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 길을 잃다
농정, 길을 잃다
  • 김호 단국대 교수
  • 승인 2019.08.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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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단국대 교수
김호 단국대 교수

우리 농정이 길을 찾아야 한다. 농산물시장의 완전개방과 기후변화로 인해 농산물가격은 품목을 바꿔가며 폭락을 거듭하고 있고, 농가의 실질소득은 감소해 농가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곡물자급률은 23.4%까지 떨어졌고 농업인력 고령화율은 42.5%로 늘어났다.

농지는 절반 이상이 비농업인의 손에 들어가 있고, 비농업인의 직불금 불법수령과 함께 임차농은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정권교체로 국정방향은 바뀌었지만, 농정방향과 농민의 삶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는 탄식이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난 마당에, 농정철학이나 농정방향을 수립하는 일은 이미 시효가 지난 것 같다. 농정의 틀을 새로 짜는 일도 당면과제가 아닌 일이 돼 버렸다. 이제 와서는 뒷북치는 격이라는 얘기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직불금제도 개편도 변동직불제의 효과를 확실히 대체할 수 있는 정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농가입장에서 개편의 의미도 없고 시급하지도 않다.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할 정책과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을 구분해야 할 시점이다. 현장 농가에게 해결해줘야 할 당장 필요한 과제에 매진할 때다. 예를 들면 농산물가격의 안정, 농가소득의 유지, 생산-유통 연계대책, 임차농 보호대책, 농업노동력 확보 등이다.

농산물 가격안정 위한 근본대책 필요

지금 농정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농산물가격의 안정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올해 정부가 중점 추진해야 할 농정과제로서 응답한 소비자 중 74.5%, 생산자 중 70.1%가 농산물 가격안정을 꼽았다. 농산물가격의 안정은 농가경제를 안정시킬 뿐 아니라 소비자후생도 증가시킨다.

지난해 배추와 무 가격 파동을 시작으로 양배추, 시금치, 애호박, 대파, 양파, 마늘, 보리, 감자 등의 가격이 줄줄이 폭락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가뭄에 콩 나듯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후죽순 격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가격폭락에 대해 기후 탓, 관측연구자 탓, 농민 탓, 소비감소 탓 등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농산물가격은 농업소득의 결정변수다. 농업소득 1,292만원을 기록한 작년에는 쌀값상승과 변동직불금의 공이 크다. 수확기에 쌀을 사전에 시장에서 격리해 쌀값을 지지했다. 정책 집행시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례다.

이번 양파사태는 사전조치가 지지부진해 일을 키우고 말았다. 양파농가들이 지난 2월 조생종 양파의 산지폐기를 결정할 때부터 중만생종 양파 산지폐기도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간담회에서 중만생종 양파 산지폐기도 3월 안으로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중만생종 양파 산지폐기는 5월이 돼서야 일부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격안정을 위해서는 생산예측도 중요하지만 생산과잉에 대해 시의적절한 선제적인 조치가 효과적이다. 사전조치가 사후관리보다 비용과 효과 면에서 성과가 크다. 이런 연쇄적인 가격폭락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효율성과 효과성, 형평성이 담보되지 않은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마트팜 밸리는 해당 품목의 과잉생산과 가격폭락으로 농업위기를 더욱 촉발시킬 것이다.

가격안정을 위한 근본대책의 수립이란 과거에 관행적으로 시행했던 기존정책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환골탈태를 말한다. 약효가 낮은 약은 폐기하고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옳다. 현장을 직접 방문해 농민이 제안하는 새로운 대안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 생산자단체, 정부와 지자체가 참여하는 가격안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계약재배를 통해 가격과 물량을 사전에 결정하는 공공수매제도는 생산-가공-유통-소비를 연계해 안정적인 생산과 유통체계를 갖추는 대안유통의 일환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가공업체와 대량수요처를 파악해 생산자조직과 계약재배나 출하계약을 유도하는 것이다. 지자체와 생산자단체가 발품 좀 팔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지금 농정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농산물가격의 안정이다. 생산자단체, 정부와 지자체가 참여하는 가격안정제도를 마련해 줄줄이 폭락하고 있는 농산물가격을 잡아야 한다. 지난달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농산물값 폭락대책 촉구 및 문재인정부 농정규탄 전국생산자대회’에 참석한 농민 3,000여명이 제대로 농사지어 먹을 게 없다는 의미로 양파와 마늘 등 각종 채소 명칭에 근조 리본을 단 팻말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금 농정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농산물가격의 안정이다. 생산자단체, 정부와 지자체가 참여하는 가격안정제도를 마련해 줄줄이 폭락하고 있는 농산물가격을 잡아야 한다. 지난달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농산물값 폭락대책 촉구 및 문재인정부 농정규탄 전국생산자대회’에 참석한 농민 3,000여명이 제대로 농사지어 먹을 게 없다는 의미로 양파와 마늘 등 각종 채소 명칭에 근조 리본을 단 팻말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쌀 가격안정대책 없는 직불제 개편은 무의미

요즘 직불제 개편 논의과정을 보면, 변동직불제를 폐지해 직불금 예산을 감축하거나 현상 유지하는데 본질이 있는 것 같다. 변동직불제의 폐지는 쌀 가격이 하락했을 때 이를 보전할 수 있는 장치를 없애는 것이다. 이는 주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처사이다.

만일 쌀 가격폭락 사태가 발생되면 농민의 소득보전 요구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쌀 뿐 아니라 많은 품목의 가격폭락이 함께 발생될 가능성이 늘 존재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의 부담이 가중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공무원들도 1년 내내 가격폭락이라는 불을 끄는 데만 쫓아 다니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변동직불제의 폐지를 전제로 한 직불제 논의는 지속할 가치가 없다. 이는 ‘쌀 생산조정제 등으로 쌀값, 쌀 농업 꼭 지키겠다’는 공약과 ‘공익형 직불제의 확대로 농가소득을 높이겠다’는 공약에도 배치된다. 공익형 직불제의 확대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영역을 확대 해석하고, 이에 대해 보상하는 예산을 확충해 농가소득을 더 높이겠는 의미일 것이다.

