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노동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 입력 2019.06.30 18:00
  • 수정 2019.07.01 00:34
  • 기자명 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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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지난달 18일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현판식을 갖고 1차 전체회의를 열어 운영세칙을 의결하고 운영방안을 확정하는 등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박진도 농특위원장은 농정의 틀을 바꿔 농정의 백년대계를 새로 설정하는 것을 농특위 목적으로 한다고 첫 회의에서 밝혔다.

아울러 “농정 이념, 농정 목표, 농정 대상, 농정 추진체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 농정의 틀을 바꾸는 것이며, 이를 통해 농어업·농어촌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를 극대화하고 국민행복에 기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의 말은 그야말로 우리 농업을 이끌어 왔던 농정의 모든 것을 백년대계의 미래지향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말처럼 우리 농정의 환골탈태가 필요함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해 왔던 바이다.

다소 추상적이고 주관적으로 느껴지기 조차하는 국민행복에의 기여라는 표현에서 국민행복이 어떻게 구체화, 계량화 될 수 있을까 기대되는 한편 국민의 지지 확보를 위해 참으로 노심초사 하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깝기도 하다. 모쪼록 이제라도 농특위가 혁신적인 새로운 틀의 농정 청사진을 잘 마련할 수 있길 바란다.

농민이 행복해야 국민 행복에도 기여

농민·농업·농촌이라는 삼농이 국가와 국민이라는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 국민의 행복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민과 농업의 존재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국민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면 농민들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있겠는가.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고 주변의 행복에도 기여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농민들의 행복지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조사된 바가 있기나 할까? 농업과 농촌을 통한 농민의 삶도 행복해야 한다. 국민의 먹거리 생산을 비롯하여 생태환경, 경관보전과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농촌공동체의 유지라는 다원적이고 공익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농민이 먼저 행복해야 국민 행복에도 충분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은 농업소득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현재 농민의 농업소득은 전체 소득 4,206만원의 4분의1인 1,0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고 도시가구의 59%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65%선을 회복했다. 농가소득의 나머지 대부분은 늘어나는 농외소득과 이전소득이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전업으로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많은 농민이 뭔가 다른 일을 해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는 의미다.

1980년대 이후 지속된 개방농정은 국내 시장을 수입농산물로 채우고 농산물 가격을 보장하지 않았다. 외국농산물에 대한 전면개방으로 당연히 농산물 가격은 이윤은커녕 생산비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농민들은 수십 년간 지속되는 출혈생산을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어 농업과 농촌을 떠났다.

1994년 농민들의 우루과이라운드 반대투쟁이 한창일 때 자유무역은 세계적인 대세니까 WTO를 인정하고 농업의 다원적, 비교역적 기능을 인정하는 직불제를 신설하면 농업을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있었다. 이는 결국 WTO 협정을 위한 미사여구였으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형식뿐인 대부분의 직불제 역시 WTO 협정 이행을 위한 피해지원, 소득보전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 후의 우리농업의 급속한 몰락에서 드러나듯이 보다 직접적인 생산과 관련해 시행돼 온 직불제가 수입개방으로 인한 농업, 농민의 불행을 막는데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그나마 좀 낫다는 논농업직불제도 대농 중심에다 직불금 부당수령 등 기존 농지제도와 연관되어 많은 폐해를 낳음으로서 직불제 개편 논의를 불러왔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농어촌의 다원적 기능이 농민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농민의 노동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다. 박진도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정부측 위원과 민간 위촉위원들이 지난달 18일 서울시 종로구 에스타워 16층에 마련된 농특위 사무국에서 현판식을 연 뒤 박수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농어촌의 다원적 기능이 농민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농민의 노동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다. 박진도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정부측 위원과 민간 위촉위원들이 지난달 18일 서울시 종로구 에스타워 16층에 마련된 농특위 사무국에서 현판식을 연 뒤 박수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속가능한 개발과 농업의 공익적 가치 인정

최근 들어 농민수당이니 공익형 직불제니 하는 논의가 활발해지며 농업의 다원적 가치니, 공익적 가치 인정 등의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생태환경의 파괴로 인류는 미래 생존의 위기를 걱정하게 됐다. 개발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세계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생태환경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엔이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시행하는 지속가능개발 목표 17개 항목에도 이러한 내용들이 포괄돼 있다. 농업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가치는 날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농업이 기후변화를 늦추고 토양 유실을 방지하며 경관을 유지하고 문화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유형, 무형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들을 생산하고 지키고 있음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선진국이라 불리는 여러 나라들이 농업·농민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의 보장은 농민의 노동에 대한 대가이다. 농산물 가격의 보장은 농민이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우선적인 방안이다. 농민들이 직불제가 개편돼도 가장 대표적인 농산물인 쌀의 목표가격과 변동직불제가 유지되길 바라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더 나아가 농민 노동의 사회적 가치가 다양하게 인정됨으로서 농민의 삶의 질이 나아지길 바란다.

