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농민들 “지하수 부족, 한 가지 요인으로 볼 게 아냐”

  • 입력 2019.06.14 18:00
  • 수정 2019.06.17 11:1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자유한국당이 공주보 해체는 물론 수문개방마저 반대하는 주된 논리 중 하나가 ‘농업용수 부족’이다. 보 개방으로 인해 인근 농지의 지하수 수위가 낮아져 농사에 불편을 겪게 된다는 내용이다. 공주시 국회의원인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월 정부의 공주보 부분철거안 제시에 대해 “‘사람이 먼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현지 주민들의 의견을 개무시한 문재인정권과 맞서 싸우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럼 실제 현지 주민들의 의견은 어떨까? 정말로 자유한국당 주장대로 모든 농민들이 농업용수 부족에 시달리는가? 정말 농업용수가 부족하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정부는 정말로 주민들의 의견을 ‘개무시’하는가? 자유한국당이 공주보 개방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이라고 하는 공주시 우성면 일대 농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0일 충남 공주시 우성면 대성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유지송씨가 폐쇄된 소규모 관정을 가리키며 “4대강 공사 당시 대규모 준설 이후 지하수가 줄어 폐쇄했다”며 공주보 인근의 지하수 부족 현상은 수문 개방 이전부터 지역별로 존재했다고 밝혔다. 한승호 기자
지난 10일 충남 공주시 우성면 대성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유지송씨가 폐쇄된 소규모 관정을 가리키며 “4대강 공사 당시 대규모 준설 이후 지하수가 줄어 폐쇄했다”며 공주보 인근의 지하수 부족 현상은 수문 개방 이전부터 지역별로 존재했다고 밝혔다. 한승호 기자

“4대강 ‘준설’ 때부터 지하수 부족”

현장 농민들 중엔 실제로 지하수가 부족하다고 한 농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지적한 지하수 부족 요인은 결코 공주보 수문개방 한 가지로 정리될 성질이 아니었다.

우성면 옥성리에서 오이 농사를 짓는 박찬수씨는 지하수가 부족해진 건 4대강 준설공사가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강 준설공사 과정에서 강바닥 모래를 파기 전엔 강바닥 높이가 높았다. 원래 이 지역이 그리 물이 풍족한 지역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나를 비롯해 여러 시설농가들이 지하수를 파서 농사짓는 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그랬던 게 2000년대 후반 이명박정권 들어 준설공사를 거치면서 지하수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지하수 부족 문제를 겪었다. 1,000만원 비용 들여 중형 관정을 파 겨우 물을 대 왔다. 거의 100미터 깊이에서 물을 퍼 올려야 할 정도로 수위가 내려갔다.”

준설 이후 시에서 인근에 양수장을 지어줬다. 양수장은 수도작 농가엔 도움이 됐지만 지하수를 끌어 써야 하는 시설농가들 입장에선 도움이 안 됐다.

박씨는 공주보 수문개방과 관련해선 “지난해 수문개방 뒤 중형 관정을 판 농가들은 수위 변화가 크게 없었다”며 “소형 관정의 경우 수문개방 여부와 상관없이 진작부터 물을 퍼올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파봤자 수위가 얕아져서 물이 못 올라오는 것”이라 밝혔다. 박씨는 수문을 계속 개방하거나 철거하는 데 대해선 지하수 부족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인근 대성리 주민 유지송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유씨는 “공주보가 없었을 때는 지하수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100~130자 정도 깊이로 파면 지하수와 건수(장마 때 땅속에 스며들어 괸 물)를 같이 뽑아 올릴 수 있었다”며 “대규모 준설 이후 지하수가 예전보다 적게 나왔다. 4개의 관정을 팠는데 그 중 하나는 폐쇄해야 했다”고 밝혔다.

“축산단지 대형관정도 지하수 부족요인”

도천리 농민 김용덕씨는 “최근 공주시에서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우리 마을 인근에 대규모 축산단지를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주변에서 지하수가 부족하다고 토로하는 농가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축산단지에서 중형 관정들을 파면서 농가들의 지하수가 쭉쭉 빨려갔다는 것. 이로 인해 김씨는 쓰던 소형 관정 중 하나를 폐공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하수 부족문제는 공주보 수문개방과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민은 지하수위 저하 요인으로 강바닥 준설과 축산단지 조성, 수문개방을 동시에 언급했다. 해당 농민은 “공주보 준설 과정에서 지하수가 강으로 빨려들어가 수위가 낮아지게 됐다. 그로 인해 지하수 수압도 약해져 오이에 물을 제대로 주기 어려워졌고, 수막재배 과정에서 기름값도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고 한 데 이어 “2017년 축산단지가 들어온 이래 지하수가 더 부족해지게 됐는데, 지난해 수문개방 후부터 더욱 물 부족을 체감하는 상황”이라 말했다.

농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우성면 농민들이 지하수 부족상황을 겪는 것 자체는, 농민에 따라 편차는 있으나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및 일부 보수언론의 지적마냥 그 원인이 온전히 공주보 수문개방 때문만은 아니다. 인근 축산단지에서 판 대규모 관정이 주변 농가들의 지하수를 빨아들인 사례도 있었다. 근본적으론 이미 2000년대 후반 금강 바닥 준설로 인해 그때부터 지하수 부족이 야기됐다는 게 다수 농민들의 입장이다.

관정 파겠다는데 그것도 안 된다?

정진석 의원 말마따나 정부가 지하수 부족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의견을 ‘개무시’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환경부는 4대강 보 수문개방과 관련해, 지하수위 저하 우려가 있을 경우 민·관협의체를 통해 보 인근 지하수위 관측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예컨대 금강 백제보 인근 관측정의 지하수위는 인근 지역 농민들에게 매일 공지되고 있으며, 낙동강 구미보 등 지하수 이용 장애 우려지역의 민·관협의체에서도 지하수위 관측결과를 공유한다.

환경부는 공주보 인근 지하수위 관측결과에 대해 “보 개방과 직접적 관련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강수량 등 별도의 요인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성면 목천리의 경우 일부 농가들이 보 수문개방에 따라 지하수 부족문제가 두드러졌다고 밝혀왔다. 이에 환경부 직원들이 해당 농가들을 방문해 관정 건설 등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우성면 상서리 주민 이병우씨는 “언론에서 ‘지하수 부족한 지역’의 대표사례로 소개된 공주보 인근 쌍신동의 경우,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환경부에서 30여곳의 관정을 팠다”며 “그럼에도 보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 중 일부는 그 관정은 사용하지 않고 물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낡은 관정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공주시 아트센터 고마 앞에서 열린 보 철거반대 집회 때 김민호 쌍신동장은 “환경부에서 관정 30여곳 판다고 할 때 지역 주민 우롱하는 처사라 생각해 파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병우씨는 “지역 농민들은 공주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수문개방 시 지하수 부족 문제에 대한 대책을 민·관 합동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촉구했고, 시장도 그에 동의했다. 11일 시민대토론회도 그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자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며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농민들을 부추겨 그런 논의과정마저 방해하려 하니 개탄스럽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