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축산 해보려 해도 탄식만 나오네
다양한 축산 해보려 해도 탄식만 나오네
  • 홍기원 기자
  • 승인 2019.07.14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생산에서 가치로, 축산 패러다임 전환을 ] 축산을 지켜야 밥상주권 지킨다 ③

가치란 다양성이다

본지가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생산에서 가치로, 축산 패러다임 전환을> 연재기획이 끝을 맺는다. 축산 안팎의 변화가 급격한 상황에 저마다 가치를 더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본지는 이번 기획에서 인식 변화가 일어나는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발굴하고자 했다.

기획을 마치면서 내린 결론은 ‘가치란 다양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축산농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치를 찾고자 시도하고 있었다. 매일 농촌에서 숨쉬고 살면서 농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얻은 지혜의 깊이는 펜대만 굴리는 기자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런데 중앙에선 생산성에 무게추를 둔 규모화와 획일화의 목소리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축산 역시 산업의 하나”라면서 대규모 사육과 일원화된 유통만이 나아갈 길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구호라 할지라도 생명산업의 특수성과 식량주권을 지켜야 할 의미까지 부정하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산업화=규모화’라는 편견을 부추길까 우려된다.

그 산업의 영역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해서 정책을 만들고 영세자영업은 또 구분해서 보호한다. 대기업-중소기업-영세자영업이 함께 공존해야 산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축산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서 축산영역을 보면 환경, 동물복지 등 다양한 가치가 거론되지만 정작 축산소농은 어떻게 유지하고 나아가게 할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축산기업과 일부 대농만 육성하는 기존 정책방향에 요란한 구호만 덧칠해서야 실속있는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본지의 이번 연재기획이 진정한 축산의 가치를 찾는 데 작은 단초라도 제시했길 바란다.편집자 주

경북 경주시 이삭농장은 지난 1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획득했다. 이준영 이삭농장 대표는 “작은 규모의 농장도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정책 기조가 규모화에만 맞춰져 있다”면서 “소농들이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경북 경주시 이삭농장은 지난 1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획득했다. 이준영 이삭농장 대표는 “작은 규모의 농장도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정책 기조가 규모화에만 맞춰져 있다”면서 “소농들이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축산분야 동물복지에 관한 담론이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동물복지축산을 실천하는 축산농민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규모화·획일화 위주의 정책방향과 안티축산의 소재로 활용되기만 할 뿐 지속가능한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데엔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 이들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우리나라 전체 동물복지축산농장은 225곳이다. 이 중 산란계농장이 133곳에 달한다. 동물복지 산란계농장의 절대다수는 사육규모가 3만수 내외를 넘지 않는 소규모농장이다. 수십만수를 넘어 100만수 단위의 대형농장과는 사육부터 판로까지 모든 영역이 다르다는 의미다.

가치 만들려 노력해도 인정받기 힘들어

경북 경주시 이삭농장(대표 이준영)은 올해 1월 동물복지 인증을 획득한 농장이다. 지난 8일 농장을 찾았는데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왕겨 등을 두껍게 깐 4동의 계사엔 닭들이 횃대에 오르거나 모래목욕을 하고 있었다. 특히 흰색의 수탉이 암탉들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준영 대표는 그간의 마음고생으로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정부에서 강소농을 육성하겠다고 얘기하지만 요구하는 걸 다 갖추면 그 형태가 될 수 없다”며 장탄식부터 쏟아냈다. 농장에서 생산한 동물복지 유정란을 지역 내 학교급식에 공급하려 했지만 경상북도 방침이 1등급 계란을 권하고 있어 무산됐다고 한다.

등급을 받으면 안 되는걸까? 이 대표는 “겨우 1만수 규모 농장에 등급란 받을 시설을 들일 수는 없다. 그러면 인근 대형농장에서 받아야 하는데 방역 때문에 그런 민폐를 끼칠 수가 없다”면서 “동물복지 산란계농장은 대부분이 소규모농가라 등급을 받기 어려운데 규정이 그렇다니 어쩌겠나. 강소농이란 게 참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 대표는 2000년에 2만수 규모의 재래식 산란계농장을 물려 받았다. 그 뒤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사육방식을 바꾸는 연구를 거듭해 2016년엔 과메기 부산물 활용 가금류용 사료로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고심 끝에 동물복지 인증을 받기로 하고 농장을 신축했다. 그러면서 사육수수를 최대 4만수에서 9,000여수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부가가치를 높여 새로운 시장을 찾겠다는 도전을 한 것이다.

그러나 과잉생산에 무너진 시장상황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동물복지에 특허를 받은 계란을 일반란 가격에 처리할 정도로 판로를 찾기 어려웠다. 한차가 나갈 때마다 300만원에서 400만원씩 깨지더라”면서 “지역 내 로컬푸드와 직거래 판로를 알아보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육수수를 줄였지만 일은 더 늘어만 갔다. 바닥관리부터 바닥에 떨어진 계란을 일일이 줍는 번거로움은 기본이다. 동물복지 사육방식은 곳곳에서 현실과 부딪혔다. 그는 “닭이 아파도 항생제를 투여하면 안 되니 약을 쓸 수 없다”면서 “지금은 약탕기를 구입해 한약을 직접 달여서 사료로 급여하고 있다. 하지만 닭이 아프면 치료를 하는게 동물복지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막연한 동물복지가 아닌 현장을 토대로 한 구체적인 동물복지 모델도 절실해 보였다. 이 대표는 “계사 내 채광도 걱정이다. 햇볕을 직접 내리쬐는 면적이 클수록 여름철 계사내 온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올 여름이 지나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육규모 불려라 부추기는 현실 어쩌나

경남 하동군 예울농장(대표 배태민)은 2년 전부터 초지에 방사해서 산란계를 사육하고 있다. 5,000여평의 초지에 방사하는 닭은 고작 500여 마리에 불과하다. 배 대표는 차 농사를 짓다가 축산에도 뜻이 닿아 산란계 사육을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배 대표는 최근 산지생태축산 지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미 많이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산지생태축산에 지정되면 닭은 처음이라고 하더라”라며 “시작할 때엔 법규도 잘 모르고 그저 계란만 건강하게 생산하면 되는가 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예울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은 인근 유기농이유식업체에 납품되고 나머지 분량은 인근 20여 가구에 직배송으로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500수로는 안정적인 운영이 어려운 사정이라고 한다. 암수비율 15 대 1에 산란율은 75~80% 수준이니 그럴만하다. 배 대표는 “2,000여수로 늘리면 안정적일텐데 여러 규정상 그게 안 된다”라며 “많은 소농들이 산지생태축산이나 동물복지축산에 참여하게 하려면 규정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주위 환경은 2,000수 규모로도 안 된다며 그를 압박하고 있다. 배 대표는 “교육받으러 가보면 대량생산에 맞춘 교육만 많다”면서 “식용란수집판매업 신설도 대량생산농가를 기준으로 하는거지 소농에게 구태여 적용할 필요가 있느냐”며 아쉬움을 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나 농림축산식품부는 “산란계 소농의 현실을 감안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은 여태껏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물복지나 산지생태축산을 실천하는 농민들을 만나면 공통된 질문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내라는 말은 구호에 그칠 뿐, 규모화·획일화만을 고집스레 강요하는 게 현실 아닌가? 정부는 이 물음에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