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운동 미완의 제도개혁과제, 농협
여성농민운동 미완의 제도개혁과제, 농협
  •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 승인 2019.08.11 18: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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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여성농민운동을 정리하면서 많은 순간 여성농민들에게 ‘주인’이란 단어가 그냥 구호이고 사전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주인? 생산의 주인? 농협의 경우도 주인이라는 말이 무색한 대표적인 기관의 하나이다.

농협의 사전적 의미는 ‘농민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통하여 농업생산력의 증진과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기 위하여 설립된 특수법인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묻는다. 과연 농협이 여성농민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인 적이 있었는지? 여성농민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했는지? 왜 30년이 돼가도록 저 멀리 있는 신기루처럼 느껴지는지.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로서 여성농민

농협은 여성농민운동이 시작된 이래 30여 년 동안 여성농민운동의 제도개혁 과제였다. 여성농민운동을 통해서 제도개혁이 이루어진 수많은 과제 중에 농협을 검토하는 것은 그만큼 농협이 여성농민에게 중요할 뿐만 아니라 농협의 성장과정에 여성농민들의 기여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농민들은 농협의 주인으로서 참여하지 못하고 있고, 농협 내에 여성농민들의 지위는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여성농민운동 30년 동안 농협이 변화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농협은 농업생산을 위한 구·판매만이 아니라 여성농민을 통한 소비재의 판매를 통해서 성장했다. 이른바 모든 농협은 구판장(현재는 하나로마트)으로 불리는 판매점을 운영했고, 마을부녀회 회원들은 대부분 자발적인 영업사원이었다.

농협의 구판장과 연결된 마을의 새마을 가게는 부녀회를 통해서 운영이 됐다. 1970년대 이래 여성농민들은 구판장을 통해서 전기제품, 농사용품, 일반 생활용품 등을 구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은 1994년도까지 1가구 1조합원제를 시행, 대부분 농가에서는 조합원으로 남편이 농가대표 선수가 되어 가입했다.

농업협동조합의 사업도, 임원도,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에도 여성농민은 없었다. 남편의 사망 없이는 여성농민들이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이것은 청년농업인도 마찬가지였다. 농협은 처음부터 여성농민의 조합원 진입을 막았으면서도 여성농민들을 통해 마을 구석구석까지 농협의 판매수익을 착실히 챙겼다.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였던 여성농민, 과거에는 농협에 여성농민들의 이러한 역할을 관리하는 부녀계라는 조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어졌다. 한때는 여성농민들을 위한 농협주부대학이 지역농협까지 실시되었지만 지금은 일부 농협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농협에게 여성농민은 어떤 존재일까? 봉사활동 요원? 여전히 많은 물음이 든다.

여성농민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선 농협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조합원 및 임원들이 대폭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여성농민운동 진영에서의 적극적인 실천 활동 또한 필요하다. 사진은 지난해 3월 전남 화순 능주농협 회의실에서 열린 고향주부모임 성평등 교육에 참여한 여성농민들의 모습.
여성농민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선 농협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조합원 및 임원들이 대폭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여성농민운동 진영에서의 적극적인 실천 활동 또한 필요하다. 사진은 지난해 3월 전남 화순 능주농협 회의실에서 열린 고향주부모임 성평등 교육에 참여한 여성농민들의 모습.

복수조합원제도 쟁취했지만 여전히 문턱 높아

1992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여성농민대개혁안 10대 과제 중 하나로 농협 복수조합원제 쟁취를 제시하고, 농협개혁 과제에 복수조합원제가 포함되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94년 12월 농협법이 개정돼 복수조합원제(1가구 2인 가입)가 시행됐다.

그러나 복수조합원제도가 시행된 지 25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여성농민들의 조합원 가입비율은 32% 수준에 머물러 있고, 농협의 여성임원비율은 8.3% 내외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여성농민운동 진영에서 조차 농협 조합원 가입은 구호 이외에 이렇다 할 적극적 투쟁이나 활동이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여성농민운동의 제도개혁 투쟁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변화의 폭이 더딘 영역이 바로 농협일 것이다. 이러한 원인은 농협의 제도적 문제와 여성농민들의 비자발성 양 측면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여성농민운동은 1994년 복수조합원제도 시행 이후부터 현재까지 농협의 여성대표성과 관련한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여성농민운동에서 농협에 요구하는 핵심은 여성농민들의 참여 및 대표성 증진에 관한 문제이다. 이후 2007년 농협 내 여성위원회의 설치를 비롯해 여성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과정까지 농협은 뗄 수 없는 과제이다.

