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도매법인의 매매를 보며 드는 단상

  • 입력 2019.06.09 18:29
  • 기자명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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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숙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6개 농산물 도매법인 가운데 하나인 동화청과가 771억원에 신라교역으로 넘어간다. 2015년 사모펀드인 칸서스자산운영이 540억원에 인수한 이래, 불과 5년 만에 230억원이나 오른 것이다. 2016년에는 한일시멘트가 단 1년 만에 60억원을 얹어 6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가락시장 청과 5개 도매시장 평균 영업이익률(2013~2017년)은 16.65%로, 업종 평균 대비 6.6배, 현금배당 성향은 평균 33.2%에 달한다.

2018년 6월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판매장려금 및 위탁수수료를 공동으로 정하기로 합의(담합)하는 등, 불공정 거래 행위가 드러난 5개 사업자 중 4개 도매법인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도매시장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서울시와 농림축산식품부에 이의 협조를 요청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도매법인 간 경쟁여건이 마련돼 출하자의 부담이 줄어들고 물류 개선 및 효율화 등이 이뤄져 출하 농민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경쟁 촉진과 공정한 거래질서의 확립 및 환경 개선 등 도매시장 개설자의 의무를 다하려고 해도 현행「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 도매시장 개설자와 도매시장법인, 공판장, 시장도매인에 대한 평가는 중앙정부에서, 중도매인에 대한 평가는 도매시장 개설자가 진행하고, 중앙도매시장의 모든 업무규정 변경사항에 대해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돼있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전국 도매시장의 개별 특성을 반영해 제대로 평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업무규정 중 중요 변경사항에 한해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개정해야 한다.

공정위가 제시한 도매법인 간 경쟁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위한 서비스 및 품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현재 5개 청과 도매법인 외에「농안법」제24조에 명시된 ‘공공출자법인’이 설립된다면 공익을 위한 경쟁으로 발전해 ‘생산자는 제값 받고 소비자는 제값 주는’ 공정한 거래가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과거 행정입법으로 무력화된 시장도매인제도를 조속하게 실시해 유통주체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관세법」에 따라 통관단계에서 가격이 1차로 결정돼 도매시장에 반입되는 품목과 산지에서 경매 등으로 가격이 1차로 결정돼 도매시장에 반입되는 품목은 비상장거래 허가 가능 품목으로 지정하는 등「농안법 시행규칙」제27조 상장예외거래 허가 대상 품목을 구체화·명확화해 불필요한 유통단계를 줄여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지 정부, 도매시장 개설자,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시장도매인 등 유통 주체들이 모여 돌아보기, 둘러보기, 내다보기를 통해 통렬한 반성과 함께 유통혁신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공영도매시장에 막대한 혈세가 투입돼야 할 근거가 없어지고 일본처럼 효율 중심의 자유경쟁체제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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