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으로 살기 위해

  • 입력 2019.06.16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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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여성농민으로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땅냄새, 풀냄새, 벌레들의 분주한 움직임, 호미질과 함께 불쑥 튀어나오는 지렁이의 치열한 몸부림, 해뜨기 전 차분히 가라앉은 안개, 이른 아침 부지런히 날아오르는 산새소리, 호미로 흙 끌어내는 소리에 맞춘 숨 가픈 나의 호흡과 씨앗에서부터 힘껏 솟아오른 생명들을 마주할 때 모든 존재에 대해 감동하고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더욱이 여성농민의 농사노동, 생산자로써의 소득은 형편없었다. 농사는 안정된 소득으로 이어지기 힘들었고 소규모로 지은 농산물은 공판장에 가지도 못했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밑천 없는 농사 살림은 늘 부족했고 불안했다.

농사를 늘려가며 농사소득에만 기대어 살림을 꾸려나갔던 남편은 그 때 “매달 몇 십만 원이라도 꼬박꼬박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힘에 부치고 불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갓 돌이 된 아이를 데리고 취직을 해야 했다. 그나마 농업과 농촌에 관련한 일을 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우리를 불안하게 했던 부족하고 불안정한 소득은 적게나마 직장을 통해 채워지고 심리적인 안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 오로지 여성농민으로 살아 보겠다는 나의 시도는 십여 년째 계속 반복되고 있다.

생활의 불안정은 결과적으로 농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행복감마저 무력화시킨다. 지역에서 농사짓고자 하는 30~40대 비교적 젊은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조금씩 여건과 지향에 차이가 있지만 단지 농사지으며 생활을 지탱해 낼 수 있는 삶을 희망할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성농민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짜여진 가시덩굴처럼 보인다. 오히려 다른 직업이나 부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농사가 소득이 안 되니, 가공을 해보고, 직거래를 해보고, 체험과 관광을 생각해보고… 어떤 언니는 보험을 하고, 어떤 언니는 배달을 하고, 어린이집이나 방과 후 교사가 되고 이렇게 여성농민은 여성농민이 아닌 길로 내몰리고 있다.

엄연한 현실이기에 소득을 낼 수 있는 방안을 내보지만 얘기가 구체화 될수록 농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밭을 교육용 텃밭으로 만들자, 체험용 농장을 꾸려보자”, “그냥 돈은 딴 데서 버는 게 나을 것 같다”, “우리세대가 할머니들 세대처럼 뼈 빠지게 농사지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한들 그 소득으로 만족할 수도 없고….” 답 없는 논의는 한숨으로 정리될 뿐이다.

어쩌면 부족한 것보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불안함이 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 실패로 이어지는 함정과 장애물은 많고 반면 실패에 대한 안정장치는 거의 없는 것이다. 여성농민으로 살기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농산물최저가격보장제도’ 도입! ‘여성농민수당’ 도입! 이미 여성농민들은 수없이 말해왔다. 지속가능하게 여성농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제도적인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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