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게 힘들다”
“숨겨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게 힘들다”
  • 강선일 기자
  • 승인 2019.07.2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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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농촌 속 소외된 사람들, 이주노동자①
[ 르포 ]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만나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소외된 농촌 속 소외된 사람들, 이주노동자①

농촌 이주노동자, 그들은 누구인가

이주노동자는 이제 우리 농촌을 지탱하고 있는 주요 축 중에 하나다. 그들이 없다면 농촌의 수레바퀴가 멈출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농촌의 농업인력 수요와 변화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 이주노동자 정책의 현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일본, 해외사례의 비교와 함께 이주노동자, 우리 농민, 전문가의 목소리를 5회에 걸쳐 보도한다.

수소문 끝에 어렵게 만난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가 지난 15일 월세 65만원의 아파트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은 저녁에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종이로 가렸다. 아내와 동료 등 5명과 함께 사는 A씨는 “문제가 생길 때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수소문 끝에 어렵게 만난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가 지난 15일 월세 65만원의 아파트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은 저녁에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종이로 가렸다. 아내와 동료 등 5명과 함께 사는 A씨는 “문제가 생길 때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숨겨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게 힘들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에게 한국에서 지내며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A씨의 말마따나 그들은 철저히 ‘숨겨진 삶’을 살고 있다. 언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단속반이 뜰지 몰라 불안해하는 삶.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와 같은 ‘숨겨진 삶’들이 없으면 한국의 농촌은 멈춘다.

A씨를 만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 이전에 다른 이들을 취재하려는 시도는 다 무위로 돌아갔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 농민들은 ‘익명 보장’을 강조해도 섭외를 거절했다.

어렵사리 섭외된 A씨를 만나러 가는 길, 마을엔 한국인보다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훨씬 많았다.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길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만약 이들이 떠난다면 마을은 텅 빌 듯했다.

A씨가 사는 낡은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 주민들은 전부 이주노동자들이었다. A씨의 집엔 그를 포함해 5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같이 살고 있었다. 3평 남짓 되는 작은 방. 방 구석구석에 쳐진 거미줄이 보였다. 곳곳에 생긴 곰팡이를 가리기 위해 벽지는 종이로 대충 발랐다. 마땅히 짐을 넣을만한 가구도 없기에 짐은 방 한 구석에 쌓아놓은 상태였다.

A씨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쌀농사를 짓다 왔다. 20대 후반인 그는 그 전엔 캄보디아에서 일하다 지난해 초 3개월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왔다. 그는 같은 나라에서 온 아내와 한 방에서 지냈다. 65만원인 월세는 같은 집에 사는 5명이 분담해서 낸다.

A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농장으로 간다. 매일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한다. 그러나 일이 끝나도 순회버스가 6시 30분에나 오기에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A씨는 “내가 살던 나라에선 하루 8시간씩 일했는데 한국에선 하루에 11~12시간씩 일한다”며 “일찍 일어나서 늦게까지 일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아플 때의 대처였다. 그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이기에 아파도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을 터였다. 그는 “내가 살던 나라에서 약을 택배로 보내와서 그걸 먹는다”고 말했다. 아파도 병원은 비싸서 안 간다고 했다. “많이 아프면 어쩌냐”는 질문에 그는 “안 아프다”고 강조했다. 그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A씨를 소개해 준 농민은 “노동자들이 아플 때가 제일 문제”라며 “마땅히 약 사먹을 곳도 없어서 아프면 그냥 자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단속반이 온 적 있었냐고 물었다. A씨는 “인근 마을에 사는 이주노동자 친구가 비자를 갖고 있는데, 그가 (단속) 소식을 전하면 친구들과 상의해 행동한다”고 말했다. 혹여 밤에 이동할 시엔 무조건 여럿이서 움직인다. 멀리 이동할 때도 택시를 이용한다.

이야기 도중 그의 방을 둘러보니, 창문이 벽지로 가려져 있었다. 왜 가렸는지 짐작하면서도 “왜 가렸냐”고 물었다.

“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르게 하려고 막았다. 빛이 밖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막았다.”

이처럼 열악하고도 불안정한 상황을 감수하고 그가 한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국의 소득은 내가 살던 나라의 3배”라며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A씨와 그의 아내가 한 달에 버는 소득을 합치면 280~300만원 수준이다. 1인당 140~150만원 정도 버는데, 그의 고국에선 한 달에 1인당 4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A씨는 “이주노동자 동료들은 보통 10년 동안 한국에 있다 가는데, 10년 일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매우 부자”라 밝혔다.

일당으로 보면 남성노동자는 9만~10만원, 여성노동자는 7만5,000원을 받는다. 인력사무소에선 ‘1만5,000원씩은 받아야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며 1만~1만5,000원을 수수료로 떼어간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 방에 걸린 달력엔 일했던 날과 안한 날이 모국어로 적혀 있었다. 한승호 기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 방에 걸린 달력엔 일했던 날과 안한 날이 모국어로 적혀 있었다. 한승호 기자

인근의 다른 아파트에도 이주노동자들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근처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서 집으로 가거나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으려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놨다. 혹시라도 사진을 찍었다가 단속반으로 오인하고 놀라거나 도망갈 사람들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이다.

A씨와 그의 아내는 오늘도 밭으로 나가 일한다. A씨는 “문제(단속반에 검거)가 생길 때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A씨를 비롯한 ‘숨겨진 삶’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 대신 우리의 먹거리를 만들고 있다. 앞날에 대한 희망과 불안감을 함께 품고.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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