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농, 세계 투쟁의 당당한 주체가 되다
전여농, 세계 투쟁의 당당한 주체가 되다
  •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 승인 2019.07.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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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나는 56세, 한국에서 온 농민이며, 젊은 시절 희망을 가지고 동료들과 농민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보자 노력하였던, 그러나 결국 실패만을 거듭한 많은 농촌지도자 중 하나이다.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가 끝나고 곧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더 이상 우리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故 이경해 열사 유서 中).”

2003년 9월 10일 WTO 5차 각료회의가 열리던 멕시코 칸쿤에서 한 명의 한국 농민 이경해씨가 바리케이트 위로 올라가 항의 시위를 하다가 “WTO kills farmers!”라는 편지를 남기고 반세계화 투쟁의 재단에 자신의 온몸을 바치고 산화해갔다. 이 사건은 온 국민에게 WTO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고 전 세계 민중들과 한국농민의 연대투쟁이 얼마나 강고하고 절실한지를 알리는 투쟁이었다.

당시 칸쿤 투쟁엔 여성농민회 회원들도 몇 명이 참석했다. 이러한 이경해 열사의 투쟁은 2005년~2006년 홍콩투쟁으로 부활했다. 여성농민들의 국제연대투쟁은 1999년 시애틀투쟁부터 시작돼 2006년 홍콩투쟁에 이르러 분노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됐다.

여성농민들의 자매애, 낯선 이국땅을 밟기까지

30년의 역사를 지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이 국제적인 연대투쟁을 시작한 것은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에 가입하면서부터이다. 과거에도 전여농은 APWLD 아시아 태평양 여성연대를 비롯한 여성 국제연대 조직과 연계해 활동을 했으나 본격적인 세계화 반대 투쟁에 결합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비아캄페시나에 가입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2004년 비아캄페시나에 가입한 전여농은 아시아 여성대표를 맡게 됐고, 멕시코 칸쿤 투쟁을 비롯해 전 세계 투쟁이 있는 곳은 어디나 참석하고 있다. 전여농의 국제투쟁 중에 핵심적인 투쟁은 2006년 전 세계 거리투쟁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 홍콩투쟁과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투쟁이었다.

2005년 12월 한국의 여성농민 100여명은 WTO 6차 각료회의가 열린 홍콩으로 한국의 농민, 노동자 900여명과 함께 홍콩 투쟁에 참석했다. 여성농민들이 홍콩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1년 정도 시간이 소요됐다. 멕시코 칸쿤 투쟁 이후 2년 동안 6차 각료회의 투쟁을 준비한 셈이다.

각 도별로 여성농민들은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몇 개월 동안 곗돈을 붓기도 했고(참가경비 마련), 홍콩투쟁에 가지 못하는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투쟁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경비를 보태기도 했다. 일부는 지역에서 모금을 실시하여 투쟁경비를 충당하기도 하는 등 없는 살림과 주머니를 털어서 국제연대투쟁을 준비했다. 그만큼 농민들에게 WTO 협상 저지는 절박한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이었다.

홍콩투쟁의 기치는 ‘투쟁을 세계화 하라! 희망을 세계화 하라!’였다. 그렇게 사연도 많은 여성농민들의 홍콩투쟁이 준비됐고 마침내 100여명의 여성농민들이 홍콩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할 줄 아는 영어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저 마음속에 WTO를 막아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WTO 각료회의 저지 홍콩, 발리투쟁을 거치면서 국제연대투쟁의 당당한 주체로 나섰다. 사진은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WTO 9차 각료회의 저지를 위해 원정투쟁에 나선 한국 농민투쟁단의 모습.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WTO 각료회의 저지 홍콩, 발리투쟁을 거치면서 국제연대투쟁의 당당한 주체로 나섰다. 사진은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WTO 9차 각료회의 저지를 위해 원정투쟁에 나선 한국 농민투쟁단의 모습.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WTO 각료회의 저지 홍콩, 발리투쟁을 거치면서 국제연대투쟁의 당당한 주체로 나섰다. 사진은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WTO 9차 각료회의 저지를 위해 원정투쟁에 나선 한국 농민투쟁단의 모습.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WTO 각료회의 저지 홍콩, 발리투쟁을 거치면서 국제연대투쟁의 당당한 주체로 나섰다. 사진은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WTO 9차 각료회의 저지를 위해 원정투쟁에 나선 한국 농민투쟁단의 모습.

투쟁, 연행, 그리고 동지애

12월 14일 홍콩의 한국 투쟁단은 전 세계 비아캄페시나 투쟁단과 홍콩 YMCA 유스호스텔에서 친교의 밤을 시작으로 홍콩투쟁의 서막을 열었다. 문화활동가 강원도 횡성댁의 홍콩투쟁 참가기 입담은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전북의 청보리노래단의 공연은 여성농민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DOWN DOWN WTO!’를 외치는 모두의 함성은 홍콩의 밤하늘을 울린 농민의 절규이고 결기에 찬 투쟁구호였다.

