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정책 개선, 출발부터 엇박자

농식품부-농민 입장차 뚜렷
생산자조직 역할론 대두에도
농민들과 각 세우는 농식품부

  • 입력 2019.08.04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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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산물 수급정책의 처참한 실패로 정책의 새 판을 짜야 할 시기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 농민들의 주도적인 정책 참여가 절실한 상황에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가 오히려 농민들과 마찰을 양산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선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이 주최하고 무안군이 주관한 ‘농산물 수급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대책 토론회’가 열렸다. 농식품부와 연구기관, 농민단체가 골고루 참여하고 양파·마늘 등 일단의 농민들이 객석을 메웠다. 농식품부가 최근 수급정책 개선 TF 구성에서 농민단체를 배제한 가운데, 사실상 정책 개선에 관해 농민들과 의견을 나누는 첫 자리였다.

토론의 핵심주제는 산지주도형 수급정책이었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등 발제자들은 그간 산지폐기·수매비축 사업의 비효율성과 계약재배 미흡 등을 지적하고 생산자조직이 주도하는 선제적·자율적 수급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농산물 수급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대책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농식품부 수급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농산물 수급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대책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농식품부 수급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특히 좌장 김완배 서울대 명예교수는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농협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우리도 외국처럼 품목별 생산자조직을 만들어 여기서 생산·출하조정을 하고 기금을 운용케 해야 한다”고 재삼 강조했다.

이날 참석한 농민들의 상당수는 전국단위 품목조직 결성운동의 선두주자 격인 전국양파생산자협회 회원들이었다. 신생 조직임에도 조직력과 행동력을 갖춘데다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사단법인이라 현재로선 정책수행 역량이 있는 유일한 품목조직으로 꼽힌다. 양파협회 측도 정책 참여 의지를 보이며 행정의 도움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준한 농식품부 원예산업과장은 “핵심은 적정 재배면적을 어떻게 합의해서 만들어갈 건가인데 누가 책임지고 전국적으로 작동시킬 건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협회(양파협회)가 만들어졌지만 전국을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기실 이날 토론의 분위기를 보면 미온적이라기보다 적대적에 가까웠다. 강선희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조직교육위원장이 올해 소극적으로 일관한 농식품부 마늘 수급대책에 대해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늦었지만 남은 물량 전량수매와 지역농협 손실 보전을 해 달라”고 요청하자 서 과장은 “남은 물량 전량수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 정부가 내놓은 대책(토론회 당일 오전 마늘 1만5,000톤 추가격리 발표)이 마지막”이라 일축한 뒤 “정부가 걷어내고 시장에 남아있는 물량이 32만여톤이다. 이 정도면 산지에서 적절한 교섭력을 갖고 있다면 최소한 2,300원/kg은 나와야 정상”이라며 최근의 1,000원대 가격에 대한 책임을 산지로 돌려버렸다.

서 과장은 또 “바로 오늘 오전에 발표한 정부 대책에 농민단체가 또 찬물을 끼얹고 있지 않나. 정부 대책을 이용해 가격을 올릴 생각을 해야 한다”고 농민들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시장에 깔린 양파 물량이 평년대비 절대 많지 않다.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된다”, “무안 양파농가들은 생산비의 96%를 보전받았다”는 등 산지 실정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농민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최근의 행보를 보면 농식품부는 어떤 형태로든 산지 생산자조직의 역할을 담보한 수급정책으로 정책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농민들이 만들어낸 가장 주체적인 품목조직과는 협력은커녕 논의 시작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 농식품부가 구상하는 산지주도형 수급정책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 관심과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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