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정, 또 다시 학생들을 부르다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충북 진천 사당마을의 1년'을 시작하며

  • 입력 2019.07.07 18:00
  • 수정 2019.07.08 21:4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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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스윗가이’ 김상만씨가 자신의 트랙터로 학생들의 작업을 돕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지난 5월 주민들이 학생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만든 곤포 사일리지들이 쌓여있다.
‘스윗가이’ 김상만씨가 자신의 트랙터로 학생들의 작업을 돕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지난 5월 주민들이 학생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만든 곤포 사일리지들이 쌓여있다.

 

농업·농촌의 쇠퇴와 더불어 요즘 많은 대학들의 농활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 하니 농활 없는 대학이라는 것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겠지요. 서울여자대학교(서울여대) 역시 최근 학생회나 단과대학 차원의 농활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에서는 가끔씩 농활을 갈망하는 자들이 나타나 스스로 농활대를 조직하곤 했다는군요. 올해 서울여대엔 그런 학생들이 몇몇 있었고, 그 목적지가 바로 이곳 충북 진천군 사당마을(관지미)이 됐습니다.

“농활을 가고 싶어하는 친구들 몇 명이 모여서 기획을 했어요. 학교 차원에서 농활을 안 가니까 너무 가고 싶어서 학교 커뮤니티에 한번 올렸는데 신청서가 7~8장 왔어요. 저희는 사실 두 명만 온다고 해도 갈 생각이었는데. 가을에도 또 올 거에요.”

요즘은 대학마다 재학생들만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고, 그곳에서 다양한 정보가 오갑니다. 그곳에 공고를 올려 농활을 성사시킨 대장 이달빛(24·영어영문학과) 학생은 이미 사당마을에 푹 빠진 모습이네요. 지난 5월 처음으로 농활대를 조직해 인연을 따라 사당리를 처음 방문했고, 학기가 끝나자 주저 없이 여름농활을 또 계획한, 범상찮은 친구들입니다.

“(봄에) 왔던 친구 7명, 새로 온 친구 4명. 여기는 다 와 봤던 친구들이네. 이거 봐, 이 친구, 무려 낫질을 하잖아!”

일을 잘하고 있는지 나와 본 사당마을 이장 유주영 씨가 한 학생의 낫질에 주저없이 합격점을 주며 크게 웃습니다. 이장님은 오전의 과업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큰길의 잡초를 베게 했습니다.

“여러분 힘내서 일!”

“벤다 풀! 먹는다 삼겹살!”

이날 아침 6시에 일어나 마을회관을 나선 9명의 대원들은 저녁에 먹을 삼겹살을 생각하며 다섯 시간(중에 쉬는 시간이 한 시간은 넘었던 것 같지만요)을 낑낑대고도 결국 저 길 끝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지나간 자리의 제초가 제대로 됐는지도 살짝 의문스럽지만, 이장님과 마을 사람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을 겁니다. 사실, 제초라면 도가 튼 주민 한명이 등에 예초기만 매면 금방 끝낼 수 있는 양이니까요. 중요한 사실은 농촌을 찾은 젊은 친구들 덕분에 사당마을이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고, 세상에 별로 드러내 보일 기회가 없었던 마을의 정이 간만에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부락의 형태로 이제 불과 10여 가구가 사는 사당마을은 늘 조용했습니다. 항상 훌륭한 이장님들이 마을을 이끌었고 마을 사람들 간의 우애가 돈독한 편이라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농촌이 그렇듯 고령화와 이주로 사람이 하나 둘 줄면서 활력을 잃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최근엔 마을 전체가 진천군이 새로 개발할 산업단지의 예정부지가 되면서 소멸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농촌에서 머물러보겠다고 두 번이나 찾아온 학생들이 얼마나 예뻤을까요? 이 친구들은 지난 봄농활 때 마을 입구에 곤포 사일리지 더미를 세우고 ‘산업단지 반대’, ‘관지미를 지키자’는 문구를 크게 써 넣는 작업도 함께 했었습니다.

“그냥 너무 다 잘해주셔서. 같이 온 친구들은 물론이고 마을 분들이 너무 좋으세요. 같은 마을에 오니까 계셨던 분들 또 본단 말이에요. 여기도 5월에 와서 풀 다 뜯었는데 이렇게 자라고 있는 거 보니까 뿌듯(?)하고. 정겨워졌어요.”

“농활이니까 풀 뜯고 하는 건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근데 밤에 모여서 밥 먹고 이러면 또 미화돼요. (옆에서 맞장구) 트럭타고 마을에 돌아와서 밥 먹고선 ‘아 너무 좋았다~’ 그러고 아침에 일어나면 다들 ‘(일하러)가기 싫다~’” - 고다혜·이민희 학생

예전에 어느 귀농지원센터의 교육생들을 만나러 갔다가 비슷한 소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고 싶어서 왔는데, 막상 농촌의 일을 접해보니 집에 가고 싶어지더라는 것. 그렇지만 농촌에서 느끼는 ‘정’이 너무 좋아서 혼란스럽다는 이야기. 사당리 사람들의 정은 학생들을 따라다니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이장을 맡았다가 지금은 노인회장으로 직함이 바뀐 김상만(75)씨는 학생들이 너무 예뻤는지 풀을 베고 있는 농활대 옆으로 일부러 트랙터를 몰고 와선, 손으로 들 수 없는 나뭇가지 뭉치를 치워주곤 잠깐 사라집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트랙터로 아이스크림을 배달오기까지 했습니다.