다음날부터 대회가 시작됐고 한국농민들은 대장금을 개사한 곡을 붙여 삼보일배를 하고, 상여를 메고, 풍물을 치면서 행진을 시작했다. 한류 탓인지 홍콩 시민들은 대장금 노래에 주목했고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평화롭던 투쟁은 12월 17일 집중투쟁의 날 연좌농성 900명 전원 연행으로 막을 내렸다.

최루탄과 방패의 무력진압이 시작되고 맨 먼저 경찰들이 연행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여성농민들이었다. 시위대를 수용할 곳이 없어서 강당은 땀 냄새로 가득 찼고 화장실이 없어서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여성농민들의 투쟁을 꺾을 수는 없었다. 여성농민운동사를 쓰면서 인터뷰했던 강원도의 회장님은 당시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성농민운동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홍콩 투쟁하다가 수갑 채우고 잡혀갈 때”라고 말씀하셨다. 농민으로서 자랑스러웠고 여성으로서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낯선 땅에서 농민임을 알리는 일에 나섰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노라고….

먼 이국땅에서 눈물과 웃음으로 삶과 투쟁을 함께했던 여성농민들은 투쟁 현장에서 전원 연행된 뒤 4차례에 걸쳐서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2005년 12월에 시작된 투쟁은 2006년 1월 16일 연행됐던 마지막 농민이 돌아오는 날까지 지속됐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주와 일부 지역에서는 WTO 홍콩투쟁 참가자들의 친목모임이 지속된다고 하니 홍콩투쟁이 여성농민운동사에 남긴 여운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홍콩투쟁은 전 세계 민중운동사의 거리투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투쟁이다. 한국 거리투쟁의 다양한 퍼포먼스와 춤, 재담은 다른 나라에서 추종을 불허한다. 국제투쟁의 선봉대라는 명예에 걸맞게 이후 2008년 스위스 제네바 각료회의 투쟁 때는 아예 한국대표단의 참여를 막기도 했다.

흰 상복을 입은 한국 농민투쟁단이 풍물을 치며 WTO 반대를 외치고 있다.
흰 상복을 입은 한국 농민투쟁단이 풍물을 치며 WTO 반대를 외치고 있다.

WTO 9차 각료회의 저지 발리투쟁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 집회와 이경해 열사의 죽음 이후로 비아캄페시나는 9월 10일을 WTO에 저항하는 국제투쟁의 날로 정했다. 2005년 홍콩투쟁은 1,000여명의 세계 참가자들을 체포했지만 WTO 협상을 더 이상 전개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됐다. 2006년 7월 WTO 사무총장 파스칼 라미는 도하라운드의 잠정 중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투쟁의 기쁨도 잠시 세계 농민들의 투쟁에 또 다시 함께 해야 하는 고비가 도래했다. 2013년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WTO 9차 각료회의가 개최됐다. 이른바 WTO의 부활이라는 회의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발리투쟁에 앞서 경고문을 날렸다. 그리고 “우리가 WTO를 끝낸다”는 각오로 전여농 40여명의 간부들이 2013년 12월 5일 남들은 모두 여행을 떠난다는 발리로 날아갔다.

발리투쟁 역시 상여투쟁과 대형 그림을 통한 퍼포먼스가 결합되어 진행됐다. 경찰과 큰 충돌은 없었지만 발리투쟁은 故 이경해 열사의 10주년이라는 의미도 함께 있어서 추도식과 동시에 추진됐다.

행사에는 농민화가 박홍규씨가 제작한 ‘분노를 넘어’에 ‘NO WTO!’를 새겨 넣은 대형 걸개그림이 등장했다. 눈물, 그것은 전 세계 농민의 아픔이고 분노였다. 발리투쟁의 구호는 ‘WTO가 농민을 죽인다! WTO Kills Farmers! WTO 각료회의 즉각 중단하라! Stop the WTO right NOW! Remember 이경해’였다. 전여농 강다복 회장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제주 김정임 회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등 전여농은 이제 세계 투쟁의 당당한 주체가 됐다.

한국 농민투쟁단은 상복을 입고 상여를 메고 WTO 장례식을 치렀다. 그리고 간절한 열망을 담아 108배를 올렸다. WTO라는 유령은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지만 기필코 이를 저지하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DOWN DOWN WTO!”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대한민국의 어느 여성단체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연대를 하고 있고 투쟁의 세계화, 식량주권에서부터 종자 문제까지 연대하고 있는 전여농이지만 여성운동 영역에서 이러한 운동역량을 주목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강고한 여성농민운동이 정작 여성의 억압을 해소하기 위한 가부장제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제적인 WTO 반대 투쟁은 식량주권과 더불어 국제시민운동으로 성장했고, 각 나라는 국제적, 지역적(regional), 국가적, 국지적(local) 전략으로 투쟁을 발전시켜 나갔다. 전여농도 식량주권운동, 종자주권운동으로 점점 국제투쟁을 생활 속으로, 국지적 전략으로 정착시켜 나가고 쿠바, 인도 등의 농생태 연수 및 농생태 농업의 확대로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 여성농민들 자매애의 세계적인 확장을 위한 여성농민들의 페미니즘도 국제연대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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