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인증으로 생산자-소비자가 함께하는 친환경농업

  • 입력 2019.07.14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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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농업을 만들어가는 ‘자주인증’이 친환경농업 발전의 대안으로 떠오른다. 자주인증은 농산물 생산과정을 생산자·소비자가 같이 살피며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인증 방식이다. 국내 대표사례 중 하나인 한살림연합(상임대표 조완석, 한살림)의 ‘참여인증’ 과정을 통해 자주인증이 기존 인증제도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피고자 한다.

2011년부터 한살림은 자주관리·자주점검·자주인증 제도를 도입했고, 2017년엔 참여인증 추진 TF를 구성해 운영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4개 산지조직들이 참여인증에 시범적으로 참여함과 함께 조합원 대상 자주점검단 교육이 진행됐다. 올해 들어 참여인증 참여 산지조직은 26곳으로 늘어났다.

생산자·소비자·실무자 합동 자주점검

생산공동체 단위에서 참여인증신청서를 제출하면, 생산자·소비자·실무자 합동으로 1년에 최소 2회 이상 생산지 점검에 나선다.

그 동안 국가 친환경인증제가 토양이나 농작물에서의 농약 및 화학비료 검출 여부를 중심으로 점검에 나섰다면, 참여인증 하의 점검활동은 전반적인 농사방식과 그 과정의 미흡한 점을 살피는 데 주안점을 둔다. 기존 친환경인증제보다 더 엄격할 수도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두 인증의 차이점은 점검의 ‘목적’이다. 국가인증이 기준을 지키지 못하거나 안 지키는 친환경농민에 대한 규제·처벌에 중점을 둔다면, 참여인증은 미흡사항에 대한 개선과 발전을 주 목적으로 삼는다. 참여인증에 참여하는 생산자·소비자·실무자는 지속적 만남을 통해 자주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발견된 미흡사항에 대한 개선방안을 토의해 이후 자주관리 활동에 반영한다.

참여인증심의위원회에선 자주관리 결과를 놓고 참여농가에 대한 인증 심사를 한다. 미흡사항에 대해 자주관리를 통한 시정과 재점검이 필요한 경우엔 ‘조건부 승인’으로 심사한다. 비의도적 혼입 농약이 약간만 검출돼도 인증 취소 처분부터 내려 온 국가인증과 달리, 참여인증은 ‘왜 농약이 혼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나’, ‘농약 혼입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등의 내용을 생산자·소비자·실무자가 함께 논의하고, 문제의 개선점과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점검활동을 진행한다.

지난 9일 충북 괴산군 느티나무공동체의 친환경농민 박호철씨(왼쪽)가 허진철 한살림괴산생산자연합회 팀장과 토종오이밭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9일 충북 괴산군 느티나무공동체의 친환경농민 박호철씨(왼쪽)가 허진철 한살림괴산생산자연합회 팀장과 토종오이밭을 둘러보고 있다.

기형 토마토를 그냥 두는 이유

올해 한살림 참여인증에 참여한 충북 괴산군의 생산공동체들은 참여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느꼈을까.

귀농해서 괴산 느티나무공동체에서 토종작물 농사를 짓는 박호철씨는 “자주점검 과정에서 각 농가마다 어떤 친환경농자재를 쓰는지, 농자재의 약효는 어떤지 등을 파악한다”며 “느티나무공동체 소속 생산자들은 괴산 곳곳에 흩어져 있다 보니 각자의 농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만드는 게 어려운데, 자주점검에 참여하면서 서로의 농사방식과 그 과정의 어려움을 공유하는 기회를 늘리게 됐다”고 밝혔다.

괴산군 감물면의 생산공동체인 흙사랑의 경우, 참여인증 활동 과정에서의 사례 공유를 통해 표고버섯 재배 과정에서 발생한 톱밥 및 배지를 지역 단위 순환농업에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수입 유박 대신 수단그라스 등 녹비작물과 우분(牛糞)을 활용하는 농가, 고추밭 사이에 청보리를 심어 초생재배를 하는 농가 등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농가들이 늘고 있다.

괴산 솔뫼공동체 농민 김윤희씨는 “원래 우리 공동체에선 매달 자체적인 자주점검 활동을 진행해 왔는데, 최근 한살림 참여인증 시행을 계기로 각 품목별 점검활동을 구체화하기로 했다”며 최근의 점검활동을 소개했다. 최근 솔뫼공동체 내 고추 재배농가들은 진딧물 발생으로 곤란을 겪었다. 이에 공동체는 자주점검 활동 과정에서 진딧물 방제 방안을 찾는 데 중점을 두고 점검활동을 진행했다. 공동체 회원들은 농가에서 진딧물의 천적들을 키우거나 참깨를 심는 등의 진딧물 방제 노력 사례를 공유했다.

토마토 재배농가에서 기형적으로 자라난 토마토가 발견된 게 있었는데, 기존 국가인증 하에선 그냥 베어냈겠지만 솔뫼공동체 생산자들은 남겨뒀다. 어떤 이유로 기형적으로 자라나게 됐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다. 괴산 농민들은 참여인증을 통해 ‘과정 중심’ 친환경농업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허진철 한살림괴산생산자연합회 팀장은 “그 동안 국가인증에 의존하면서 농민들은 서로 정보 교환도 어려웠고 각자 기존에 짓던 농사방식에 변화를 주기도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다며 “최근 참여인증의 본격화 과정에서 농민들이 다른 농민들의 농지를 살피며 개선점을 지적해 주고 그곳에서 배울 것은 배우는 식의 정보교류가 이뤄지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한살림서울 강동구 지부 사무실에서 한살림 참여인증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일 한살림서울 강동구 지부 사무실에서 한살림 참여인증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유기농업 본질 이해’가 시작

지난 8일 서울시 강동구 한살림서울 강동구 지부 강의실. 3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여인증 제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날 교육은 참여인증 과정 및 유기농업의 성격, 철학 등에 대해 4개월 간 사전교육을 받은 조합원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날 교육을 진행한 한살림서울 조합원 김미경씨는 “옆농가에서 제초제를 뿌린 게 실수로 비산돼 인증 취소된 사례, 토양오염이 의심돼 농사 전에 미리 잔류농약 검사를 했더니 미량의 농약이 검출된 사례 등 안전 중심, 결과 중심의 친환경인증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하며 “참여인증은 1986년 한살림이 탄생할 때 표방했던 것처럼 땅과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위한 방안이며, 생산자·소비자·실무자의 신뢰 회복을 핵심으로 삼는 인증”이라 설명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한살림 안에서 소비자들의 유기농업과 참여인증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게 한살림의 목표다. 유기농업의 근본 목표와 참여인증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없이 참여인증은 ‘또 하나의 규제수단’으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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