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모내기 전에 돌아가리라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모내기 전에 돌아가리라
  • 심문희(전남 구례)
  • 승인 2019.06.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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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오늘(6일)은 농사일이 절정기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망종(芒種)이다. 오죽했으면 부엌에서 불을 때던 부지깽이도 일을 거들며, 발등에 오줌을 싼다는 말이 망종과 더불어 흘러 내려오는 말이 되었을까?

“그래도 지금은 양반이여.” 별일도 아니라는 말을 이리 표현하시는 어머님이 땀을 흘리며 내뱉는다. 온 동네 사람들이 공동모내기를 해야 했는데 지금은 이앙기 한 대가 하루에 동네 들판 10필지는 족히 심어 제끼니 대단하다 싶으신가 보다. 소와 쟁기로 논 갈고 밭 갈던 때와 어찌 견주겠나 싶긴 하지만 50마력의 트랙터가 논을 갈고 저수지에 수로가 쫙쫙 나있어도 예나 지금이나 바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모작 논의 벼들은 벌써 땅 맛을 당기고 바람 따라 춤추기 시작한다. 아직 덜 여문 보리는 오늘 내일 수확을 앞두고 있다. 며칠 후면 진짜 전쟁터가 될 것이다. 마늘과 양파는 벌써부터 캐기 시작한다.

하지가 보름여 남았건만 성질 급한 농부들은 감자도 캐기 시작한다. 논두렁 밭두렁에 콩을 심고 지난달 초에 심었던 참깨 밭은 솎는 작업이 시작됐다. 어머님 이야기 따라 과거로 시간여행할 필요도 없이 ‘망종’ 공감 백배이다.

지난달 11일은 동학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처음으로 제정된 날이다. 무기고를 부수고 무장한 후 그 동안 억울하게 빼앗겼던 세곡들을 창고에서 꺼내 농민들에게 나눠줬던 농민군의 모습,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날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사발통문을 돌리며 요샛말로 아스팔트 농사까지 짓던 농민들이 죽어가면서 부르던 노래 ‘모내기 전에 돌아가리라. 황새떼 오기 전에 돌아가리라.’ 농부가를 목 놓아 부르며 손발 맞춰 모심기를 하고자 했던 그들은 그 꿈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섰을까?

통일품앗이를 꿈꾸던 트랙터는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 제재라는 올가미에 갇혀 여전히 길에 서있다. 기껏 정신없이 씨앗을 들이지만 풍년이 들면 농민들의 주머니가 더욱더 얇아지는 농사는 아직도 여전하다. 농업의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절규, 농민도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절규는 끝없는 도돌이표 메아리가 돼버렸다.

구멍이 비뚤어진 단추는 다시 풀어 채워야만 한다. 그 첫 단추 꿰기가 시작됐다. 바로 농민수당이다. 가족단위, 농가단위가 아닌 사람중심의 농업의 시작 바로 농민수당이다. 농촌에서 농사짓는 모든 이에게 농사만 지어도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첫걸음마 정책부터 모든 농업정책을 농민이 중심이 돼 하나하나 바꿔야 한다.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5000년 역사의 민족농업을 부활시키는 것까지 갈 길이 멀지만 모든 길은 첫걸음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기에 모두의 어깨가 무거운 것 또한 사실이다. 동학의 농민들이 꿈꾸던 세상 아직도 여전하기에, 모내기 전에 돌아가리라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그들이 ‘망종’의 망중한에 문득 내 가슴에 쏙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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