.
조선공산당 창당 주역 김약수.

함북 명천 출신 김찬은 이미 1910년대 후반에 사회주의자가 되어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지를 신출귀몰하게 돌아다니며 열성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이었다. 23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코민테른 동양비서부 간부가 되어 조선공산당 창건 임무를 띠고 국내에 입국하였다. 회의에서는 김찬이 제기한 조선공산당과 기왕에 널리 쓰던 고려공산당이라는 명칭을 두고 잠시 설왕설래가 있었다. 당시에 외국에 널리 알려진 이름은 코리아, 즉 고려였다. 그러나 파벌을 일삼던 고려공산당과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는 이유로 조선공산당이 당명으로 가결되었다. 초대 책임비서는 김재봉이 선출되었다. 서른여섯 살의 김재봉은 가장 연장자이기도 했고 그에 걸맞은 투쟁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경북 안동의 유생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3.1운동에 참가하였고 21년부터 비밀 공산주의 써클에서 활동하였다. 그 해에 검거되어 징역을 살았고 출옥 후 곧 소련으로 망명하여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조선대표로 참여한 인물이었다. 23년에는 코민테른 꼬르뷰로(고려국) 국내 파견원으로 입국하여 비밀리에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하였다. 이날 결성된 조선공산당을 흔히 1차 공산당 혹은 김재봉당이라 부른다. 1차 공산당이라 함은 일제의 탄압에 의해 파괴된 당이 거듭 네 차례에 걸쳐 재건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결성된 당이 조선공산당이라는 사실은 역사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1925년에 창건된 후 끈질기게 재건운동이 이어졌고 해방이 되자마자 곧바로 당이 꾸려진 것도 조공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일제하 운동가들의 등대였고 수많은 농민, 노동운동을 펼쳐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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