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시장이 썩고 있다

자본에 얼룩지는 도매시장법인

  • 입력 2019.08.04 18:00
  • 수정 2019.08.07 10:1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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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전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모여드는 곳, 서울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수행하는 도매시장법인들이 대기업이나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허나 농업과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달 30일 서울 가락시장의 각 도매법인 경매장 앞이 싣고 온 농산물을 하역하려는 차량과 노동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한승호 기자
전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모여드는 곳, 서울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수행하는 도매시장법인들이 대기업이나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허나 농업과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달 30일 서울 가락시장의 각 도매법인 경매장 앞이 싣고 온 농산물을 하역하려는 차량과 노동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한승호 기자

올해 들어 가락시장 동화청과와 대아청과, 구리시장 구리청과 등 국내 굴지의 청과도매법인들이 연거푸 매각되고 있다. 애당초 리스크 없는 사업구조를 가진 회사들이라 경영문제에 따른 매각일 리는 없다. 매각차익을 추구한 것이라 보는 것이 적합하다.

가락시장 같은 거대 시장의 도매법인들은 알짜 중의 알짜 회사다. 경매를 수행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도매법인은 풍년이면 많은 물량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흉년이면 가격에 비례해 저절로 높은 수수료를 받는다. 국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농관련 업종 중 유일하게 ‘노가 나는’ 업종이 도매법인이다.

비단 올해뿐 아니라 도매법인 매각은 그동안 심심찮게 이뤄져왔다. 가락시장 도매법인의 경우 매각차익은 1년 사이 47억원, 5년 사이 260억원 등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매각을 하지 않더라도 현금배당으로 상시 짭짤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도매법인은 ‘가진 자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상인들이 직접 설립하고 운영해온 대아청과마저 최근 거대기업에 넘어감으로써 가락시장은 이제 완전히 기업에 의해 장악됐다. 서울청과는 고려제강, 중앙청과는 태평양개발, 동화청과는 신라교역, 한국청과는 더코리아홀딩스, 대아청과는 호반그룹이 주인 자리를 꿰차고 있다. 하나같이 농업과의 관련성이라곤 찾을 수 없는 기업들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농민들의 등골에서 고혈처럼 뽑혀 나온 돈이 현금배당과 매각차익 등의 형태로 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농민들의 돈이 수십억, 수백억원씩 건설회사와 철강회사로 들어가고 이는 두 번 다시 농업계에 환원되지 않는다.

공영도매시장의 도매법인은 적어도 농업에 대한 애정과 농산물 유통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이 모이는 곳에 애정이나 사명감이 설 자리는 없다. 가진 자들의 탐욕은 불어나는 자금창고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도매법인들은 1990년대 이후 혼탁한 유통질서를 바로잡고 농민들의 공적 판로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경매제가 정착되고 경쟁 없는 안정적 수익구조가 이어지면서 이제는 기형적 자본축적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도매시장 개혁은 이제 피해선 안되는 시대의 숙명이다.

도매시장의 자본 흐름을 바꿔야 한다. 이는 거래제도의 다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경매 외에 다른 거래방법이 늘어날수록 자본은 분산될 수 있다. 유통주체 간 경쟁은 분산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물론 그 와중에도 어디론가 자본은 모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기형적인 모습은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도매시장은 의무상장이란 제도 아래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너무 오랜 시간 고여 있었다. 도매법인을 틀어쥐고 있는 기업들은 그 안에서 풍요롭고 행복했을지 몰라도, 농민들과 소비자들의 터전인 도매시장은 이미 썩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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