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야간통금② 순라꾼·야경꾼·방범대원

  • 입력 2019.06.3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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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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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순작법(巡綽法)이라는 것이 있었다. 순작(巡綽)이란 야간에 군사들이 복장을 갖추고 대오(隊伍)를 이루어서 쩌렁쩌렁 호령을 하면서 거리 순찰을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 태종1년 5월 20일치 실록기사를 보면 “초경(初更) 3점(點)부터 5경(更) 3점(點) 사이에 순라(巡邏)를 범하는 자는 모두 잡아가둔다”는 내용이 올라 있다. 요즘 시각으로 치면 대개 오후 8시경부터 다음 날 오전 4시 30분 무렵까지에 해당한다.

이로부터 85년 뒤인 성종16년에 간행된 <경국대전>에 “2경(밤 10시)부터 5경(새벽 4시) 이전까지 대소인원은 출행하지 못 한다”라고 돼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직 왕권이 안정되지 못 했던 태종 재위 초기에는 통금을 강화하여 경계를 더욱 엄격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통행금지를 위반해서 순라꾼에게 붙잡힌 사람은 인근의 경수소(警守所)에 잡혀 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벌칙을 받아야 했는데,

-건천동 사는 송만복이는 2경에 잡혔으니까 곤장 여섯 대! 수문동 사는 홍순돌이는 3경에 돌아다니다 잡혔으니까 곤장 여덟 대!

이런 식으로 통금을 위반한 시각에 따라 벌칙이 달랐다. 흥미로운 것은 초경 3점, 즉 밤 8시경부터 두 시간 가량 동안에는, 남자들은 통행이 제한돼 있었으나 여자들의 통행은 허용됐다는 점이다. 당시는 남녀유별 사상에 입각한 이른바 ‘내외법’이 지켜졌기 때문에, 양반이든 상인이든 여자는 낮 시간에는 외출을 삼가야 했고, 부득이한 경우 야간 외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얘기해서,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부터 일정 시간 동안, 남자들은 모두 집으로 들어가 있게 함으로써 여자들의 통행을 보장했다는 얘기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통행금지제도는 1895년에 폐지되었다. 그러다 광복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사령부에 의해 다시 통금령이 반포되었고, 정부 수립 후에 우리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았다.

6.25 전쟁 직후엔 치안이 엉망이었던 데다가 경찰인력도 크게 부족했다. 따라서 주민들이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하여 야간순찰을 돌았다. 당시 순찰을 도는 자경단을 야경꾼이라 불렀다. 야경꾼은 재질이 단단하고 소리가 잘 나는 박달나무 토막 둘을 양손에 나눠 잡고는 딱딱, 부딪치면서 순찰을 돌았다. 그래서 시민들은 이들을 야경꾼 대신에 ‘딱딱이꾼’ 혹은 ‘똑땍이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야간순찰을 도는 이 자경단이 민간 자치조직인 것은 틀림없었으나 그렇다고 ‘방범서비스’ 자체가 공짜는 아니었다. 월말이 되면 야경꾼들이 마치 공과금을 징수하듯이 가가호호 찾아다니면서 야경비를 받았다. 나는 1960년대 말까지 남해안의 섬마을에 살았으므로 야경꾼을 구경한 적도, 그리고 내 또래 동무들이 술자리에서 가끔 ‘정겨운 소리’로 추억하곤 하는 그 딱딱이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내가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 야경꾼은 그 이름이 방범대원으로 바뀐 뒤였고, 그들은 딱딱이를 치는 대신에 호루라기를 불었다.

말하자면 민간단체인 자경단의 ‘야경꾼’을 국가가 흡수해서 경찰보조업무인 야간 방범업무를 맡긴 셈이다. 그러나 방범 치안 관련 예산이 매우 빈약했으므로 방범대원의 야간순찰 역시, 월말이면 가가호호 징수하는 ‘방범비’가 아니면 유지될 수가 없었다.

1988년 10월 19일치 일간지에는 이런 뉴스가 실려 있다.

-경제기획원은 현재 지방방범협의회에서 일정기준 없이 매달 2백 원 ~ 5만 원씩 징수하고 있는 방범비(전국 3천 1백 65개 파출소 중 40%가 징수)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방범대원의 생계보완대책을 연내에 강구하고 이를 폐지키로 했다. 아울러 체육성금·보훈성금·새마을성금·방위성금 등도 없애기로 했으며….

이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국민치안의 기본이라 할 야간 방범서비스를 온전히 국가 예산으로 담당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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