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어쩌나” 고민 깊어지는 양파농가

뒤늦은 중만생 양파 산지폐기·정부수매, 아무런 효과도 발휘 못 해

  • 입력 2019.07.21 18:00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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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폭삭 망했다. 내년에 양파를 심어도 되나 고민인데 마땅히 심을 게 없다. 고구마를 심자니 땅이 맞지 않고 보리나 밀을 심자니 그것도 똥값이다.”

지난 15일 찾은 양파 주산지 전남 무안. 무안농협 안에서 양파 이야기를 꺼내자 은행 일을 보러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말을 보태기 시작했다. 무안 매곡리의 한 농민은 “올해 양파를 밭떼기 거래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1마지기(200평)에 70만~80만원 받고 처리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옆 자리에 앉은 농민이 “보통 200평 밭에서 20kg 망이 200개 나온다고 계산하는데 그렇게 계산하면 이 집은 kg당 200원에 넘긴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부의 늑장대응은 결국 수확기 양파 가격지지에 실패했다. 지난 6월 전남 무안군 현경면 수양리 들녘에서 한 농민이 수확한 양파를 갈무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의 늑장대응은 결국 수확기 양파 가격지지에 실패했다. 지난 6월 전남 무안군 현경면 수양리 들녘에서 한 농민이 수확한 양파를 갈무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들이 기다렸던 정부수매는 이달 들어서야 진행되고 있다. 정부수매가격은 kg당 400원, 20kg 한 망에 8,000원이다. 농협 계약재배 물량이 같은 가격에 거래됐고 비계약 농가가 5,600원에 거래한 것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 2일 끝난 몽탄면 정부수매는 계획물량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이제는 양파가 농민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몽탄면의 임채점씨는 “보통 양파 수확이 끝나면 장마철이고, 또 밭에는 다음 작물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양파를 마냥 밭에 둘 수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수매할 때까지 창고에 저장해놓고 기다리자니 양파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도 다 돈이다. 그러니 돈을 덜 받고라도 처리해버리고 마는 것”이라며 “양파수확이 6월이면 다 끝나니 정부수매 계획은 5월에 나왔어야 했다. 지난해에도 뒤늦게 정부수매를 진행하더니 올해도 지금에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농민들에게 정부의 늦장대응은 낯설지 않다. 농민들은 올해 초 조생 양파를 폐기할 때부터 중만생 양파의 산지폐기도 서둘러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3월까지 1만톤 폐기를 당부했고 농식품부도 긍정적 답변을 내놨지만 무슨 일인지 산지폐기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는 동안 하필이면 비가 적당히 왔고, 기온도 적당히 좋았다. 냉해나 병충해 같은 피해 없이 양파는 야속하게도 너무 잘 자라줬다. 유례없는 풍작이었다. 재배 면적은 평년대비 2% 늘어난 수준이었는데 생산량은 30% 가까이 늘었다.

김병덕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비가 오고나면 수확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니 농민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가격이 떨어질 게 뻔하니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폭락할 줄은 몰랐다. 농가들은 패닉상태다”라며 “전체 물량의 30%는 계약재배를 해야 한다. 그래야 수급조절이 가능하다. 다만 농민에게 불리한 계약재배 정관을 유리하게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지금이라도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농협이 팔게 될 양파라도 조금 더 나은 가격을 받아야 조합의 적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안에서 만난 농민들은 “농협에 양파를 팔아놓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농협의 손실도 막아야 하고 후작물에 영향을 줘서도 안 된다”며 양파가격 폭락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석채 운남농협 조합장은 “무엇보다 농가 수취가격이 낮으니 농민들이 이자를 내는 것에서부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벌써부터 그 징후가 나타나고 있고 연말까지 농협이 안게 될 재정적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무안군은 올해 양파 산지폐기에 필요한 농가 부담금 12억원을 전액 지원했다. 2012년부터 모은 농산물가격안정기금 60억원 중 일부를 사용한 것이다. 무안군 관계자는 “무안은 미리 확보해뒀던 기금이 있으니 가능했던 일이고 농산물 가격안정 사업을 지자체에서 추진하기 어렵다. 사업에 필요한 금액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라며 “이는 사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올해 조생종부터 중만생종까지 5회에 걸친 양파 산지폐기에 필요한 비용 중 정부와 전남도가 부담한 것은 각 1회씩이고 나머지 3회는 지자체와 농협이 부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업이 방치돼 있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도 농업에 대해 한마디도 없다. 매년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 폭락에 지자체가 땜빵 식으로 대응해 예산을 투입하지만 농민들은 더욱 힘들어질 뿐이다. 농정 패러다임을 바꿔야 농민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고 그러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농업에 대한 청와대의 한마디가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농민들이 2월부터 요청했던 중만생 양파의 산지폐기는 5월에서야 이뤄졌고 이는 가격지지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결국 가격지지를 명목으로 쏟아 부은 예산은 허투루 쓰인 꼴이 됐고 농민들은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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