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수당, 완벽한 극일 농정의 시작

  • 입력 2019.08.04 18:00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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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2_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난달 25~26일, 이틀에 거쳐 강진과 해남을 찾았다.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을 먼저 시작한 두 지역을 직접 방문해 정책 담당자와 수혜를 받는 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그동안 농민수당을 연구하고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많은 강연과 토론을 통해 역설했기에 그 뜻깊은 현장의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싶었다. 이틀간 조사를 하면서 나도 많이 배웠다. 역시 경험만큼 훌륭한 선생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려본다.

첫째, 농민수당은 재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의 의지 문제였다. 강진군과 해남군의 재정자립도는 여타 지자체보다 높지 않다. 그래도 지도자의 강한 의지로 돌파했다. “농정 일반 회계로도 충분합니다. 재원은 문제가 안 됩니다.” 해남군청 담당 공무원의 말이다.

둘째, 농민수당은 끊임없이 형평을 찾아가는 제도였다. 강진군에서 농민수당 형태의 논·밭 경영안정자금을 먼저 시작했던 계기는 그동안 논농사 농가에게만 주었던 보조금에 대한 이의 제기였다. 농민들은 논보다 훨씬 손길도 많이 가고 일도 힘든 밭농사에 대한 차별적 지원에 대해 부당함을 제기했다. 그 결과 농민들은 논·밭 구별 없이 균등한 농민수당을 받게 됐다.

셋째, 농민수당은 지역경제의 공생과 순환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26일에 처음 지급된 해남군 농민수당은 지역화폐, 즉 해남사랑상품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농수축협에서의 사용은 제한했다. 그렇지 않아도 농민수당이 지급된다면 그 돈이 다시 농수축협으로 들어가 그들만 배불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해남군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해남군은 농민과 지역 소상공인, 자영업자도 함께 사는 방법을 적극 강구했다. 해남군 농민수당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우리 농정은 일제 농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를 번역한다’는 기치로 서방의 모든 것을 베껴서 제도를 만들었고 그것을 우리가 다시 베껴서 배워왔다. 농정도 마찬가지다. 그중 하나가 농업직불제이다. 물론 온전한 제도적 틀이 부족했던 시대에 일본의 제도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한계에 직면했다.

경지 면적을 중심으로 한 농업직불제는 명백한 ‘번역의 오류’이다. 서구는 경지 면적이 넓기 때문에 면적단위 직불이 곧 ‘기본소득’이며, 농가의 기본 생존권을 보장한다. 여기에 가산형 직불까지 합치면 잘 살지는 않지만 욕심 없이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면적 기준의 직불제는 한국, 일본, 중국 등 소농경제의 기반이 되는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치명적이다. 이 지역에서의 농민, 농촌, 농업의 몰락은 농민에게 기본적 삶의 기반을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본주의적 욕망을 부추기는 농정으로 일관한 결과이다.

일본은 놀랍도록 농촌을 잘 관리하고 문화도 잘 보존하고 사람도 친절하지만 그들은 메이지유신 이후 강고한 천황체제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각도에서 보면 분명 후진국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경제침략은 자국의 경제와 민주주의 실패 원인을 외부로 돌려 과거 영화로웠던 메이지유신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아베와 극우세력의 ‘일장춘몽’이다. 평화헌법을 없애고 백성을 제국의 충실한 신민으로 만들려는, 그래서 한국과 여타 주변국을 침략해 과거의 영화를 찾겠다는 망상이다.

조사를 위해 들른 강진군청의 민원실 앞에는 ‘NO’(일본 반대)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해남군청 앞 광장에는 500년 전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고 그 기념으로 심은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두 지역에서 농민수당이 먼저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이 곧 중심이라고 했다. 강진과 해남에서 시작된 농민수당은 우리 농정의 중심이 될 것이다. 농민수당은 현재 전라, 충청, 경기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제 ‘식민지 농정’을 청산하고 주권이 관료가 아닌 농민에게 있는 그런 농정이 시작될 것이다. 정의롭고 평등한 동아시아 농정의 새로운 가치체계를 여기서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베의 일본은 결코 할 수 없는 그 완벽한 극일 농정의 역사적 현장을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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