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최저임금과 농산물 값은 하나다

  • 입력 2019.07.21 18:00
  • 기자명 강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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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2020년 노동자 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2.9% 인상된 8,59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권고를 고용노동부 장관이 수용할지 여부가 남았다지만 정부가 이 안을 거부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사용자측위원회가 제안한 2.9% 인상안은 물가인상률과 경제성장률도 반영하지 못한 졸속 결정이라며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 사퇴의사를 밝혔다. 1997년 IMF 국가부도 사태 시기, 2008년 국제금융위기 시기 2%대 인상률을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최저임금 역대 최저치 인상률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실지 사용자측 위원들은 3% 인상률을 수용할 수 없어 240원 인상안을 제시했다는 뒷말을 들으면 최저임금에 실지 영향을 받는 약 400만명의 노동자 생존권이 이런 식으로 결정된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년 안에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서둘러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의 이유가 너무나 궁색하다. 경제 상황, 경제 주체의 수용 가능성 등을 고려했다지만 소득주도성장의 상징정책으로 인식되던 최저임금을 두고 일방적으로 재벌과 기업의 편을 들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2015년 민중총궐기 투쟁부터 ‘이게 나라냐’를 외친 촛불 민중은 세월호 사고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정권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허탈감’이 항쟁의 동력이었다. 이명박·박근혜정권은 대놓고 친 재벌 정책을 폈으며 소득 양극화는 더욱 극심해졌다. 최저임금 1만원은 2017년 대선 당시 보수 후보들도 공약으로 내건 정책이며 문재인 후보는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해 3년 내 1만원 시대 개막을 공약한 것이다. 한마디로 최저임금 1만원은 촛불 민심이 합의한 시대적 과제였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파기를 촛불 민심에 대한 배반으로 해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산물 가격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늦장대처, 재탕·삼탕 처방, 관련 예산 삭감, 통계 부실 등이 이유다. 농산물 가격 근본대책으로 농민들이 주장하는 주요농산물공공수급제를 거들떠보지 않은 이유도 있다. 그보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는 좀 더 근원적인 원인은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보장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농업은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주도형 경제의 부속물로써 자유무역의 희생양이었다. 자동차와 반도체를 팔기위해 농산물 시장을 개방했다. 또한 농업은 노동자의 낮은 임금을 가능케 한 핵심 수단이었다. ‘먹는 것이 싸야 노동자를 싸게 부려먹을 수 있다’는 저농산물값 정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0년 이상 지속됐다. 역대 정권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끝내고 후속조치로 논농업직불제를 만들었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서명하고 쌀소득보전직불제를 실시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마치고 적선하듯 밭농업직불제를 도입했다. 서럽지만 직불제 확대 역사는 수입개방 확대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정권이 수차례 교체되고 촛불 항쟁으로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정권의 저농산물값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수입개방 정책, 저농산물값 정책은 친 기업 정책이다.

농가부채를 해결한다고 약속한 김대중 대통령, 쌀 수입은 막겠다던 노무현 대통령, 주요농산물 제값 받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 그들은 하나 같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아니 지키지 못했다. 이유는 권력이 자본과 재벌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민주당 정권의 권력 기반이 재벌이기 때문이다. 뇌물을 준 이재용은 석방됐고 뇌물을 받은 박근혜는 감옥에 있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권력은 시장의 손에 넘어갔다’고 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탄은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분단체제와 재벌체제, 이 양 구조가 한국사회를 규정한다. 문재인보다 더 진보적이고 더 민중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노동자, 농민, 빈민의 삶은 나아질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구조는 대통령 한사람을 바꾼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구조를 지탱하려는 세력과 구조를 혁파하려는 세력이 정면으로 맞붙는 정세, 이것이 격변기 정세의 특징이다. 구조를 혁파하려는 세력은 하나의 전선, 하나의 당으로 뭉쳐야 한다. 세력을 정치적으로 결속하는 것을 정치세력화라고 한다.

최저임금 역대 최저치 인상률 적용에 분노하는 노동자, 농산물 가격 연쇄 폭락으로 고통 받는 농민은 하나다. 이들의 연대가 정치적으로 일상적으로 강화돼 결국 정당 형태의 세력으로 발전할 때, 분단과 재벌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한 판 붙어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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