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멀고 먼 ‘리틀 포레스트’ 혜원이의 꿈

  • 입력 2019.06.23 18:00
  • 기자명 김후주(충남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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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주(충남 아산)
김후주(충남 아산)

모든 것이 빠르고 빽빽한 1,000만 메갈로폴리스 빌딩과 아파트 숲 속 보이지 않는 변두리 구석구석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하루하루 풀칠하고 있는 빈민층 도시청년들이 있다.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며 좀 더 괜찮은 삶을 살아보고자 아등바등 해봐도 미래가 없다. “요즘 것들은 노오력이 부족하다!”지만 은행에 돈을 넣어두기만 하면 30% 이자가 붙었던, 대학 나오면 취직할 수 있었던 그때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요즘 것들이 졸업하면 얻는 것은 백수꼬리표와 학자금대출 뿐이다. 그냥 숨만 쉬었을 뿐인데! 번 돈은 통장을 스쳐지나갈 뿐, 내게 보장된 것은 하나도 없다. 커피 값이라도 매일 모아 집을 구하려 계산해보니 400년 후인 청년들은 팍팍한 현실에 치여 꿈을 꾸기 시작한다. ‘여기가 아닌 곳은 어떨까?’ 어차피 살기 힘든 건 여기나 저기나 비슷할 것 같다. 대신 시골은 집도 싸다는데. 밭에서 먹을 거 키워 먹으면 식비도 줄지 않을까? 등등.

사실 현 도시청년들의 귀농에 대한 관심은 어마어마하다. 이 열망은 내 체감 상 ‘88만원세대론’이 등장한 후 한순간도 식은 적이 없다. 나는 이것이 구체적인 현상으로 드러난 결정적 계기를 2018년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개봉과 흥행이라고 본다. 2002년 연재를 시작한 일본(이 나라의 현재 모습이 한국의 미래라는 말은 정말 정확하다)의 만화가 원작인 영화의 내용이 바로 도시청년들이 그렇게 꿈꾸고 바라 마지않던 귀농의 삶 그 자체다. 늘 배고픈 20대 여성 주인공이 시골 빈집에 내려가 사계절을 나면서 소박하지만 든든한 삼시세끼를 해결하고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풍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먹거리들이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시골에 살고 있는데도 거기 살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도시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흥분해서 나에게 소감을 물어볼 때마다 이 말을 해준다. “리틀 포레스트, 장르가 뭔지 알아? 판타지야.”

혜원이 사는 그 예쁜 곳은 한국에 없는 곳이다. 단언컨대 자본과 연고 없는 20대 여성이 홀로 내려가서 안온하게 살 수 있는 시골은 없다. 일단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너무나 위험하다. 운이 좋게도 신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현업 농부인 남자친구와 지역농협 직원인 여자친구가 없다면.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원작에서나 한국에서나 ‘20대+미혼+여성’인 이유는 그들의 귀농열망이 가장 강렬함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이 느끼는 귀농장벽이 가장 높으며 정착에 성공할 확률이 현실적으로 가장 낮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국내 농업생태계와 농업정책은 철저히 남성중심적이다. 여성은 농촌에서 주체가 될 수 없으며(도시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사와 농업 인력을 기꺼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노동 풀, 심지어는 출산도구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 지자체의 ‘외국인며느리알선사업’이야말로 국내 농정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수준인지 알려주는 처참한 현실이다. 시골살이를 꿈꾸는 여성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농촌에서는 여자가 없다고 아우성일까? 답은 간단하다. 여성을 인격적 주체로 상정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물건 취급을 하는 농정과 농촌문화 때문이다. 물건취급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농촌에 여성인구가 유입되길 간절히 원한다면 일단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뭔지 파악이라도 해보라 권하고 싶다. 놀랍게도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도다. 아마 그들은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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