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운동가 이근랑 동지와의 약속

  • 입력 2019.08.04 18:00
  • 기자명 전용중(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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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중(경기 여주)
전용중(경기 여주)

전 평택농민회 회장 이근랑 동지(사진)가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장기간의 신장투석으로 망가진 몸에 갑자기 닥친 교통사고를 더는 이겨내지 못하고 너무나 갑자기 떠나갔습니다.

소식을 듣고 밭고랑에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젠 눈물이 말랐겠지…. 하지만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농민가를 부르면서, 추모제 영상을 보면서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향년 59세. 농민으로선 한창의 나이에.

이근랑 동지는 수세투쟁의 한복판에서 농민운동을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원칙의 선을 넘지 않고 농민회 깃발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잘난 놈, 배운 놈들이 더 빠른 길, 더 쉬운 길을 찾아 갈 때도, 대추리 투쟁으로 평택농민회가 풍비박산이 날 때도 이근랑 동지가 서 있는 곳이 깃발이었고 원칙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신장투석이 악화되어 이틀에 한 번 투석을 하는 고통 속에서도 회의나 집회가 있으면 병원치료를 연기하면서까지 농민회가 우선이었습니다.

세 번에 걸쳐 평택농민회장을 책임졌으면서도 고생하는 후배들 걱정으로 평택시 쌀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는 분이었습니다.

점점 작아지는 몸, 굽어가는 허리. 몸은 망가져가고 있었지만 의리와 깡다구로 뭉쳐진 동지의 눈빛과 말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를 다시 각성시키는 힘이었습니다.

동지는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갔고, 현실감 없는 이 사실은 바뀔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평택을 지나치다 마주하는 저 노각밭 한복판에, 혹은 논바닥 구석에 허리 숙여 일하는 땀 젖은 농민으로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농민운동가 故 이근랑 선생
농민운동가 故 이근랑 선생

또 우리가 광화문 거리, 여의도 거리를 메우고 농민해방을 부르짖는 대열의 어느 앞쪽에서, 눅눅한 평택농민회 사무실 구석자리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의 늦은 밤 천막 속에서, 모자 삐뚤게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만날 것입니다.

이수금 의장님, 정광훈 의장님, 백남기 회장님… 앞서간 선배님들이 흙속으로 간 것이 아니라 늘 우리의 대열 가운데 함께 있듯이….

아스팔트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며, 대추리 투쟁에서의 삭지 않는 분노, 촛불혁명에 함께 환호하고, 아직은 분단의 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통일트랙터에 안타까워하던 날들. 이루지 못한 통일농업의 확신, 농민해방의 약속, 이제 동지와 함께 우리가 해 내겠습니다.

죽을 걸 알면서도 몇날 며칠을 죽어간 동지의 시체를 밟고 우금티를 기어오르던 농민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한양을 점령한 농민세상에 대한 확신이 있었듯이, 동지의 삶으로 우리는 승리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영원히 우리의 삶과 투쟁 속에서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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