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수당에 대하여

  • 입력 2019.07.14 18:00
  • 기자명 강흥순(충남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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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흥순(충남 부여)
강흥순(충남 부여)

들녘마다 푸름이 짙어가고 있다. 벼들은 마음껏 물을 빨아들여 새끼를 치다가 머지않아 벼꽃을 밀어 올릴 것이다. 벼꽃은 작기도 하거니와 색깔도 향기도 짙지 않아서 마치 농부의 겸손함을 고스란히 닮았다.

농촌과 농민은 이 나라의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의 훌륭한 디딤돌이었다. 세계 10위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경제는 농민의 뼈와 살을 짓이겨 이룬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국민들이 그것을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생산비보다 조금만 비싸면, 그래서 농사를 지어 작은 이득이라도 볼라치면 농산물 값이 폭등했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외국 농산물을 즉시 수입해서 가격을 평정해버린다. 그러다가 생산과잉으로 곤두박질을 치면 정부는 모르쇠인 채 눈을 감아버린다.

이것은 적절한 대처방안이라고 국민 모두가 묵인하는 오래 묵은 관행이다. 슬프고 아프고 무서운 현실이다. 생산과잉의 문제보다 수입과잉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본질적으론 UR이 문제였고 WTO가 문제고 FTA가 문제인 것이다.

농산물 값이 비싸서 못 살아가는 시대는 오래 전 지났다. 몇몇 재벌의 배를 불려주기 위하여 농민의 등에 칼을 꽂은 나라는 흔하지 않다. 그 결과 농촌의 현실은 충분하게 잔인하고 농민의 미래는 넉넉하게 불안하다. 식량자급률로 따져서 식량대란이 도래하면 우리는 대다수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농업과 농민의 미래가 불안하면 국민은 더 불안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올해도 무와 양배추를 시작으로 대파 시금치를 지나 양파며 감자 농사가 망했다. 언제까지 농민에게 이 고통의 짐을 안겨줄 것인가. 굳이 애국이란 이름을 빌려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농촌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농민의 아픔과 서러움을 보듬어 주는 것은 값싼 동정이 아니고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의 시작이 지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농민수당이다. 수당이란 정해진 봉급 외에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지급되는 보수를 말함인데 사실 농민에게는 정기적인 봉급이 있었는가?

조사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추정하건데 농민의 평균 연봉은 도시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다. 식량이 주권이고 안보인 것을 알면서도 내박치고 홀대했던 농촌과 농민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농민수당은 알량한 선심정책이 아니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합당한 대우이며 보상이다.

농촌과 농민이 거지꼴로 살아가는 선진국은 없다. OECD 식량자급률 최하위를 언제까지 자랑할 텐가. 벼꽃이 화려하지 않지만 끝내 윤기가 좔좔 흐르는 알곡으로 익어가듯이 농민도 도드라지지 않지만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져주는 식량안보의 전선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로 싸우는 초록전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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