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네덜란드 ‘북 프리지아 숲 지역협동조합’ 사례로 본 농민농업

  • 입력 2019.07.01 00: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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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5월 한국을 처음 방문한 얀 다우 판 더르 플루흐 네덜란드 와게닝겐대 명예교수. 플루흐 교수는 한국농정신문이 발간한 <새로운 농민>의 저자다. 이 책을 번역해 펴낸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루흐 교수가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는 농촌사회학자로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드는 인물”이라며 “새로운 농민은 플루흐 교수가 농민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려 일평생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 농촌사회학자의 진지한 통찰이 응축된 결과”라고 소개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한 새로운 농민이 “농민에 관한 낡고 편협한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경험적인 근거 위에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며 “박탈과 의존이라는 현실 조건을 넘어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농민들의 새로운 실천-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정교하게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플루흐 교수의 방한은 농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플루흐 교수가 책에서 소개한 ‘북 프리지아 숲 지역 협동조합(the North Frisian Woodlands, NFW)’ 사례를 통해 한국의 농민농업이 나아갈 방향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네덜란드 ‘북 프리지아 숲’ 일대의 전경이다. 생울타리들이 초지의 경계선마다 가득하다.
네덜란드 ‘북 프리지아 숲’ 일대의 전경이다. 생울타리들이 초지의 경계선마다 가득하다.

‘북 프리지아 숲 지역협동조합(NFW)’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협동조합이다. 네덜란드 북부 지역의 프리슬란드 도 북동부에 위치해 있고 낙농이 중심이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생울타리 경관이 이 지역의 특징이다. 다양한 경관과 소규모 영농활동이 동·식물 등 생물다양성을 크게 발전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역의 영농 스타일을 두고 ‘크레아스(우화함, 온화함을 뜻하는 프리지아 말)’라고 묘사하는데 이는 지역의 역사에 깊게 뿌리박은 영농방식을 뜻한다. 지역주민은 생울타리 경관을 고맙게 여기며 지역 문화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봤다. 그런 까닭에 다른 지역의 생울타리 경관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 지역에선 보전됐다.

1980년대 말, 네덜란드 정부가 이 지역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 하며 농민에 규제를 가하자 마찰이 벌어졌다. 정부 규제가 생울타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선 모든 농업 활동을 동결한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에 농민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생울타리 경관을 만들고 지켜왔다며 저항했다. 심지어 자신의 생울타리를 없애겠다는 농민이 있을 정도였다.

북 프리지아 숲에서 자라는 생울타리는 지역 역사에 깊이 뿌리박혀 농사짓는 이곳 주민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북 프리지아 숲에서 자라는 생울타리는 지역 역사에 깊이 뿌리박혀 농사짓는 이곳 주민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결국 농민들이 생울타리 등의 보호를 약속하며 규제가 철회됐다. 이를 계기로 농민들의 결사체가 만들어졌고, 2002년 6개의 결사체가 모여 NFW가 출범했다.

NFW는 경관과 자연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광범위한 활동에 관여했다. 지역 전체 5만ha의 면적 중 80%의 면적에서 일정하게 이 활동을 펼친 결과 이전보다 경관 및 생물다양성의 질적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적 방식으로 생산 단위가 아닌 전체 지역으로 수준을 끌어올린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경제에 연간 400만유로의 추가소득이 생겼다. 우리 돈으로 52억6,000만원 가량이다. 또한 2004년 자연 및 경관 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농장은 평균 1만1,000유로(우리 돈 1,400만원)의 부가가치를 얻었다.

2003년 NFW는 자연 및 경관 관리에서 대기질·토양·수질개선, 생산물 품질 개선, 휴양·관광 활성화, 비용 절감, 동물복지 및 건강, 토지은행, 녹색에너지 등으로 지역경제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네덜란드 농업부, 지방정부, 시민사회, 학계 등이 참여한 ‘지역 협약’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NFW는 10개의 공유가치를 헌장으로 만들었다. 이 헌장은 NFW가 지금처럼 견고하고 잘 뿌리내린 지역협동조합으로 확대되기까지 25년 동안 촉진된 강력한 이정표의 성격을 지녔다(표).

