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생명의 가치를 가장 위에, 우리농촌살리기 운동 25년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출범 25주년 좌담

  • 입력 2019.07.14 18:00
  • 수정 2019.07.17 15:1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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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994년 6월 29일 출범한 한국 천주교의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농축산물의 수입개방이 본격화되던 시기 농업이 가진 생명의 가치와 농촌공동체를 지키고자 시작됐다. 바로 이듬해 매년 7월 셋째 주를 농민주일로 지정한 한국 천주교는 도시와 농촌을 잇는 수많은 생활공동체를 건설하며 “함께 살고 모두를 살리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운동 출범 25주년을 맞아 지난 8일 공동체 속 생산자·소비자 대표들이 모여 운동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좌담회 참석자 

심증식 한국농정신문 편집국장(좌장) 

정한길 가톨릭농민회 회장

이성남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생활공동체협의회장

이승현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서울대교구 부본부장

강성중 가톨릭농민회·우리농생활공동체 사무총장

 

심증식 : 우리농촌살리기 운동은 어떤 배경 속에서 시작됐나.

 

정한길 :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후 수입농산물이 개방되자 우리 농업이 그야말로 매우 어려워지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나서야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농민들을 위해 시국미사 겸 기도회를 열었던 것이 기점이 됐고, 각 교구연합회들이 문제에 공감하며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시작됐다. 소득이 줄어들고, 판로가 사라져 농민들이 설자리가 없어진 상황에서 그 농산물들을 교회 안에서 우선적으로 소비하도록 하는 게 이 운동의 핵심이다.

 

이승현 : 오늘날 도시 소비자는 농산물을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으로 사지만, 우리는 농민들이 이듬해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농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마음으로 정당한 값을 지불한다. 구매 행위 자체를 생명농업(천주교 내에서 친환경·유기농업을 지칭)을 위한 신앙행위로 보는 것이다. 소비자는 농민이 먹을 밥을 걱정하고, 농민들은 이것을 먹을 사람들을 걱정한다. 농민과 소비자는 서로 상대방의 식탁을 걱정하는 것이고, 곧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관계를 가지는 공동체가 이뤄진다. 가톨릭농민회라는 기반이 아니었으면 이뤄지지 못했을 부분이다.

 

심증식 : 실천을 위해 어떤 길을 걸었는지 궁금하다.

 

강성중 : 이것을 처음 시작할 때 전통적인 방식의 농업은 사라진지 오래라, 농민들은 농사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매우 어려웠다. 당시 약을 치지 않고 지어보려니 외로워 협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첫해는 버텨도 그 이후는 갈수록 버티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지었다. 우여곡절 끝에 몇몇 사람들이 먹어주기 시작했고 그 시점이 바로 운동의 초기상황이었다. 부산교구 같은 경우를 보면 농약을 점차적으로 줄여서 무농약까지 이뤄내는데 농민들이 15년 이상 걸려 바꿔냈다.

 

이승현 : 지금은 예전과 달리 소비권력을 바탕으로 도시가 힘을 가지고 있다. 도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농민들도 변할 수 없다. 사람들이 구매하는 걸 농민들도 만들 수밖에 없고. 생계를 위해 팔 수 있는 작물을 중심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소비자 교육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치관의 도구로서 소비를 바라보라고 가르치는데 사실 사람들이 살아온 관성이 있기에 교육을 받을 땐 끄덕이다가도 마트에 가면 때깔 좋은 것만 고르거나 g당 얼마인지 단가를 보는데서 벗어나기 어려워한다.

우리농은 사회 전체의 큰 틀에서 벗어난다. 어찌 보면 교회가 해왔던 수없이 많은 복음적 선택이란 것들이 그랬다. 그러나 교회가 2,000년 동안 버틴 가장 큰 힘은 세상에서 잘못된 것에 대해 우리가 이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의문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농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심증식 : 말씀대로 농업과 농촌의 권위가 떨어졌고 가치가 없는데도 왜 천주교만은 농업에 나서나? 교회 내에서도 저항이 있지 않나?

