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77]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 없이는

  • 입력 2019.07.07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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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농사 현장에서는 화학농약과 제초제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관행농업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수십 년 동안 이뤄지고 있다. 배경엔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농진청과 기술센터, 농약회사가 있고, 대부분의 지역농협 경제사업부에서 화학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가 거침없이 처방·판매되고 있다. 농업이 환경과 자연생태계를 유지·보전한다는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농촌현장은 사람이 점점 줄어 소멸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멈춘 지는 오래고 폐교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60대가 마을회의에 나가면 젊은이 취급 받는 것이 현실이고, 빈집은 나날이 늘어 가는데 오래된 마을에 멋진 전원주택이 들어서서 주말이면 요란한 파티가 벌어져 농촌주민들을 맘 상하게 하는 일은 점점 많아진다. 마을 안이나 주변의 작은 농지는 여전히 농지로 등록돼 있지만 농사는 짓지 않는 황무지로 방치돼 있다. 농민들은 농사만으로는 살기 어려워 건설 현장이나 서비스 업종에서 일용직으로 온갖 궂은일을 해야 하고, 잘 사는 농민과 못사는 농민과의 괴리는 점점 커가고, 농민으로서의 자긍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도 농업·농촌·농민에 빌붙어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가롭기 그지없고, 정말 일부이거나 소수의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긍정적인 신호들을 전체인 것으로 인식하려는 오류(구성의 오류)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입만 열면 농업·농촌이 소중하고 지켜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자기는 예외인 소위 자칭 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고, 프로젝트나 따려고 동분서주 하던 자들이 정부의 각종 위원회의 중요한 자리에 포진하기도 한다.

아무튼 농업·농촌을 둘러싸고 있는 실상은 요즈음 날씨처럼 덥고 답답하다. 지금 우리 시대 농업·농촌·농민 대책이라고 내놓는 정책이나 주장들 중에는 근본적인 해법이 어느 것도 없다.

더군다나 생산전문가인 농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자기는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별로 관심도 없고, 개인적인 이익과 직결될 때만 잠시 협동할 뿐이면서 농민들에게는 협동이니 협업이니 공동체니 사회적 경제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며 강요하는 정책 입안자나 학자들이 너무나 많다.

현장과 괴리된 대안들이 왜 이렇게 난무하는 것일까. 어찌해야 할까. 농촌현장에 내려와 살면서 느끼는 소회는 우리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토마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라는 책에서 강조했던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라는 개념이 새삼스럽게 뇌리를 감싼다. 한 시대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그 시대의 패러다임이라고 한다는 것이고,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결국 한 시대의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체계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시대를 지금 관통하고 있는 패러다임은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돈, 경제성, 이윤극대화, 경쟁력 지상주의, 성장, 환경훼손, 탈인간화, 부도덕, 이기주의 등의 가치와 철학이 거대한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이 패러다임이 요지부동인 한에서는 어떠한 농업·농촌·농민 대책도 소용이 없고 이 추세대로 시간은 흘러 결국 농업·농촌은 쇠퇴와 소멸의 나락으로 떨어져 갈 것이 틀림 없다. 농촌현장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암담함을 느끼는 현실이 아프기만 하다. 무더운 날씨에도 작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익어 가는데, 농막에 앉아 이 글을 쓰는 나는 점점 작아지고 초라해 지는 것 같다. 무덥고 우울한 여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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