김씨의 권유에 강해인 학생은 ‘에어컨이 빵빵하다’는 대형 트랙터에 동승해보는 영광도 누립니다. 마을 어른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따로 직함이 있는 이장님을 제외하면 사람들을 ‘논할머니’, ‘감자할머니’, ‘콜라비 이모·삼촌’ 등 키우는 작물로 구분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씨 만큼은 달콤한 남자, ‘스윗가이(sweet guy)’라는 특별한 호칭을 얻었습니다(그의 모범적인 달달함에 대해선 다음에 따로 다뤄보기로 합니다). 어쨌든 김씨 뿐만 아니라 많은 마을 사람들이 틈만 나면 간식이나 식재료를 갖다 줘 먹거리는 늘 넘쳤다고 하네요.

 

염색을 마친 뒤 함께 활짝 웃는 사당마을 주민들과 서울여대 학생들. 아랫줄 오른쪽부터 마을 주민 김상만·강창성·신옥순·김숙자씨와 이해숙 학생. 윗줄 오른쪽부터 조영은·이민희·이달빛·박지희 학생, 이해자 전 진천군여성농민회장, 유주영 사당리 이장, 김이준·신재원·강해인·고다혜 학생.
염색을 마친 뒤 함께 활짝 웃는 사당마을 주민들과 서울여대 학생들. 아랫줄 오른쪽부터 마을 주민 김상만·강창성·신옥순·김숙자씨와 이재숙 학생. 윗줄 오른쪽부터 조영은·이민희·이달빛·박지희 학생, 이해자 전 진천군여성농민회장, 유주영 사당리 이장, 김이준·신재원·강해인·고다혜 학생.

 

하루 뒤면 학생들은 사당마을을 떠납니다. 감사의 표시로 학생들은 가장 더운 오후 2시에 마을회관에서 ‘사랑방’을 열어 어르신들에게 염색과 마스크팩 서비스를 준비했습니다. ‘스윗가이’와 그의 아내 강창성(75)씨, 마을 최고령의 ‘논할머니’ 신옥순(92)씨, 이장님의 시어머니 김숙자(80)씨가 방문해 약간의 불안감 속에 머리칼을 내어줍니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방법을 찾으며 시술하는 초보들이라 결국 피부에 염색약이 살짝 튀는 등의 미숙함은 숨길 수 없었지만, 어르신들은 애써 호강을 시켜주려는 학생들의 모습을 흡족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10년이 젊어진 ‘논할머니’는 82살로 나이를 고쳤습니다.

마스크팩을 하나씩 덮은 어른들이 마루에 눕자 학생들은 옆동네 덕산읍으로 오후 작업을 나가 열심히 콩과 수박 모종을 심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일은, 겨우 한 시간 반쯤 했을까? 학생들의 모교 선배이자 유 이장의 절친한 친구 이해자씨도 일을 시키는 게 주 목적은 아닌지, 콩밭이 어느 정도 채워지자 “농사일은 다 한 것 같아도 어차피 다시 와서 봐야하는 거야”라며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갑니다. 이씨가 만든 맛있는 닭발을 덕산 막걸리와 함께 먹으며, 농업의 현실과 농촌살이를 배우면서도 ‘오늘 진짜 일 한 거 없는데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는 착한 친구들입니다.

학생들의 마지막 밤을 위해 마을에선 성대한 삼겹살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주민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농활을 지원한 진천군농민회, 진천군여성농민회의 회원 몇몇도 찾아와 마을에는 정말 오랜 만에 활기와 즐거움이 넘쳤습니다. 이장님도 “최근에 이런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니 농촌, 특히 이런 조그만 마을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광경임이 분명하겠지요. 주저없이 ‘가을에도 또 온다’는 학생들을 만난 사당마을 주민들로서는 마을을 지켜나가는 힘을 얻기에 이보다 더 좋은 보약이 없을 듯합니다.

가구 수가 줄어만 가던 마을에 난데없이 귀촌해 스스로도 주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안겨준 김영창씨는, 정말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을이라며 학생들처럼 기자에게도 역할을 부탁했습니다. 그가 마을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농촌이 힘을 잃어 수없이 많은 이유들로부터 존립을 위협받는, 위기 중의 위기에 직면해있다는 현실을 내려오자마자 느꼈기 때문이겠죠.

내년에 창간 20주년을 맞는 <한국농정>은, 이 서울여대 농활대 방문을 시작으로 ‘사당마을’의 1년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틈틈히 마을을 방문해 2주에 한 번씩 농민의 삶과 마을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습니다. 갈수록 도시가 농촌을 집어 삼키고 있는 이 시대, 이번 시도가 도시와 농촌의 거리를 좁히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농촌을 보전하는데 보탬이 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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