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전당포② 전당포는 튼튼하였다

  • 입력 2019.08.11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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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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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객으로서’ 전당포를 찾은 회수는 딱 네 번이었다. 모두 혈기 방장하던 1970년대에 있었던 일인데 세 번은 싸구려 손목시계를 들고, 나머지 한 번은 역시 싸구려인 카메라를 들고였다. 세세한 사연 따윈 떠올리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푼돈이 필요해서 갔을 터이므로.

2001년 여름에 다섯 번째로 찾은 전당포는 경기도 안양에 있던 ‘성우사’라는 곳이었다. 이번엔 ‘급전을 땡기러’가 아니라 30년 경력의 그 전당포 주인한테서 옛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전당포 창구 앞에 서자 주인 윤석현 씨가 대뜸 물었다.

“70년대에 전당포를 이용해 보셨다 했는데, 접수창구 앞에 딱 서보니 뭐 달라진 것 없어요?”

“글쎄요. 예전엔 접수창구 안쪽에 앉아있는 주인장이 꼭 철창에 갇혀있는 죄수 같았는데….”

“맞아요. 그 시절엔 굉장히 굵고 투박한 쇠창살로 전면 유리창의 외부를 둘러쳤었지요. 지금은 그걸 싹 걷어내고 엄청 두꺼운 강화유리를 달았어요. 이 유리, 해머로 쳐도 안 깨져요.”

“그런데…귀중품 보관하는 창고는 안쪽에 따로 있다면서, 손님 맞는 접수창구에서부터 이렇게까지 철통보안을 할 필요 있을까요? 대통령이 타는 1호차의 방탄 유리창 같은데….”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뭐냐면….”

혹시 강도질을 할 맘으로 전당포에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입구에서부터 철옹성의 모습을 내보임으로써, 그 ‘도 선생’으로 하여금 일찌감치 도심(盜心)을 포기하게 하려는 의도다. 뿐만 아니라 귀중품을 저당 잡히러 온 손님에게는 당신 물건 여기 맡겨두면 잘 못 될 염려가 없다, 라는 믿음을 줄 수가 있다.

내친 김에 전당물이 보관돼 있는 귀중품 창고를 좀 구경하자고 했는데, 그는 또 한참을 망설이다,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은 채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냈다. 어른주먹만한 특수 자물통 세 개를 여는 데에만도 한참이나 걸렸다. 전당포를 개업한 이래, 어떤 외부인에게도 창고 내부를 구경시킨 적은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도둑의 장물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겁을 주며 들어오려는 수사 경찰관에게도 창고의 문은 열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철문이 열렸다. 기대와는 달리 창고는 매우 협소했다. 하지만 윤석현 씨의 설명에 의하면, 그 귀중품 창고는 대충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창고를 둘러싼 벽은 그냥 벽이 아니에요. 바깥에 외벽을 쌓고, 안에다 다시 내벽을 쌓아서, 이중 콘크리트 벽으로 돼 있어요. 뿐만 아니라 그 안에다 두꺼운 철판을 한 겹 더 둘러서 벽을 완성했어요. 도둑놈이 단단히 작심을 한다면야 콘크리트 벽은 어찌어찌 뚫을 수 있겠지만, 철판까지 뚫으려면 용접기를 동원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도둑이 있겠어요?”

저당 잡은 물품들은 창고 벽면에 층층으로 진열대를 만들어서 거기 보관하고 있었다.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뵈는 카메라 세트, 갖가지 핸드백(윤 씨가 얘기해 주지 않았으므로 그 재질이 악어가죽인지 올챙이 가죽인지 그런 건 모르겠다), 연대를 알 수 없는 도자기 종류, 게다가 색소폰 같은 악기도 있었다.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은 금고 속에다 별도로 보관한다고 했다.

“악기 종류를 잡히러 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까?”

“이 악기 주인은, 내가 연줄을 통해서 아는 사람이어서 특별히 받아둔 것이지, 평소엔 안 받습니다. 그건 내 분야가 아니거든요. 그런 특수한 물품들은 그것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당포가 따로 있어요. 악기를 주로 취급하는 전당포가 영등포 어디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새 없어졌을 거예요.”

그런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시계가 없었다. 전당포, 하면 손목시계였는데….

“허허, 그건 옛날 얘기지요. 그 시절엔 전당포 하는 사람들이 시계로 먹고 살았어요. 그뿐인가요? 녹음기, 야외전축, 신사복…심지어는 선풍기도 전당물로 잡을 만큼 귀중품이었어요. 아이고, 옛날 얘기 하려니 술 생각나네. 손님도 없는데, 우리 나가서 소주 한 잔씩 하면서 얘기 나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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