원래 농민이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생산하는 행위 자체가 공익적인 것이었다. 자기 혼자만 먹기 위해 농사를 짓는 농민은 없다. 설혹 그랬다 할지라도 필경 남는 것이 있고 이웃과 가족, 친지들과 나눠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살았다.

전통적으로 우리농업은 먹거리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농경에 기반한 다양한 공동체 문화를 유지 발전시켜 왔다. 일제의 야만적 탄압에도 맥을 이어 오던 이러한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 것은 농업·농민이 사라지는 불과 몇 십 년 사이의 일이다.

이제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인식 전환과, 농민 노동의 가치 인정을 시작으로 국가와 국민이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같이 일하고 같이 놀고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의 근원, 농민의 노동

농민의 노동은 유형, 무형의 재화와 가치를 창출한다. 농산물이라는 유형의 가치는 먹거리가 돼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고 활동에너지가 된다. 그러나 농민의 노동은 농업·농민·농촌이 갖는 특성상 많은 부분이 사회적 노동으로 가치가 인정되지 못하고 유실돼 왔다. 특히 여성, 노인 등 약자의 노동은 많은 부분이 사적 영역으로 치부돼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대체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바로 농민의 노동이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농민의 노동이 창출한 가치이다. 농민의 노동이 없었으면 농업생산도 없었을 것이고, 농업의 다원적 기능도, 다원적 공익적 가치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에 논의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농민의 농업노동에 의해 생겨난 일종의 파생가치이다. 그것이 농민이 노동을 통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파생된 사회적 가치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농업이 생산하는 이러한 중요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보상하지도 않았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등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고 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높아져 있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 세계에서 경제 영토가 가장 넓은 경제규모 11위의 경제대국임을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농민에게 보상을 해야 할 때가 됐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의 규모는 학자에 따라 다르게 추산되지만 우리나라의 연간 농업총생산액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때 등외 국민이라 자조하는 농민들의 자존감이 살아나고 좀 더 현재의 불행지수에서 벗어나 행복지수도 조금은 높아지지 않을까?

농어업·농어촌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 구현은 생태환경 보전, 농촌경관 보전,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지역공동체 유지 등 기존에 이야기되고 있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농민의 노동에서부터 비롯됐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더욱 확대,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 확장과 토지 공개념 도입

혹자는 미래에는 빅테이터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들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를 즐기는 생활이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할 것인가?

우리는 생산은 늘지만 고용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 저성장이 정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거나 은퇴 후 일없이 지내는 것이 흔한 일이고 귀농·귀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초고령 사회가 되고 있는 농업·농촌에 하나의 희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농업은 본시 사람이 함께 노동함으로서 생산이 배가되는 협력과 협동이 중요한 부문이기 때문이다. 이미 농민들에 의해 적극 제시되고 있기도 하지만 농민과 농민 간에, 농민과 국민들 간에 어떻게 연계하고 협력해서 더 많은 농업의 기능을 살려내고 다양한 사회적, 공익적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그리고 그 가치를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인정할 것인지 농민의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인정받는 더 많은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농업은 미래 사회에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청년 실업과 고령화 시대에 가장 양질의 일자리는 농업에 있다고 하지만 농업이 양질의 일자리가 되려면 농업 내의 많은 변화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농촌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농지 접근과 주거가 용이해야 하고 영농, 생활지원, 생산물 판로 등 보다 다양한 지원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

6차 산업화, 로컬푸드, 공동체 지원형 농업, 최근의 사회적농업까지 농업의 영역이나 기능을 보다 다원화함으로서 다원적, 공익적 가치 생산을 확대하고 농민의 노동가치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농민 노동의 대상인 토지에 공개념을 도입하고 농지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새로운 농정틀에서 가장 중요한 방향이라 하겠다. 농민의 노동가치 실현은 농민 행복으로 가는 관문이 될 것이다. 농민의 노동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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