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이면 아프고 구타당하고 죽어도 되나

열악한 환경서 기본권 보장 못 받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 입력 2019.07.21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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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건강 및 안전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단속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행위도 문제가 된다.

주거환경의 경우, 2017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농업 이주노동자의 80%가 임야나 전답, 농수로 위에 가설된 샌드위치 패널 숙소나 컨테이너 숙소에서 지내는 걸로 드러났다.

이에 정부에서도 지난해 12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 외국인력 배정을 중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농업분야 외국인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제조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그것과 비교해도 길다. 경기도 안산에서 이주노동자 쉼터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대표는 지난 16일 서울 민주노총에서 열린 ‘한국 내 이주노동자 산재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타 직종 노동자들의 월 노동시간이 160~180시간인 데 반해, 농촌 이주노동자들은 매달 285시간, 월 28~29일을 일한다”며 “여름의 경우 월 노동시간이 350시간을 상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자들은 질병 및 산업재해에 취약하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현재 제도상 ‘5인 미만 사업장’은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농촌 대다수의 농가들도 현행 제도에선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간주되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도 건강·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 것이다.

산재를 신청했다가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불안감과 함께, 산재신청 후 이뤄지는 근로복지공단의 출입국 통보로 고용기간에 따라 200만~1,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고용주 농민들의 우려도 산재보험 신청을 꺼리게 만든다.

숙소에서 자던 이주노동자들이 갑작스레 사망하는 사례도 있다. 김 대표는 “대부분은 ‘개인 건강상의 이유’가 사인으로 돌려진다”며 “월 28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열악한 주거환경, 응급치료가 힘든 고립된 환경 등의 구조적 요인과 그들의 죽음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등록’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당하는 차별문제도 심각하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상담사례에 따르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7명이 어느 농촌지역 고추밭에 들이닥쳐 17명의 이주노동자를 저녁도 먹이지 않은 채 감금시킨 사례가 있었다. 해당 직원들은 속옷 상태의 노동자들에게 욕을 하며 수갑을 채우고 컨테이너에 감금시킨 채 조사했다. 또 다른 사례를 보면 비닐하우스 시공을 하던 이주노동자를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 10여명이 집단구타한 사건도 있었다.

따라서 최소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기본권은 보장되는 방향으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유엔 이주노동자권리협약 제69조엔 “당사국은 자국 영역 내에 비정규직 상황의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이 있는 경우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가인권위의 ‘이주 인권가이드라인’에 소개된 해외사례에 따르면, 스페인에선 ‘미등록’이나 ‘불법체류자’ 대신 ‘비정규 이주민’이란 단어를 사용해 그들의 정규화를 유도한다. 비정규 이주민이라도 지역 관공서에 등록하면 적어도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은 받을 수 있다. 비정규 이주노동자의 정규화는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구출하고, 불법고용으로 발생하는 탈세를 감소시킴으로서 국가 및 지방정부의 세수입을 증가시킬 것이란 게 국가인권위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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