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소농·대농 모두 공평한 기회 갖는 농정이 필요하다”

[전문가 대담] 윤병선 건국대 교수·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입력 2019.07.01 00:00
  • 수정 2019.07.04 14:02
  • 기자명 원재정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귀농귀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9만명이 농촌에 정착했다. 특히 젊은 층의 귀농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경쟁력·규모화·시장주의가 강화되면서 농촌이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농촌지역 소멸을 고민해야 하는 이때 한편으로 ‘새로운 농민’들이 농촌을 향하고 있다. 농업·농촌을 스스로 선택한 귀농귀촌자들과 농산물 가격 폭락이라는 악순환 속에 농업소득 1,000만원으로 버티고 있는 농민들은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야 할까.

지난달 25일 <한국농정> 회의실에서 윤병선 건국대학교 교수와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민농업’에 대해 이야기 했다. 협동하고 자본에 대응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거나 환경을 지키는 농법으로 소득도 높여가며 농촌공동체를 유지하는 자율적 농민들. 농민농업의 가치와 우리 농정이 농민농업을 확산하려면 어떤 전환이 필요한지 의견을 들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과 윤병선 건국대 교수가 농민농업의 가치와 확산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왼쪽)과 윤병선 건국대 교수가 농민농업의 가치와 확산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심증식 편집국장 : 문재인정부 출범 3년차에 접어들었다. ‘사람중심 농정’이 슬로건이었던 문재인표 농정은 어떤 평가를 해야 하나.

김정섭 연구위원 : 문재인정부의 키워드가 ‘사람’이었으니, 거기에 ‘농정’을 붙인 정치적 수사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다만 이 정부 출범에 굵직한 현안과제와 더불어 농가소득 문제에 대한 대책을 기대했었다. 쌀값을 회복시킨 부분이나 공익형직불제 개편 문제를 꺼내든 것 정도가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체면치레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인 농정기조 재검토나 시스템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 집단의 기대였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출범 3년차에 이르렀는데, 아직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본다.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조차 이제 현판식을 할 정도니, 문재인정부는 농정개혁에 너무 움직임이 느렸고 그만큼 관심도 적었다.

윤병선 교수 : 농정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것 자체가 농촌현장에선 체감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형태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정부가 사람중심의 농정을 말하면서 농가소득에서 향상된 변화를 보였다. 부족하나마 쌀값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가져온 성과이며 과거 추세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지표다. 문제는 쌀 이외의 농산물 값에는 대응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공익형직불제나 푸드플랜 등도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다. 물론 직불제를 전환하려면 큰 틀의 농정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기존 직불금만 가지고 더 주니 덜 주니 해서 농민층 내부의 갈등을 부추긴 면도 있고, 푸드플랜 역시 기초단위로 갈수록 유통 중심적 사고 속에 갇혀 있다는 문제가 있다.

 

심증식 : 기업농과 전업농 육성 정책이 지속되고 다국적 농기업 등 거대 자본이 여전히 우리 농업에 힘을 미치고 있다. 우리 농업을 지키는 것이 ‘소농’이라고 말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럼에도 농민농업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김정섭 : 소농이 농촌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흔히 말한다. 그럼 대농은 버틸 만한가. 축산농가를 예로 들자면 금융을 많이 끌어다 규모는 키웠지만 금융부담이 상당하고 현재 축산물 값이 그럭저럭 받쳐주니 버티지만 가축 전염병 우려, 환경압박, 가격불안정성 등 여건이 조금만 적대적으로 바뀐다면 빚이 많은 순서대로 소농보다 더 큰 위기를 맞는다.

도시근교에 비닐하우스 수십 동에서 엽채류를 키우는 제법 규모가 큰 농업인들은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값비싼 임차료, 화학투입재로 농사짓는다. 억지로 끌고 가지만 고투입 농사는 위기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지금까지 농업은 규모를 키워 경영능력을 갖추자는 목표와 방향 하나만 생각해 왔는데, 기업형농업이든 농민농업이든 여러 형태가 병존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농민농업 형태로 농사를 지으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거나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제도나 시장을 공평하게 만들자는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업농, 대농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면 소농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필요하다.

윤병선 : 농식품 체계 자체가 거대 자본과 기업 주도 체계다. 이런 환경에서 소농들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전업농도 마찬가지고, 모든 농민들이 현재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 개별적인 규모의 확대는 외부투입자재와 외부노동력에 대한 의존성을 높인다. 자본의 논리란 바로 이런 끊임없는 시장확대에 의존하는데, 그럴수록 수지는 악화된다. 따라서 대안적 시장을 고민해야 한다. 소농들의 농업생산 측면만 얘기하면 경영효율성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별적이고 파편적인 농민농업을 넘어서서 공동체를 이룬 농민들의 생산부터 가공, 유통까지 연결한 통합적이고 집단적 대응형태가 근간이 돼야 한다. 농민들은 과거 협동을 기본으로 농촌공동체를 꾸려왔으나, 농업정책이 이런 공동체성을 말살해 왔다. 그동안 농민운동조직들은 주로 대정부 정책 아젠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오다 보니, 현장 농민들의 실질적 조직화를 바탕으로 생산이나 가공, 유통과 관련한 내실있는 활동을 견인했느냐는 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농민농업을 고민하는 것은 한편으로 농민운동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기도 하다.

