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마을의 작은 투쟁, 거대한 대결

  • 입력 2019.07.01 00:00
  • 기자명 박형대(전남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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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대(전남 장흥)
박형대(전남 장흥)

우리 마을 월평은 작년 9월부터 작은 투쟁이 이어졌다.

경전선 보성 무안 임성리 철도건설 사업이 진행되면서 마을이 어수선해져갔다. 마을 앞쪽을 교각이 아닌 성토 공사를 하면서 전경을 가로 막아 마을이 답답해져갔다. 이전부터 마을 주민들은 교각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연구용역결과는 시설공단의 뜻대로 성토로 결정됐고, 주민들은 더 이상 어떻게 하질못했다.

이때 마을 한쪽에 이상한 구조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에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통로박스였다. 보통 사용하고 있는 길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통로박스를 설치하는데 이곳에서는 길이 아닌 사거리 앞 공터에 설치한 것이다.

반듯한 두 군데의 동네길을 막아버리고 한 개의 통로박스로 연결한 새로운 공법(?)인 셈이다. 당연히 반듯한 길은 기이하게 꺾이게 되고 주민들은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시설공단의 변명은 더욱 가관이다. 통로박스 2개를 설치해야 하나 국가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총사업비에 맞추기 위해 그런 것이란다. 이미 사업 전 설명회도 개최했으니 법과 행정 측면에서도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

분노한 주민들은 단체 행동을 결정했고 공사장 앞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집회를 이어갔다. 그렇게 9월부터 시작된 집회는 매주 금요일로 정착돼 올 6월까지 이어졌다.

한 마을의 집회이고, 그것도 썰렁한 공사장 앞에서 하는 집회라 주민 이외에는 찾아올 수도, 알 수도 없는 집회였다. 그래도 주민들은 금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모여들었다. 구호 몇 번 외친 것 빼고는 투쟁이라 하기에는 민망한 모습으로 평화스럽고 일상적인 만남이었다. 함께 웃고, 떠들고, 윷놀이도 하고, 마을 현안을 협의하고, 정보도 공유하고, 그렇게 집회가 이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정치인들과 장흥군이 나서서 주민들의 뜻이 관철됐다. 큰 목소리나 과격한 행동이 아닌 그저 견고하고 따스한 마을공동체의 삶이 시설공단의 계획을 변경시킨 것이다.

사실 시설공단 같은 행태는 예전에도, 지금에도 농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을과 주민들의 삶보다는 개발과 자본의 이익이 항상 앞세워졌다. 그저 형식적인 설명회 하나로 수천 년을 이어온 농촌공동체와 농민의 권리는 뭉개졌고, 토지보상으로 목돈이라도 챙기려는 궁핍한 농민들의 마음까지 이용해서 그들은 거침없이 농촌을 파괴해왔다.

20년 전 산 위에서 장흥 땅을 내려보면 탐진강과 강을 따라 펼쳐진 기름진 들판이 고운 얼굴 같았는데 이제 그곳은 고속도로, 산업단지, 철도건설 등으로 마치 고운 얼굴이 칼로 그어진 듯 아프게 다가온다.

어찌 장흥뿐이겠는가? 전국의 아름다운 농촌마을은 고속도로, 4차선도로, 철도, 농공단지, 도시건설 등으로 무분별하게 개발되면서 온통 상처투성이 얼굴이 돼 있다.

이제 와서야 조금씩 어떤 개발과 자본의 이익보다 농민의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개발논리와 자본의 이익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으면 된다는 점을 마을의 작은 투쟁을 통해 다시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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