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불법과 준법 사이에서

  • 입력 2019.06.30 18:00
  • 기자명 송인숙(강원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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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숙(강원 강릉)
송인숙(강원 강릉)

1994년부터 토종닭을 키우고 있다. 넓고 공기 좋은 산에 닭을 방사해 키우고 있다. 어느 날 축산물 가공처리법이 시행되면서 도계장에서 도계를 해야 한단다. 그래서 닭 200여 마리를 가지고 도계장에 갔다. 닭을 컨베이어벨트에 넣자마자 사방으로 닭이 날아올랐다. 컨베이어벨트는 우리집 닭에게는 러닝머신이었다. 도계장은 비상사태가 됐다. 닭들은 옆 공장까지 날아다녔고 직원들은 날아다니는 닭들을 잡으러 다녔다.

다시 케이지에 넣어 직접 다리를 걸고 컨베이어벨트 위의 닭은 고리로 다리를 걸어 끌어냈다. 한 마리 걸고 20여개 뒤에 한 마리 걸고 자동화로 돌아가는 도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200여 마리를 잡아 왔는데 그중에서 반 이상은 멍이 들어 판매도 할 수 없었고 도계장에서는 일반 닭 2만 마리가 와도 이렇게는 안 된다면서 되도록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우리 닭을 가지고 도계장을 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직접 도계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가사항을 알아보니 자동화를 해야 하고 수의사를 고용해야 한다. 자동화 시설은 견적만 14억원이 나왔고 매달 고용하는 수의사의 월급은 닭을 키우는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일 년이면 5,000평의 산에서 3,000수 정도를 키울 수가 있는데 도계장을 운영하게 되면 닭을 키우는 것 보다 도계장 운영에 더 치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거기다가 14억원이라는 자동화 설비 금액에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는 농산물에서 조금 더해서 좋은 농산물을 팔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고 고객들은 넓은 공간에서 기른 건강한 닭을 원한다. 대규모 도계장을 설치할 수 없어 합법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민원도 내보고 뛰어 다녔지만 소규모 도계장은 아무런 규정이 없어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도계장에 가려고 연락을 하니 도계장이 폐업을 했다고 한다. 도계장을 한 번 돌리려면 물을 데우는데 기름을 몇 드럼씩 때야 하고 10여명의 인력도 필요하다고 한다. 운영비에 허덕이다가 폐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는 닭을 시중 토종닭보다 몇 배나 오래 키운다. 운동을 해서 먹는 사료량은 일반 닭보다 많다. 그러나 닭의 크기는 작다. 그래도 드셔 보신 분들은 계속 이렇게 키우기를 바란다.

FTA가 체결되고 닭도 피해품목이라고 지원금을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그해 2,000마리를 키웠다. 마리당 19원이라고 한다. 3만8,000원을 받으라고 하는데 작성할 서류는 많아서 사흘만 일을 못하면 손해가 크기에 지원금 받는 것을 포기했다.

축산물 가공처리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많은 곳에 납품도 했다. 이제는 도계장에서 도계를 했다는 도장이 없어 납품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직거래만 하고 있다. 돈 안 되는 도계장 운영은 기반 사업으로 국가가 해야 한다.

대량생산에 초점을 두지 말고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축산물 제공을 우선해야 한다. 먹는 농산물에 기업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타당치가 않다. 농민은 좋은 먹거리를 만드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일정규모를 갖춘 소규모 도계장을 허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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