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 ‘간당간당’, 어떤 피해 오나

미국 등 선진국 ‘WTO 개도국 지위 개혁’ 촉구 나서
2008년 DDA 협상 기준 대입하면 농산물 피해 ‘심각’

  • 입력 2019.08.04 18:0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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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개혁을 요구하면서 우리나라도 압박을 받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의 골이 깊어지면서 미국의 중국 압박용 카드이기도 한 ‘개도국 지위’ 재정비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국의 개도국 지위 혜택도 불안정하긴 마찬가지였다. 2008년 WTO 도하개발협상(DDA협상) 농업분야 ‘선진국 의무와 개도국 혜택’ 규정을 적용한다면,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쌀의 513% 관세규정도 100%대로 수직하강 할 수 있다.

지난 5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나온 ‘최근 WTO 개도국 지위에 관한 논의 동향과 정책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현재의 개도국 지위가 아닌 선진국 지위를 따를 경우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WTO의 개도국 지위 문제를 공박했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도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라”고 했고, 이는 최근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이 표적이다. 하지만 중국만이 대상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가 ‘억지’ 개도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선진국, WTO 개도국 지위 결정방식 비판

WTO 개도국 지위 문제는 DDA 출범 때부터 논란이 돼 온 쟁점이다. 다만 WTO 개도국들의 강력한 반발로 논의가 진전될 수 없었다.

최근 이 문제는 미국이 주도 하면서 더욱 코너에 몰리고 있는데, 지난 1월 미국은 ‘자기선언 방식’의 개도국 지위 결정이 갖는 문제점과 함께 기존의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이분법적 분류에 기초한 WTO 의무이행방식이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현행 방식은 개도국 우대의 근본취지를 손상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곁들였다.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 경제발전 추이를 감안할 때 몇몇 개도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개도국간 발전 격차가 매우 커졌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모든 개도국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현행 WTO 개도국 지위 결정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시각에서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대만, 중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인도 등의 국가가 개도국 우대 혜택을 적용하기 어려운 국가로 꼽힌다.

지난 2월에는 미국이 WTO에 개도국 우대축소를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제출했다. 개혁안에선 개도국 지위가 불필요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는데, △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절차를 밟는 국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WB)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 이상인 국가 등이다. 한국은 4가지 기준에 모두 포함된다.

개도국, 선진국 보다 관세감축 20%p 혜택

만약 우리나라가 WTO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된다면 농업분야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가. 지난 5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2008년 논의가 중단된 DDA 협상 내용을 근거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농업분야에서 WTO 개도국 지위 우대 첫 번째는 관세감축이다. 선진국은 5년에 걸쳐 50~70%, 개도국은 10년 동안 선진국의 3분의2 수준인 33~47%를 감축하게 돼 있다. 선진국 관세감축과 비교해 약 20%p 감축률 혜택이 주어진다.

개도국에는 ‘특별품목’도 허용하고 있는데, 농산물 전체 세번의 12% 내에서 5%까지는 관세감축 면제도 가능하다. 초민감 농산물에 대한 강력한 보호수단인 셈이다.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농산물 세번 수는 약 1,600여개로 이 중 5%는 80개가 된다. 따라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경우 쌀(세번 16개), 고추(6개), 마늘(6개), 양파(4개), 인삼(18개), 감자(4개), 일부 민감 유제품(10개) 등을 대부분 특별품목으로 지정해 관세감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반면 선진국이 될 경우 쌀, 마늘, 인삼 등 고율관세 핵심 농산물의 대폭적인 관세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외 개도국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로 ‘특별세이프가드’가 있다. 관세가 줄어들어 수입이 급증할 경우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경우에 따라 관세감축 이전 수준까지 추가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선진국 지위, 쌀 관세 513%에서 154%까지 곤두박질

우리나라 최대 민감품목인 쌀의 경우를 보면, 개도국 지위 여부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한다.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경우 쌀 관련 16개를 특별품목으로 지정할 수 있고, 현재 513% 관세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선진국 의무를 이행할 경우 ‘선진국 일반품목’은 70% 감축률을 적용해 154%로 뚝 떨어지고 ‘선진국 민감품목’으로 지정하면 관세감축 폭을 3분의1로 줄일 수 있어 393%로 조절된다. 하지만 ‘선진국 민감품목’ 지정의 경우 국내 소비량의 4%에 해당하는 쿼터(TRQ)를 제공해야 한다는 맹점이 따라붙어 문제가 된다. 현재 40만8,700톤 TRQ물량을 더 확대하는 의무가 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농업보조금도 ‘축소’

농업보조금도 선진국과 개도국간 차이가 상당하다. 선진국은 감축대상보조인 AMS도 5년 동안 45%를 감축해야 한다. 최소허용보조인 DM도 생산액의 2.5% 이내로 제한받는다. 반면 개도국의 경우 AMS는 8년에 걸쳐 30% 감축, DM은 6.7% 수준 유지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AMS가 1조4,900억원이다. 선진국 의무 이행시 1조4,900억원에서 8,195억원으로 축소되며, 개도국 지위 유지시 30% 감축을 적용해 1조430억원으로 유지될 수 있다.

농식품부, 대책마련 TF 가동

지난달 2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무역대표부 지시 이후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되면 농산물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일간지 보도가 줄을 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 농식품부)는 지난달 29일 즉각 해명자료를 배포해 “차기 농업협상 이전까지 현재의 관세율과 보조금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쌀의 513% 관세가 개도국 혜택이 사라지면 154%로 뚝 떨어질 수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구체적 수치를 제시한 분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2008년 WTO 문서에 따른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경미 농식품부 농업통상과장은 지난달 31일 “해명내용은 사실이다”면서 “2008년 문서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이 절대 동의하지 않아서 결국 10여 년 전에 협상이 중단됐는데, 그 수치를 가지고 피해논의를 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이분법적 분류가 아닌 국가별 민감품목에 차이를 두어 각각의 논의를 하자는 등 새로운 통상 기준에 대한 요구가 다양한 상황이다. 어떤 방향으로 WTO 농업협상이 진전될지 어떤 예측도 하기 어려운 이유다”고 덧붙였다.

특히 쌀 513% 관세와 관련해 “최근 미국 등 이의제기 5개국과 논의가 마무리됐다. 협정문의 최종안을 국가별로 회람 중이라 시간이 걸릴 뿐이다”면서 “국별쿼터 등 조율이 끝난 513% 관세율이 흔들릴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이 현재의 WTO 구조에서 한국시장에 농축산물 수출호황을 맞고 있는데 이 틀을 굳이 깨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농식품부는 WTO 개도국 지위 논란과 관련해 식품산업정책관을 단장으로 하는 TF도 꾸려 차기 농업협상을 예의주시하며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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