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손바닥 안 축산농가

  • 입력 2019.06.09 18:19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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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허가축사 행정처분 유예기간 종료가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적법화를 했건 안했건 혹은 못했건, 현장 축산농가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환경부가 진짜 축사 폐쇄명령을 내릴 것인지도 이슈고 생계를 위해 축사를 개보수하고 가축 입식을 늘려 빚더미를 끌어안고 있는 동료 농가들이 그린벨트나 수변구역과 같은 입지제한구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정말 축산을 포기하게 될 것인지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안타깝지만 시대의 변화 앞에 축산을 하는 것이 죄일 뿐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어깨 축 처진 모습도 보인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의 진짜 속내는 뭐냐’는 말로 끝이 난다.

수질 오염과 악취 민원의 원인으로 지목받던 축산에 대해 정부는 축산농장에서 가축분뇨가 얼마나 생산되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리하기 위해 ‘무허가축사 적법화’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라졌고 앞으로도 사라지게 될 농가는 한우 번식농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충남 홍성군에서는 지난해 3월 24일까지 적법화를 완료하지 않았던 농가 가운데 절반을 넘는 수가 적법화 포기를 선언했는데 이들 중 절대다수는 후계자가 없고 농장주는 연로한데다 사육이 어려운데 소득은 생계를 유지할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 한우 번식농가였다. 대부분 행정처분에 따라 폐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그나마 폐업을 하지 않는 농가는 관련 법들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100m² 이하로 축사와 사육 규모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이는 한우 비육농가를 너머 한우 가격에 따라 가격이 변화하는 육우 사육농가, 홀스타인 숫송아지를 생산하는 낙농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축산업계 일대의 지각변동이 될 것이지만, 무엇보다 한 축종의 생산기반이 사라지고 소규모 농가가 도태되고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살아남은 농가는 살아남느라 진 빚을 갚기 위해 규모를 더욱 늘려야만 한다.

결국 미허가축사 적법화는 전업화·기업화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축산을 더욱 규모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언뜻 잘 정리된 것 같아 보일지 모르겠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더욱 심화됐을 뿐이다.

기자가 축산을 출입처로 배정받았던 초기에 들었던 “정부 입장에서는 농가가 규모화 되고 수가 적어지면 수급조절이나 방역 같은 관리가 용이하지 않겠느냐”던 한 공무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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