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75] 농민은 무엇인가

  • 입력 2019.06.09 18:31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계청에서 농산물 생산비를 조사할 때 농민들의 자가 노동 비용은 직접투입된 노동시간만을 따져서 계산한다. 예컨대 감자를 생산한다면 감자종자를 파종할 때, 북돋울 때, 비료줄 때, 수확할 때 등 작업별로 몇 시간이 투입됐는지를 파악한 다음 거기에 노동단가를 곱해 산정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가 노력비 즉 농민의 생산활동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생산에 직접투입되는 농작업 시간만이 계상된다. 그러나 농사와 관련되는 노동 즉 농사일은 농작업에 직접투입되는 시간 외에도 훨씬 많다. 예컨대 농사정보를 얻기 위한 교육프로그램 참여나 인터넷 검색에 소요되는 시간, 농자재구입을 위한 쇼핑이나 검색에 들어가는 비용, 이웃 농가나 선진농가를 직접 방문해 듣고 보고 배우는 시간, 작부체계를 구상하고 기획하는 시간 등은 계상되지 않는다.

굳이 농산물 생산비 중 농민의 자가 노동보수 계산 방식을 문제시하는 것은 농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농산물 생산자로서의 농민은 농산물 생산에 소요되는 직접비용만 그나마 계상하기 때문에 직업으로서의 농업종사자는 엄밀한 의미에선 아닌 것 같다. 우리사회가 그렇게 예우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농촌에 터 잡고 살면서 농사지어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그 어떤 직업보다 확실한 직업이면서도 일용노동자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이 농사일이고 농사와 관련된 일의 연속이 아닌가.

그나마 농업종사만으로 버는 수입은 전국평균 농가가 연간 1,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보니 농외 및 기타소득이 전체소득의 3분의 2를 넘는다. 농사 외에 건축 일용노동자로 나서기도 하고 부업에 매달리기도 한다. 때로는 산불감시요원으로 나가 일당을 받기도 하고, 부인은 공장에 나가기도 한다. 농사일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수입농산물과 식품은 농촌 구석구석에서도 대놓고 판매되고 있고 농협매장에 등장한지도 오래다. 1톤 트럭에 수입산 체리, 망고, 오렌지 등을 가득 싣고 싼 가격으로 농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이는 결국 우리 농산물 가격폭락으로 이어지고 더불어 농가 수익성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기후환경 변화로 인한 위험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시대 농민 대부분은 고달프다.

봉급생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업체나 자영업자 사장도 아니고, 시간제 근로자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농산물 생산 전문가로서의 당당한 직업도 아니다. 세상에 이런 직업이 또 있는가 모르겠다.

최근에는 농민에게 농산물생산 전문가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 가공·유통·관광 쪽으로 사업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소위 6차산업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농사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일 저일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가공도 하고 유통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관광도 하라고 하니 농민들은 정말 힘들다.

요즈음 지속되는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잘 자라지 않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주위의 농민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자꾸만 죄송하고 미안해진다. 왜일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