NFW는 여러 해를 지나면서 참신성을 생산하는 일종의 현장 실험실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좋은 거름이다. 잘 숙성된 거름은 소중한 자원이었지만 근대화 과정을 지나며 쓰레기 산물, ‘없애버려야 할 골칫거리’가 됐다. 이로 인해 심토의 유기물질 손실, 많은 양의 비료 구매, 초지 조건 악화 등이 악순환됐다. 농민들에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좋은 거름은 인공적인 게 아니라 자연과의 공동생산 과정을 특정한 방식으로 체계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농업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농민들은 결국 좋은 거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거름을 한꺼번에 쏟아 붓는 방식이 아니라 천천히 떨어뜨려 토양 내부의 질소 전달 능력을 증대시키고, 화학비료를 덜 쓰고 양질의 건초를 더 많이 생산하며 건초 베는 시기도 늦춘다. 이렇게 향상된 조사료를 먹임으로써 젖소의 스트레스를 줄여 수명을 늘리고, 더 좋은 우유를 생산하고 최종적으로 다시 좋은 거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농민들은 약 1만3,500유로(우리 돈 1,800만원)의 부가가치를 증진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표토에 거름을 시비하는 걸 정부가 규제했지만 결국 2014년 정부가 심토 대신 표토를 허용한다고 선언했고, 2017년엔 NFW가 법정 싸움에서 이겨 300만유로(39억원)의 추가 직불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는 관행농법에서 생태에 기반을 둔 농법으로 재편하고 외부 투입재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한편 지역조직의 역량도 강화하는 등 농생태학적 전환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네덜란드 전체에서 소를 키우는 농장 수가 6만5,000개에서 2만9,000개로 55% 줄었지만 NFW 지역에서 기존부터 있던 39개 농가는 12.5%만 줄었을 뿐이다. 또한 1980~2000년 사이 70두 이상 낙농 농장도 네덜란드 전체적으로 21%가 감소했지만 NFW에선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경관이나 자연, 생물다양성을 돌보는 일, 더욱 농민스러운(또는 농생태학적인) 방식으로 영농하기 위해 공동으로 싸우는 일, 지역 수준에서 필요한 자율성을 구축하는 일 등 새로운 활동에 적극 참여한 것이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NFW의 조합원은 약 900여명으로 지역 농민의 80% 가까이가 소속돼 있다. 작은 운동에서 시작돼 꾸준한 발전을 통해 현재는 네덜란드 농업 정책의 여러 중요한 분야에 영향을 끼칠 기회를 얻고 있다. 최근엔 중앙정부 및 광역 지방정부가 이 지역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해야 할 가치가 있는 ‘국가 경관 지역’으로 선포했다.

NFW는 지역 내에서 자연, 경관 관리 중심에서 농민농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NFW는 지역 내에서 자연, 경관 관리 중심에서 농민농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네덜란드 북 프리지아 숲 지역협동조합(NFW) 강령에 구체화된 공동체의 공유 가치

1. 지역사회

지역사회로서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노력하여 가난의 멍에를 벗어던지게 되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프리슬란드 도에서 우리는 왈드피켄(waldpyken), 즉 ‘고집스러운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는 그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지역공동체 안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며, 외부에서 온 문제들에 대해 우리만의 지역-특정적인 해법을 찾아낸다. 우리의 공동체 감수성과 결속은 강력하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이 점을 존중해 줄 것을 기대한다.

 

2. 땅과 사람의 통일성

다채롭고 매력적이며 살아 있는 경관이 우리 지역의 특징이다. 사람과 자연의 독특한 통일성을 보여준다. 우리 선조들이 경관을 만들었다. 지금은 NFW 농민들이 보호자가 되어 있는데, 조류 보호운동 활동가나 여타의 자원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자연과 경관이 더욱 발전하도록 보장한다. 우리는 자연, 경관, 환경 등의 관리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받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이유로 살아있는 농업 그리고 땅에 기초한 농업이 필수불가결하다.

 

3. 순하게 농사짓기

우리 NFW 조합원들은 인간과 자연의 독특한 통일성이 특별한 책임을 낳는다는 점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다. 영농은 책임감 있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즉 ‘순하게 농사짓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과거 및 현재 경험과 기술로 미루어볼 때, 그 누구보다도 우리야말로 순하게 농사짓는 방식을 지속시킬 명백한 실체다.

 

4. 우리 자신의 권리와 자격

북 프리지아 숲은 우리 지역이고, 우리 선조들과 우리가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북 프리지아 숲은 우리의 권리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지역과 관련된 모든 계획과 의사결정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

 

5. 우리가 더 잘 한다

NFW는 6개의 풀뿌리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경관·환경 보호 프로그램을 15년 동안 관리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공동으로 소유하는 유제품 공장, 커먼즈, 마을협회, 공부모임, 자발적 토지 이용조정제도, 상호 부조 등의 강력한 협동 전통을 지니고 있다. 아주 높은 수준의 지역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입증했다. 우리가 농사짓는 방식이 환경적으로 건전하다는 점을, 그리고 국가가 부과한 규제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보다 자연을 훨씬 더 잘 지탱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보여주었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기술, 우리의 협동 전통을 활용해서 우리는 그 어떤 일반적인 접근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한다. 우리가 더 잘한다!

 

6. 신뢰

다른 기관들과 맺은 협약에서 NFW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이다. 우리는 신뢰를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는 파트너들에게 신뢰받을 가치가 있다고 기대한다.

7. 느리지만 꾸준한 진보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전투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웠다. 우리가 꾸준한 진보를 단계적으로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이유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크게 도약하기도 한다. 단계적이거나 도약하거나, 지역의 공동 이익은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

 

8. 혼자가 아니다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도전을 맞이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최근에 우리는 지방, 도, 국가 수준에서 정치인, 환경운동가, 보전활동가, 과학자, 물관리위원회, 농민 로비 집단 등과 유용한 연합을 만들었고 유지하고 있다. NFW는 이 경로를 따라 계속 나아갈 것이다.

 

9. 미래를 돌보기

요즘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미래를 향해 서 있으며, 지역과 주민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미래 세대가 지역을 더욱 성숙하게 가꾸는 노력을 지속하고, 이 지역에서 살며 일하는 것에 긍지를 느끼고, 다른 이들과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10. 만족과 기쁨

우리들, NFW의 조합원과 지도부는 여러 해 동안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일했다. 그래서 지역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계속 일하기를 소망하며, 우리 조직은 우리가 우리 지역 안에서 우리 자신의 일들을 관리하도록 도움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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