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아닌 ‘부활’, 국산 바나나

  • 입력 2019.06.07 16:5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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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수입과일로 인식돼 온 바나나에도 국산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지난 4일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열매를 딴 바나나 줄기에서 이파리를 떼어내고 있다. 하우스 곳곳에 내년에 수확할 바나나 줄기가 자라고 있다.한승호 기자
수입과일로 인식돼 온 바나나에도 국산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지난 4일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열매를 딴 바나나 줄기에서 이파리를 떼어내고 있다. 하우스 곳곳에 내년에 수확할 바나나 줄기가 자라고 있다.한승호 기자

 

바나나는 현재 마음만 먹으면 쉽게 먹을 수 있는 맛 좋은 과일이다. 물론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바나나가 수입과일이라는 사실은 당연히 인지하고 있다. 실천이 잘 안 되고 있긴 하지만, 농업지 기자의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그 매력적인 맛에도 불구하고 될 수 있으면 국산과일을 소비하려 한다.

바나나가 수입과일이라는 건 젊은 세대에겐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 주신 바나나를 까먹으면서 자연스레 옛날 얘기를 전해 듣곤 했다. 처음 등장했을 당시의 바나나는 소위 ‘부잣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는 것. 그 때 우리나라의 수출량은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산이 무조건 사치품으로 취급될 만큼 별 볼 일 없던 시기였다. 그랬던 고로,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당연스레 이것을 수입과일이라 인식하며 먹어왔다. 아직 국산 바나나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지금도 바나나는 전부 수입산이라 생각하며 먹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큰 오해 한가지는, 그 옛날 얘기 속 바나나들이 전부 수입산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필리핀산 바나나가 수입되기 시작한 이후, 제주도에선 1980년대 초부터 시설에서 자란 국산 바나나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구상무역이 이뤄지던 당시의 수입 바나나는 턱없이 적었던 물량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었고, 덕분에 국산 바나나는 높은 생산비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소득 작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바나나 재배면적이 절정에 달하던 1988년의 통계를 보면 바나나의 수입량은 약 1만3,000여톤이었던 반면 국산 바나나의 생산량은 약 2만1,000톤에 달했다. 옛 이야기 속 바나나는 사실 셋 중 두 개쯤은 국산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산 바나나는 채 10년도 안 되는 역사를 남기고 그 수명을 다했다. 지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되며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자 한동안 바나나는 이 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농산물 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필리핀산 바나나가 kg당 1,000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쏟아지자 모든 농가가 폐작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이후 바나나 수입량은 꾸준히 늘어 지난 2000년 약 18만 톤이었던 것이 작년엔 42만7,260톤을 기록했다. 2013년 이후로는 매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런데 25년이 흐른 지금, 극소수의 농민들이 다시 바나나 농사에 도전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수차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탓에 국내에서 생산되던 수많은 작물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생각하면, 수입산이 100%를 점령한 시장에서 국산으로 정면대결을 시도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국산 바나나가 부활에 성공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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