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야간통금④ ‘청춘사업’과 통금

  • 입력 2019.07.1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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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통행금지 관련 시리즈의 기사를 페이스북에 링크해놨더니 어떤 친구(물론 남정네다)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때 통행금지 덕분에 결혼했어요.

통행금지 ‘때문에’ 어떤 인연을 놓쳐서 아깝게 결혼이 깨졌다면…그건 이야깃거리도 뭣도 아니다. 하지만 좌중에서 누군가가 통행금지 ‘덕분에’ 결혼에 성공했다는 말을 꺼낸다면,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야간통금 시대에 청춘을 살아낸 세대라면, 당신은 눈빛에 야릇한 호기심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두어 무릎을 그에게 당겨 앉으면서 이렇게 채근할 것이다.

-야, 재밌겠다, 첨부터 자세히 말해봐. 어떻게 됐는지….

좌경용공분자의 활동과 사회불안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야간통금을 실시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밤 시간에 거리 통행을 차단하는 것이 그런 ‘불순(?)’ 세력의 활동을 없애는 데에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도통 모르겠다.

그보다는 오히려 통행금지가 청춘들의 연애사업을 방해하는 장애물로서 위세를 부렸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성 간에 정분을 나누려는 욕구는 조물주가 부여한 것인데, 국가에서 남녀사이에 ‘통금’이라는 바리케이트를 치고서 “이제 그만 집에 가!” 하는 식으로 방해를 하다 보니, 특히 사내들(은 대체로 조금씩은 음흉하다)은 밤이 깊어질라치면 무언가 계략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왕년에 영등포경찰서 관할지서의 순경이었던 이병옥 씨는 말한다.

“12시를 넘기면 집에 갈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서 남자가 시간을 질질 끌다가 막판에 어떻게 해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한단 말예요. 그럴 때 영리한 여자는 도망쳐서 파출소로 뛰어 들어옵니다, 파출소에서는 제 발로 들어와서 보호요청을 하는 경우엔, 통금 위반자로 적발해서 본서에 넘기거나 하지 않습니다. 통금 해제 시각까지 보호를 해주지요. 그런데 덜 영리한 여자의 경우 여관까지 순진하게 따라갔다가 이게 아닌데, 하고 뛰쳐나오려다 남녀 간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져요. 결국 여관주인의 신고를 받고 우리가 출동을 하지요. 아이고, 참, 거기 얽힌 얘기들은…그야말로 천태만상이었어요.”

그 무렵 서울에 사는 남녀가 멀찌감치 인천의 월미도쯤에 데이트 나갔다가 의도적으로(?) 통금에 걸렸겠다, 그들은 밤새도록 여관방에서 남녀 간에 여남 간에, <제물포조약>의 불평등 문제에 관하여 심야토론을 하고 왔다는 가담항설이 나돌기도 하였고…. 남자 친구의 꾐에 빠져 신촌역에서 교외선 열차를 타고 장흥 아니면 마석에 갔다가 통금에 걸려서, 밤새도록 민박집 아이의 과외지도를 해주고 왔다는(믿거나 말거나) 여대생의 후일담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 시절에 나는 비교적으로, 아니 매우 순진했기 때문에, 앞에서 왕년의 경찰 이병옥 씨가 말한 그 ‘천태만상’을 여기 늘어놓을 재간이 없다. 젊은 독자 중에서 그래도 궁금증이 남는 사람은, 오늘 저녁 부모님께 넌지시 이렇게 여쭤보시라.

“엄니 아부지는 결혼 전에 혹시 야간통행금지에 걸려서 함께 외박을 하신 적이…?”

그렇게 물었을 때 부모님이 지나치게 큰 소리로 아니라고 말하면서 펄쩍 뛰신다면…그러신다면 나중에 아부지한테만 따로 한 번 살짝 여쭈어 보시라.

1970년대 중반의 어느 여름 날, 경상북도 상주군 화서면 소재지에 있는 대폿집에서 밤늦도록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대여섯 명의 총각들이 술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와 보니 새벽 두 시였다. 그때 지서 순경이 호루라기를 불며 쫓아왔다. 그런데 이 총각들, 고성방가에다 순경들의 약을 올리는 손짓을 해가며 ‘나 잡아 봐라!’ 식이다. 호루라기를 불며 쫓아오던 경찰이 어느 순간 추격을 포기하고 지서로 돌아간다. 바로 그 일행 중 한 명이었던 윤춘일 씨의 얘기를 들어보니….

“상주 화서면에서 다리 하나 건너가면 충북 보은 땅이에요. 충북은 통금이 없었잖아요.”

충청북도, 제주도, 그리고 관광지인 경주의 경우 특별히 통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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