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22] 삼일대항쟁, 백년의 꿈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농민소설가 최용탁님의 근대사 에세이를 1년에 걸쳐 매주 연재합니다. 갑오농민전쟁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대사를 톺아보며 민족해방과 노농투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 입력 2019.06.09 18:32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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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우리 헌법 첫머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해방 후에 미군정이 들어온 이후에 제정된 헌법이어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명시했는가 싶지만 그 뿌리는 저 멀리 삼일에 닿아있다. 흔히 삼일운동이라고 불리던 민족대항쟁은 그 내부에 혁명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왕조의 백성, 대한제국의 신민이었던 사람들이 ‘민국’, 즉 민인이 주인인 나라를 외쳤던 것이다. 낡은 체제를 바꾸려는 혁명의 열기를 읽어야 삼일항쟁이 제대로 보인다.

또한 독립선언의 내용을 보면, 서구 제국주의를 따라 변신에 성공한 일본을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라 규정하고 있다. 조선독립은 조선인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임과 동양평화를 이루어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한 가치, 즉 민주공화제와 반침략주의, 세계평화를 위한 꿈이 당시에 잉태된 것이었다. 그래서 올해 정부가 정한 삼일항쟁 표어인 ‘백년의 꿈, 백년의 미래’가 썩 적절해 보인다.

3월 1일 대한문 앞의 시위 군중.
3월 1일 대한문 앞의 시위 군중.

그렇다면 어떻게 삼일대항쟁은 그토록 혁명적인 생각을 바탕에 깔 수 있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일제가 행한 가혹한 억압이 길어지고 고종이라는 봉건 국왕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자연발생적 소요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일견 냉소적인 이러한 견해 또한 일정한 진실이 들어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당시는 지금과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서울역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였고 날마다 중국과 유럽에서 발행되는 신문이 들어오고 있었다. 분단 이후에 섬으로 고립된 우리 의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국제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1900년대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 즉 거대 제국의 몰락과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유럽의 급변 등을 적어도 실시간으로 호흡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바야흐로 전세계에서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수립되고 있었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 그런 국제정세를 접했을지라도 당시는 극도로 정보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사람들 사이에 공론이 될 수 있었다. “아무개가 중국에 갔다 왔는데, 나라가 아주 다른 나라한테 넘어갔다는구먼.” 이런 식의 구전으로 정보가 사람들에게 유통되었고 반론없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불가능한 공론화가 역설적으로 정보의 빈곤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여, 삼일 당시에 민주주의, 혹은 공화제에 대한 민인들의 의식이나 열망은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교적 온건한 내용의 기미독립선언서.
비교적 온건한 내용의 기미독립선언서.

삼일대항쟁 내용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에 앞서 또 하나 풀어야 할 의문이 있다. 과연 맨손의 민인들은 총칼을 든 일제와 어떻게 싸우려 마음을 먹었을까, 소위 비폭력 평화시위라는 방식으로 정말 일제를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등이다. 이백만에 이르는 항쟁 참여자들의 생각을 뭉뚱그려 짐작할 수는 없지만,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배포하다가 체포된 보성인쇄소 직원이었던 인종식은 일제 경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시위로 일본이 물러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만인이 죽어 백만 인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 만인을 죽이면 만인의 피가 백만을 물들이고, 백만을 죽이면 백만의 피가 천만을 물들일 것이오. 그럼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

그랬다. 삼일대항쟁은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독립의 의지를 확인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민주공화정을 꿈꾸었고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기틀이 되었다. 제헌헌법 전문에서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란 표현이 이를 확인해준다. 결국 삼일의 정신이 4.19와 광주항쟁, 유월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뿌리였으니, 백년을 이어온 민인들의 꿈이자 꺾이지 않는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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