또 쌀 생산조정제는 휴경이 아닌 이상, 풍선효과 때문에 다른 품목의 과잉생산을 유발할 수 있다. 쌀 생산조정제에 따라 타 작목으로 전환했을 때, 해당 품목의 계약재배와 생산-가공-유통-소비의 연계를 통해 ‘주요 농산물 제값받기 프로젝트’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

직불제는 애초에 WTO 체제 하에서 가격정책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서,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소득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시작됐다. 공익형 직불제의 확대는 직불제를 통합해 기본 공익형 직불과 추가 공익형 직불로 구분하는 것이다. 기본 공익형은 식량안보와 자급률 향상 등을 목표로 하고 고정직불과 밭직불, 농민수당 등을 둔다.

추가 공익형에는 환경생태의 보전 및 활성화를 목표로 친환경농업 직불, 경관보전 직불, 조건불리 직불 등을 포함시키는 방안이다. 이 때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쌀 가격안정장치를 마련하거나 변동직불제를 존속시키는 것이다. 이런 필수조건을 갖추지 않는다면 직불제 개편작업을 중지하고 현행 직불제를 유지하는 편이 더 낫다. 최근의 쌀 자동시장격리제도도 가격안정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대안이 되기 어렵다.

농민수당의 신설이 직불제 개편보다 우선순위이다. 직불제 개편안은 정부·국회와 농민단체 간에 의견차이가 너무 커서 험난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변동직불제 폐지와 예산문제, 농업재정 개혁 등 핵심과제는 쉽게 넘을 수 있는 산이 아니다. 농민수당은 농민이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의 일부분이다.

충남에서는 2017년부터 벼 경영안정 직불금과 맞춤형 화학비료 지원예산을 합한 485억원을 농가단위로 균등 지불하고 있다. 핵심목표는 농업·농촌의 다원적이고 공익적인 기능에 대한 보상이다. 지원방식으로 벼 재배여부 및 재배면적과 관계없이 충남도 전체 농가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농가당 수령액은 많지 않지만 의미는 크다. 이 사례는 당시에 우리나라 직불금제도의 개편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도됐다.

 지난 16일 충북 단양군 단양군청 앞에서 열린 '지역농정 혁신! 농민수당 쟁취! 7.16 충북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농민수당 쟁취'가 적힌 손종이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16일 충북 단양군 단양군청 앞에서 열린 '지역농정 혁신! 농민수당 쟁취! 7.16 충북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농민수당 쟁취'가 적힌 손종이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식량안보 위한 농지보전과 자급률 향상

아베정권의 수출규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떠들썩하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는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다. 개방경제 시대에 당연한 현상이다. 2007~2008년 애그플레이션 때의 곡물 수출제한조치도 기억해야 한다. 잦은 이상기후로 인한 흉년으로 밀 생산이 급격히 감소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아르헨티나 등 세계적인 밀 주산지가 일제히 밀 수출을 제한했다. 그래서 식료품 가격이 상승하고 서민들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유럽에서는 사료가격의 상승으로 우유와 치즈가격이 급등했고, 아이티와 방글라데시에서는 곡물을 구하기 힘들어 폭동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밀 가격의 상승으로 자장면과 라면 같은 면류 가격이 상승했고, 사료가격도 폭등하여 축산농가의 어려움이 매우 컸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보면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이 주기적으로 순환해왔다. 앞으로 보호무역이 더 심해져 국가 간 수출규제나 수입규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곡물자급률이 23%대인 우리나라처럼 식량을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 식량 생산량이 부족할 경우, 돈이 있어도 못 사먹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또 식량을 무기화하여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위협하게 되면 무력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강조하는 이유다. 선진국들은 식량의 해외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국가경쟁력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본식량 확보에 가장 기본적인 생산수단인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 우리나라 농지면적은 2007년 178만ha에서 2017년 162만ha로 10년간 연평균 1만6,000ha씩 감소했다. 매년 여의도면적의 약 50배, 서울시 면적의 약 23%에 해당되는 농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수입곡물은 2007년에 1,385만톤에서 2017년에는 1,530만톤으로 145만톤이 증가했다. 또 2017년에 전체 농지의 51.4%가 비농업인 소유다. 명의신탁에 의한 농지투기 등을 포함하면 비농가 소유 농지는 전체 농지의 70%라는 추정도 있다. 이들은 투기수익을 목적으로 끊임없이 농지전용을 시도하고 있다.

현행 농지법을 경자유전의 원칙에 부합되게 전면 개정해야 한다. 농업생산 의지와 능력이 있는 농민이 자기의 농지를 소유하며 안정적으로 농업을 경영하는 헌법상의 경자유전원칙을 구현해야 한다. 비농업인의 불법 농지소유와 임대차, 농지 방치 등에 대해 세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비농업인의 직불금 불법 수령에 대해서는 수십 배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임대료 인상 상한제와 임대차 계약기간의 확대 등을 도입해야 한다.

또 기초농산물을 중심으로 식량자급률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은 2007년 51.6%에서 2017년 48.9%로,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07년 27.7%에서 2017년 23.4%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5년마다 수립하고 있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에 따라 2013년에 설정한 2022년 목표치는 식량자급률 60%, 곡물자급률은 32%였다.

그런데 2018년에 목표치를 하향 조정해 2022년 식량자급률 51%, 곡물자급률 24.2%로 설정했다. 자급률 목표치를 향상시키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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