 

심증식 : 농민운동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윤병선 : 토지, 종자, 물 등은 본래 농민들 것이었고 농민들이 유지·존속·발전시켜온 자산들이다. 그런데 기업이 이윤을 위해 시장 속으로 그것들을 다 종속시켰다. 그러다보니 생태환경적 문제나 지속가능성 문제가 발생했다. 작년에 유엔에서 통과된 농민권리선언에 농민의 다양한 권리가 담겨있다. 그 내용은 농민들의 것을 농민에게 돌려주라는 것이고, 그래야 토지, 종자, 물과 같은 공유자산이 제대로 관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농가소득의 확보와 함께 농의 체계를 복원하고 농민농업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김정섭 : 농민운동이 높은 수준의 정치투쟁을 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지역의 구체적 문제 분야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요즘 농촌에선 직접 파종해서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모종을 구입하는데 구입한 모종에 불만이 상당하다. 원예작물 농민들이 ‘모종’ 생산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지역에 공급하는 방법도 있다는 말이다. 농민들에게 필요한 공동자산을 농민들이 관리하고 지역이 그 주도권을 가질 뿐 아니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의 농민운동을 한다면 훨씬 큰 힘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증식 : 농촌을 둘러싼 여러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농민농업은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나.

김정섭 : 농민농업이라고 새로울 것은 없다. 플루흐 교수의 논지에 따르면 ‘자율성’을 가진 농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단 농사 기반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고 시장을 피할 수는 없으나 시장에 예속되지 않는 농사, 그러면서 좋은 이웃과 협동하면서 사는 게 보람 있다면 그게 바로 농민농업이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은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농민들이 중심이 돼 지속적으로 새 도전을 한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의 경우 흔히 여러 매장과 큰 매출액 때문에 눈길을 끄는데, 고령의 농민들을 수년간 조직화 해 온 그 지난한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로컬푸드 협동조합에 참여하면서 할머니들이 한 달에 30~40만 원의 농산물 판매소득을 올렸다. 할머니들에겐 이전보다 생기가 넘치고 든든한 소득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땅심을 살리는 저투입순환농법을 하면서 실제 관행농사보다 경제성을 높인 사례들이 많이 나온다면 농민농업의 지형도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
윤병선 건국대 교수

윤병선 : 농민농업을 말할 때 농민이 누구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농민농업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 대항하는 실천의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대안적이고 새로운 시장 없이 관행적 시장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는 농민농업은 없다. 완주는 다품목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두레농장’을 만들었다. 개별적인 대응이 아닌 지역 시장과 연계한 농가의 조직화, 공동작업을 유도한 계획 등이 진정한 농민농업의 가치로 조명 받아야 한다. 김포에 엘리트영농조합법인의 경우 농업기술센터 영농교육에 참석한 귀농자들이 만들었다. 귀농을 한 터라 농사는 다소 서툴렀지만 도시에서 익힌 고객관리, 홍보 등의 강점을 가지고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사례도 있다.

 

심증식 : 우리 농업정책의 좌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김정섭 : 우리는 미래가 현재를 규정하는 시대를 산다.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놓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나 정부가 농업·농촌·농민의 미래상을 어떻게 그리는가가 중요하다. 또 농민이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관료·연구집단의 경직된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 농민들을 자율적 주체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 농촌에 인구가 줄지만 귀농귀촌인구 분석자료를 보면 의외로 청년층이 늘고 있다. 도시생활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기도 한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들은 농업과 농촌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농업과 농촌을 선택한 젊은이들이 ‘자율성’과 ‘협동’이라는 농민다운 삶의 방식을 주변 선배들한테 배워나가면서 농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중대한 갈림길에 선 한국 농업의 과제라고 본다.

윤병선 : 최근의 양파값 파동, 마늘값 파동은 개별농가단위의 단작체계에 근거한 규모 확대가 먹거리 생산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농민들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유통채널이 필요하다. 현재 농정당국이 고민하고 있는 ‘푸드플랜’에 이런 내용들이 구체화돼야 한다. 문재인농정에서 몇 안되는 의미 있는 아젠다들을 농특위에서라도 통합적으로 고민해 농민농업에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