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마을 어르신들의 합심으로 농업도, 농촌도, 농민도 ‘새로고침’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시행 현장’ 충남 보령 장현마을 방문기

  • 입력 2019.07.01 00: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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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달 24일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김문한 이장이 충남도의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을 거치며 생태환경이 변화된 논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해당 논에 자라난 화초를 베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24일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김문한 이장이 충남도의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을 거치며 생태환경이 변화된 논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해당 논에 자라난 화초를 베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속가능한 농업과 공익형직불제의 연동을 고민하며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그 실천 현장 중 한 곳이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이장 김문한, 장현마을)다.

장현마을은 이미 2016~2018년에 충청남도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 시범사업을 실천한 바 있다(본지 2016년 5월 23일자 <충남도 직불금 개선 시범사업 ‘장현마을’에 가다> 참조). 지난해 2월 충남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 사업이 끝난 뒤, 연이어 농식품부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사업지역으로 선정됐다.

장현마을 주민들의 실험은 어느덧 3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3년 동안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우선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이 대폭 감소해, 기존 대비 각각 1/6, 1/3 수준으로 줄었다. 농약의 경우, 원래 각 농가마다 1년 6~7회 가량, 그것도 고독성 농약을 사용했다고 한다. 심지어 병해충 발생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비가 그치자마자 농약을 뿌리는 농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1년에 딱 한 번, 보령시에서 항공방제로 농약 뿌릴 때 외엔 농약을 전혀 치지 않는다. 지난달 24일 만난 김문한 장현마을 이장은 “아직 고추 재배농민들의 경우 약을 많이 치는데, 이 분들에게도 지속적으로 농약 사용량 감소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비료 사용 시에도 비료처방서를 받고 성분검사를 해, 그 동안 과도하게 농지에 들어갔던 질소질의 투입량을 줄여가며 시비했다. 그 결과 120가구 250여명의 농가 중 80%가 완효성 시비를 추진하게 됐다. 매년 7~8회에 걸쳐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교육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영농방식이 농업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다시금 인식하게 됐다.

논둑, 밭둑에서의 제초제 사용량도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김 이장은 “과거엔 거의 모든 농가가 논둑과 밭둑에 제초제를 사용했었다. 그러나 충남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지금은 약 95%의 농가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논둑과 밭둑에 풀이 자라도록 둔다”며 농민들의 전환된 인식을 언급했다.

주민들은 농약과 비료 사용량 감소를 넘어, 더 적극적인 생태친화적 농업 실천에도 앞장섰다. 둠벙 조성, 볏짚 환원 등의 작업도 농민들이 합심해 추진했다. 용수 아껴쓰기 운동도 벌였다. 장현마을에서도 기존엔 한 농가에서 농업용수를 쓰고 남아도 그걸 버림으로써 용수가 낭비되는 경향이 남아 있었다.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마을 주민들은 합동으로 용수로를 만들어 논에서 쓰고 남은 물을 버리지 않고 옆논으로 흘려보내는 구조를 만들었다.

한편으로 충남 프로그램 때부터 시행한 ‘마을가꾸기’ 작업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계속되고 있다. 변시화 장현마을 부녀회장은 “최근엔 하천 둑에 풀씨 심기 작업을 벌여, 자연친화적으로 풀들이 자라나도록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꽃길 만들기, 마을 공동청소, 분리수거 관리 등의 활동을 마을 주민들이 함께 진행한다.

변 회장은 토종종자 농사를 위한 농민 조직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당장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건 어려워도, 주변에서부터 차츰차츰 토종농사를 확대시키자는 의도다. 주로 선비콩, 쥐이빨옥수수(변 회장은 이걸 소개하며 “엄청 작은데 맛있다”고 덧붙였다), 꿀시금치 등을 재배한다.

주민들의 합심으로 장현마을은 점차 바뀌어갔다. 우선, 농사의 관행화 이후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보기 힘들었던 수달과 금개구리, 반딧불이가 돌아왔다. 서울시립대에서 수달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연구진들이 찾아왔을 정도였다. 그만큼 지역 생태환경이 좋아졌다. 변 회장은 “40년간 오염된 땅이 3년간의 프로그램 진행으로 회복됐다는 게 신기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의 마음과 머리에서 이뤄졌다. 장현마을 주민 김증한씨는 “과거엔 당연하다는 듯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했지만, 충남 프로그램 참여 뒤부터 점차 주민들도 기존의 농업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그 과정에서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이 큰 몫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도 매년 6~7회 살포하던 농약을 이젠 보령시의 항공방제 때 한 번 농약 살포하는 걸로 대신한다고 한다.

충남 프로그램 참여 주민들의 의식 변화는 통계상으로도 두드러진다. 이관률 충남연구원 박사는 최근 2016~2018년 농업생태환경보전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장현마을 및 청양군 화성면 화암마을 주민들의 프로그램 지속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대상 주민 100%가 볏짚 환원 및 농지 내 수목 유지·관리활동을 하는 걸로 드러났다. 또한 비료사용량 줄이기(97.6%), 둠벙 조성(94.4%), 겨울철 논습지 유지(90%), 논두렁 식재(89.3%), 제초제 미사용(88.4%), 조·수수 등 재배작물 다양화(83.7%) 등의 활동도 대다수의 주민들이 이행하는 걸로 밝혀졌다.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귀농·귀촌한 주민들도 기존 장현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진 걸로 보인다. 장현리 귀농 주민 한길영씨는 기자가 방문했을 때 김증한씨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마을에선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다. 한씨는 “마을에서 같이 청소도 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 때 서로 도우면서 그래도 이렇게 주민들과 이야기하면서 지낼 정도로 가까워졌다”며 “다른 마을에선 귀농·귀촌자들과 기존 농민들 간에 가까이 지내는 사례를 찾기 힘들 거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마을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가 가능했을까. 김 이장은 “그 동안 정부 사업 때마다 ‘객체’이자 ‘교육대상’처럼 인식돼 온 마을 내 70~80대 어르신들에게 ‘어르신들이 주인공입니다’라는 걸 지속적으로 말씀드린 게 주효했다”며 “이미 옛날부터 농약과 비료 없는 농업을 실현해 온 주역들인 만큼, 오히려 젊은 층과 연구진들이 그들에게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들으며 진행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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