 

이승현 : 우리의 출발점 자체가 식탁이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사, 곧 성체성사인데 그것도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서 시작됐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점이자 약점 중 하나가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농업이 없으면 식탁을 차릴 수가 없다. 미사 때 제물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 역시 농업의 결실이니, 이것을 만들 수 없으면 교회도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땅을 가꾸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준 첫 번째 사명이고 지금도 농민들은 실천하고 있다. 교회는 농업과 식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성남 : 농민들의 지속성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매이익 역시 농민을 최우선으로 염두하고 나눈다. 사실 운동본부는 교회 안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조직이 아니다. 나부터도 그렇게 봐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물건을 파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활동 해보니 남는 게 없다. 이것이 장사가 아니라는 것부터 느끼며 시작했다.

부산교구에 소속된 나는 언양분회, 밀양분회 신부님들의 월례회의를 통해 농사짓는 농민들이 서로 농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다. 서로가 농사법과 규칙에 대해 공유한다. 이 분들이 생산규칙을 지키면서 농사지을 수밖에 없도록 교회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니 신뢰가 가지 않을 수 없다.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교회에 돌아간 신자는 나눔터(교회의 판매대)에서 나도 모르게 홍보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 역할을 생활공동체가 하고 있다.

 

심증식 : 이 운동이 그간 이룬 성과가 있다면.

 

이성남 : 이제 활동가가 2,000명을 넘었으니 규모만으로도 성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우리는 물품나눔(농산물 판매)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실천도 하고 있다. 농민들이 생명농업을 한다면 소비자들은 자판기 커피 없애기,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생활재 만들기 운동을 통해 일회용품을 줄이고 샴푸나 세제를 직접 만들어 쓰며 자연환경이 파괴되지 않게 했다. 20년 이상 오래 활동하신 분들도 꽤 존재하고 있어서 그분들을 통해 노하우를 듣고 조직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정한길 : 교회가 농업 농촌을 위해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에 큰 역할이 있다고 본다. 천주교가 잘한다면 다른 종교들도 따라할 것이고. 잘 될 때까지 하려고 하는 건지 벌써 25년째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한시적으로 10년만 하려고 했던 걸로 알고 있다. 특히 농민주일을 제정했다는 것 또한 큰 의미가 있다. 단 하루라도 일용할 양식을 생산하는 농민들을 기억하고 기도한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 교회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여러 소비자협동조합들의 활동모델이라거나 정부의 친환경 육성도 여기에서 시작했다.

 

심증식 : 운동의 사회적 확산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나.

 

 

강성중 : 어린이집·유치원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생활 운동이라는 틀을 이용해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등 먹거리에 대한 인식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귀농학교 또한 같은 이유로 고민하고 있다. 이렇듯 영역적 부분에서는 농업에 대한 인식을 바꿀 새로운 활동들을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 조직 내부적으로는 확신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이성남 :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농 운동이 너무 확산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한다. 처음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다치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활동가들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다치면 참여할 이유를 잃을 수 있다. 우리는 1차 농산물의 가치를 굉장히 중요시 하는데 지금은 많은 수의 가공품들이 매장을 채우고 있다. 물품위원회라는 게 있어서 더 이상 까다로울 수 없을 정도의 검증을 거치긴 하지만 초창기를 생각하면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환경과 생명에 대해 생각하는 입장에서 포장재의 문제도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이승현 : 우리가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생활패턴의 변화다. 어렸을 때만 해도 밖에서 밥을 먹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지금은 집에서 밥을 안 하는 시대다. 식생활이 늘 고정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 운동이 미래를 지향한다면 식생활 변화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본다.

 

심증식 : 마지막으로, 우리 농정의 변화를 주문한다면.

 

정한길 : 우리는 과거 전국농민회총연맹 출범 이전 역사 속의 역할 이후 소수의 활동가들이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생명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거름이 필요한데 그것을 만들기 위한, 자급퇴비를 위한 소 사육은 특히 매우 중요한 사례다. 비록 고기가 목적이 아닌 소지만 가장 안전한 고기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땅을 살리는 순환농업을 가능케 한다. 이 부분을 대한민국 농정당국이 받아들인다면 좋겠다. 적정규모의 소를 어떤 농민이든지 생명농업을 한다고 하면 사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쪽에선 지금 푸드플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밀을 예로 들면 가농을 중심으로 운동이 일어난 지 벌써 28년이 흘렀지만 자급률은 보시는 대로다. 품목별 국산 농산물 생산 계획 수립 뿐 아니라 법제화까지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푸드플랜은 공염불이다. 8,000만 한민족을 위한 먹거리 계획은 곡물자급률 23%, GM 농산물 수입, 줄어가는 농민들, 이런 것들을 기초로 해서는 이뤄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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