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마워”

  • 입력 2019.07.07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석 달 전, 밭에 깐 검은 부직포는 야산을 타고 넘어온 불길에 힘없이 오그라들었다. 1,000평 남짓한 밭에 심은 블루베리 나무도 불에 타 검게 변해버렸다. 다행히 불길이 미치지 못했던 밭 일부를 흙으로 메우고 그 자리에 있던 나무를 옮겨 심었으나 불에 타버린 나무를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나무와 나무사이 부직포가 타버리며 맨 땅이 도드라진 곳에서 농민은 풀을 매고 있었다. 농민 주위로 고사해버린 나무가 앙상하게 서 있었다. 그래도 농민은 첫 열매를 맺기 시작한 나무가 참 기특하다고 했다. 칭찬과 함께 불길을 피한 나무에서 익기 시작한 열매를 따 한 움큼 손바닥에 건네줬다. “블루베리는 한 알씩 먹는 게 아냐. 한 움큼씩 먹어야 제 맛이지.”

농민의 주택은 석 달 전 강원도 고성과 속초 일대를 삼킨 유례없는 대형 산불에 완전히 전소됐다. 농원도 일부 타버렸다. 산불 이후 농민은 대피소 텐트에서 불편한 쪽잠을 자다 최근에 마련된 임시조립주택에 입주했다. 7평 남짓한 임시조립주택이 폐허가 된 집 바로 옆에 놓였다. 부엌과 화장실, 살림살이에 필요한 최소화된 공간만이 허락된 집이었다.

당시 산불에 수백여 채에 달하는 집이 불타고 1,000여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수많은 농기계와 농기구 또한 그날의 불로 잿더미가 됐다. 산불 이후 석 달, 피해가 조금씩 복구되고는 있지만 화마가 할퀴고 간 마을 곳곳엔 그날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불에 탄 채 그대로 방치된 집들도 부지기수고 마을마다 마련된 임시조립주택 단지도 설치 초기라 급수가 제대로 안 되는 등 엉성하기 짝이 없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과 생업의 기반을 잃은 충격으로 여전히 밤잠을 못 이루고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많다. 뼈대만 흉물스럽게 남은 농민의 주택도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지어 올려야 한다. 기간은 얼마나 걸릴지, 돈은 또 얼마나 들지, 여전히 기약하기 힘든 나날들이 이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전국에서 보내온 국민 성금과 정부, 도·시·군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고는 하나 피해 복구와 생업을 동시에 이어나가야 하는 주민들 입장에선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아쉬운 상황이다. 그렇기에 블루베리농원에서 만난 농민이 건넨 인사말이 더욱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마워.” 

키워드
#기자수첩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