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야간통금③ 통행금지-도둑질하기 좋은 시간

  • 입력 2019.07.0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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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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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에 내가 초임으로 근무했던 서울 신곡파출소(화곡동 소재)를 예로 들면, 경찰관은 소장을 제외하고 총 8명이었어요. 4명씩 갑부(甲部)와 을부로 나눠서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방식으로 근무를 했지요. 방범대원의 경우 파출소 단위로 일고여덟 명쯤 배속이 됐는데 그 사람들은 저녁 6시에 나와서 다음 날 아침 8시에 퇴근을 했고요. 자정이 되어서 통금 사이렌이 울리면 그때부터는 경찰이 방법대원을 동반해서 순찰을 나가지요. 순찰 시간표와 코스가 아예 정해져 있기 때문에….”

2001년 봄에 내가 통행금지 관련 취재를 나섰다가 만났던 이병옥 씨의 얘기다. 그는 1966년에 경찰에 입문하여 94년도에 퇴임을 했으니 28년간 경찰에 몸담은 사람이다.

통금 사이렌이 울렸다고 해서 정확히 밤 12시를 기준 삼아, 이후에 거리에 띄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다 잡아다 통금 위반자로 즉결재판에 넘긴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도심 유흥가와는 달리 이병옥 순경이 초기에 근무했던 화곡동 같은 경우는 변두리 주거지역이기 때문에, 자정을 20분이나 30분쯤 넘겼다 해도 오히려 조심해서 들어가시라, 인사를 하며 귀갓길을 살폈다.

그런데 가끔 파출소에서, 막 발령받아 온 초임 순경이 선임 경찰로부터 이런 타박을 받는 모습은 가끔 연출되었다.

-어이, 박 순경! 단속 업무를 원칙대로 하는 건 좋은데, 난닝구 바람에 자기 집 대문 앞에 담배 피러 나온 사람을 통금위반으로 잡아오면 어떡하자는 거야.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와!

육칠십 년대에 파출소에 접수된 도난 사건 중에서 절대다수의 도난물품은 텔레비전이었다. 금붙이 따위의 패물이야 도둑맞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 신고가 되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의 ‘난 자리’는 금세 눈에 띄는 탓에 신고도 거의 당각에 이뤄진다. 파출소장은 절도범 검거 실적이 지지부진하다며 매일이다시피 순경들을 닦달해댔다.

-일주일 새에 우리 관내에 텔레비전 도난사건이 세 건이나 발생한 것 알아, 몰라! 오늘은 도둑맞은 집 주인이 경찰서장한테 직접 전화를 해서 제발 ‘여로(TV 연속극)’ 좀 보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잖아! 빨리 순찰 나가서 도둑놈들 잡아와!

그런다고 이미 도둑맞은 TV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그런데, 요즘처럼 골목 여기저기에 무슨 보안용 감시카메라가 있는 시절이 아니었음에도, 현행범으로 검거된 도둑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 이병옥 씨의 증언이다. 야간 도둑질이 빈번했던 것, 그리고 상당히 많은 도둑들이 현장에서 검거됐던 것…알고 보면 야간통금 때문이었다.

“도둑 잡기 젤 좋은 시간이 언제였는지 아세요?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네 시, 바로 그때예요. 해제시각이 가까워지면 방범대원 두 명을 데리고 ‘껀수’ 올리러 출동을 해서, 네 시가 되기 직전에 주택가 골목에 숨죽이고 잠복을 하고 기다려요.”

야간통행금지 해제 시각이 네 시였지만, 일반 시민들의 경우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대문을 열고 외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럼에도 네 시 정각이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철 대문을 삐이꺽, 열고서 바깥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도둑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집주인이 잠든 새벽시간에 잠입을 해서 일단 물건을 훔쳤는데, 훔친 물건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려면 통금이 해제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도둑질을 ‘완성’하려면 지하실이든, 뒤란이든, 하다 못 해 연탄 광에라도 들어가서 새벽 네 시까지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4시가 되자마자 보자기에 싼 텔레비전을 울러 메고 나오는 놈을 내가 세 번이나 잡았어요. 훔친 물건을 싸들고 담을 넘으려고 장독대로 올라갔다가 장독 뚜껑이 와장창 깨지는 바람에 주인한테 잡힌 재수 없는 놈도 있었고. 아주 간이 큰 어떤 도둑놈은 물건을 훔친 다음, 통금해제를 기다리는 중에 주인 옆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잡히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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