그러나 정작 여성농민운동 조직 내에서 이와 관련한 적극적인 실천 활동은 미흡한 실정이다. 정책적으로 중요한 다른 사안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집중적으로 투쟁하거나 정책적으로 대응했지만 유독 농협에 대해서는 전국적인 실천 투쟁이 약하게 전개됐다.

농협과 관련한 지역단위 활동으로는 2005년 제주도여농의 농협개혁위원회 설치와 활동, 2009년 신경분리에 반대하는 전농민적 활동 이외에 여성농민운동 조직에서 지역농협 참여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든가, 조합 임원 진출 투쟁을 한다거나 하는 활동은 거의 없다.

심지어 지역농협 개선이나 지역농협의 사업내용 중 여성농민과 관련된 사업의 실시에 대한 요구조차도 없다. 여전히 여성농민에게 있어서 농협은 먼 그대인 셈이다.

여성농민들이 조합원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는 지역농협별로 편차가 있긴 하지만 신규 가입자에게 출자비용을 너무 높게 요구(평균출자 고액출자 요구), 또는 단위조합별로 정관을 달리해 1가구 1조합원제 유지 등 여성농민들의 진입을 막는 다양한 장치가 지역농협별로 다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농민들의 대응도 단위농협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역단위 조직력이 강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조합원으로 가입해봤자 빚만 지고(실효성 문제) 농협은 빚내는 곳(농가부채)으로 인식되는 고리대금업자일 뿐, 농민을 위해 뭔가를 도모하는 조직이라는 느낌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조합원 가입이 이뤄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즉 실질적인 벽과 심리적인 벽, 그리고 현실적으로 농협의 활동이 여성농민을 위한 실익이 없다는 점이 맞물려 여성농민들의 농협 주인 되기는 여전히 신기루인 것이다.

여성농민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농협은 여성농민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하는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여성농민들은 농협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정부의 여성농업인 정책과제에 여성농민의 사회적 지위 향상의 일환으로 2019년 여성조합원 35%, 임원 10%를 달성한다고 명기돼 있다. 할당은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작년 조합장 선거 결과 1,028개 조합에서 8명(0.77%)의 여성조합장이 탄생했다. 성평등을 얘기하는 2019년에 참으로 부끄러운 여성농민의 초상이다. 농협법의 개정으로 여성조합원 비율이 30% 이상인 농협에는 여성이사 1명이 할당되도록 명시돼 있지만 조합별로 이사 자격 기준이 높게 책정돼 있어서 일반 여성농민들의 진입은 어려운 실정이다.

여성농민운동 진영에서 제주도 대정농협에 여성이사를 탄생시킨 이래 농협의 이·감사에 진출하려는 노력도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도 2010년 이후 여성농민운동의 핵심적인 정책과제에서 농협에 대한 언급은 점점 줄어들었다.

심지어 30% 이상 조합원 가입 농협의 이·감사 할당으로 농협 민주화에 역행하는 여성이·감사에 대한 불만이나, 농협의 이·감사에게 묻지마 관광을 주선한 경북의 모 농협까지 농협 개혁의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농협이 여성농민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서는 여성조합원 참여를 증진하고, 농협 대의원에 여성할당제를 실시해야 한다. 마을단위로 대의원을 할당하는 현재 구조에서 마을인구의 축소에 따른 대의원 수의 감소는 여성대의원의 감소를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대의원 할당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여성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여성 이·감사, 대의원에 대한 리더십 교육 및 전체 농협조합원에 대한 성평등 인식 강화 등 세부적인 변화를 중심으로 여성농민운동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원리에 충실한 농협으로 거듭나야

협동조합은 투자액에 따라서 발언권이나 기회를 할당하는 주식회사가 아니다. 협동조합은 1인 1표의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 협동의 기본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이상한 협동조합. 복수조합원제도를 쟁취하고도 농협에 가입하지 않는 여성농민들. 주인일 수 없는 조건과 주인이기를 포기한 두 가지 모두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여성농민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정책과제로서 농협 개혁은 영원한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농협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농민운동 조직은 1회적인 토론회나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농협의 주인으로 활동을 위한 조합원 가입, 농협 사업에 대한 개선 요구, 임원 할당의 장애물 제거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최근 농민운동 출신 조합장들이 증가하고 있다. 농민운동 출신 조합장들이 증가한다는 것이 곧바로 농협에서 여성농민들의 참여와 발언이 높아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 농협을 중심으로 먼저 여성의 참여를 증진하고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사례의 발굴이 필요하다.

좋은 농협 만들기를 주장하는 농민개혁 진영은 좋은 농협이란 성평등한 농협, 협동조합의 원리가 제대로 반영되는 농협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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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 2019-11-14 01:10:58
좋은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