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계약재배 비율을 높일 수 있는 정가수의매매

  • 입력 2019.08.11 18:00
  • 기자명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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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숙

‘이게 나라냐’를 외쳤던 시장 사람들이 ‘이게 시장이냐’를 외치고 있다. 동화청과가 771억원에 신라교역으로 넘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대아청과가 호반건설그룹 계열사인 호반프라퍼티에 564억원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대아청과는 1994년 산지 물량 유치 능력을 가진 유통인들이 모여 설립한 자본금 50억원의 경매회사다. 국민채소라 불리는 배추, 무, 총각무, 양배추, 대파, 쪽파, 마늘, 옥수수 등 8개 품목을 취급하며 가락시장 전체 거래량의 80% 이상을 점유하면서 국내 거래의 기준 가격을 형성할 정도로 영향력이 지대한 업체다. 지난해 거래물량은 42만9,676톤, 거래금액은 3,385억원, 당기순이익은 28억9,000만원이며, 현금배당액은 15억원이었다. 이러한 실적은 독점적 영업 지위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생활 안정에 이바지하기 위해 막대한 국가 세금이 투입돼 운영되는 공영도매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울고 있는데 경매회사는 웃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와 대파, 무, 마늘, 양파 등 양념채소류 가격이 눈물 흐르듯 하염없이 폭락하고 있다. 천일염 산지 가격도 2012년에는 20㎏에 7,900원 하던 것이 작년에는 2,800원으로 급락했고, 올해는 1,000원대로 내려앉았다. 이에 대해 농민은 생산비 보장을 위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고, 소비자는 어떤 농작물을 심을 것인지 농민 스스로 결정해서 농사지었는데 시장가격이 폭락했다고 국가가 왜 세금을 투입해 지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또한 경매가격이 떨어지면 소비자 가격도 낮아져야 하는데, 영향이 거의 없다고 아우성이다. 혁신적 포용국가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심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져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국내산 배추 수요는 가정보다 김치 공장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데, 중국산 저가 김치에 밀려 김치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배추, 무 등의 김치 주재료 생산농가도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경매가격으로 인해 땀 흘려 가꾼 농산물을 산지폐기 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aT 통계에 의하면 2018년에 수입된 김치는 100% 중국산이다. 중국 김치는 1㎏당 약 721원으로 국산 김치의 반값 수준이다. 이처럼 저가 공세를 퍼부을 수 있는 이유는 수출 물류비 지원 등과 수출액의 약 11%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김치시장 잠식률은 40%로, 2~3년 내에 국내시장을 거의 장악하게 될 것이라며 국내산 김치 업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는 수입산 김치에 대해「식품위생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합성보존료, 인공감미료, 타르색소 등과 납,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 검사를 철저하게 시행해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

가격을 안정화하는 장기적인 대책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비등하자 농식품부는 소비패턴 변화에 따른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채소산업 전반을 점검하는 등 근본적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근본적인 대책 중의 하나는 계획생산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급식, 공공급식, 로컬푸드 매장 등 기존의 계약재배 시장을 확대하고 새로운 시장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지역형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지역먹거리를 공급하는 일자리급식을 제도화하는 한편, 공공이 나서서 소셜푸드 코디네이터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를 조직하고 생산자를 연결하는 소셜푸드는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가격 안정화를 위해 계약재배를 늘리는 방법은 공영도매시장에서 정가수의매매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정가매매는 가격을 정하고 거래하는 방식이고, 수의매매는 상대방을 특정해놓고 거래하는 것이다. 정가수의매매는 판로가 안정적이고 가격등락 폭도 낮아 생산자, 구매자 모두에게 좋다. 또한 산지의 조직화·규모화도 촉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가락시장 도매법인은 정가수의매매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지 않다. 정가수의매매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려면 경매사를 더 고용해야 하고 농산물 품질평가, 가격협상, 하자처리 등 업무가 대폭 늘어나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공출자법인 진출의 기회, 정가수의매매 단계를 줄일 수 있는 시장도매인제도를 도입해 경쟁을 촉진하고, 도매시장법인뿐만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갖추고 허가를 받은 중도매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정가수의매매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정가수의매매 거래 투명성을 위해 공영거래사를 새롭게 육성하고, 농산물유통 과정에 블록체인을 접목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블록체인으로 생산이력을 추적하면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알 수 있고, 경로 이력을 보면 유통단계가 짧은지 소비자가 확인도 가능하다.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유통단계가 줄어들면, 가격은 저렴해지고 영양 손실은 최소화된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므로 국민생활 안정은 물론 국민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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