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나” … 길 잃은 농민들

  • 입력 2019.07.21 18:00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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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지 논을 갈아놓고는 아무것도 심지 못했다. 논 타작물 재배사업에 참여해 마늘을 수확한 뒤로 무슨 작물을 심어야 할 지 결정조차 못했다. 전방위적인 농산물 가격 폭락은 끝내 농민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16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의 간척지에서 한 농민이 허망하게 방치된 논을 가리키고 있다.한승호 기자
간척지 논을 갈아놓고는 아무것도 심지 못했다. 논 타작물 재배사업에 참여해 마늘을 수확한 뒤로 무슨 작물을 심어야 할 지 결정조차 못했다. 전방위적인 농산물 가격 폭락은 끝내 농민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16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의 간척지에서 한 농민이 허망하게 방치된 논을 가리키고 있다.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과거엔 희망이라도 있었다. 양파 가격이 좋지 않을 것 같으니 내년엔 마늘을 심어야겠다, 아니면 감자를 심어볼까 하는. 하지만 지금 상황을 봐라. 감자도 폭락, 배추도 폭락, 대파도 폭락….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양파 때문에 빚만 남긴 농사를 했다는 전남 함평의 한 농민이 취재 중이던 기자에게 한마디 툭 던지고는 사라졌다.

대표 양념채소인 양파와 마늘 가격이 올해도 어김없이 폭락했다. 농협 계약재배를 하지 않거나 정부수매를 기다리지 못한 농가는 kg당 200원이라는 헐값에 양파를 처분해야 했다. kg당 1,500원. 마늘 주산지 경남 창녕에선 평년 수준의 절반에 그친 마늘 가격에 농민들이 놀라자 경매가 중단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농민들의 한숨이 더 안타까운 건 이번 가격 폭락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예견된 폭락’이었기 때문이다. 양파농가들은 지난 2월 조생종 양파의 산지폐기를 결정할 때부터 중만생종 양파 산지폐기도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농식품부와의 간담회를 수차례 거치면서 ‘중만생종 양파 산지폐기도 3월 안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결국 중만생종 양파 산지폐기는 5월이 돼서야 일부 이뤄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산지폐기가 늦춰진 이유를 “산지폐기를 섣불리 진행했다가 작황이 부진해져 가격이 오를까봐 걱정을 한 것 같다. 산지폐기가 정책의 실패라고 욕먹을까 겁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늘농가도 상황은 마찬가지. 현장에선 kg당 2,500원, 6만7,000톤 수매를 정부에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kg당 2,300원에 2만3,000톤 격리였다. 예상보다 심한 폭락에 분통을 터뜨렸던 농민들은 정부의 미온적 대처에 또 다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지독한 가격 폭락의 늪에 탈출구가 없다는 것. 한 지자체 공무원은 “정부의 장려로 논에 마늘을 심고 양파를 심기 시작했다. 논 타작물 재배사업을 실시하고 채소류가 다 망해버렸다. 논에 들어간 작물들의 가격이 떨어지니 그보다 가격이 조금 나은 다른 채소류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결국 가격 폭락이 농산물 전체로 번지는 것이다. 엄연한 정책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이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영혼 없는 농정과 농업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정부. 농민을 위하지 않는 이 땅에서, 농민은 결국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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