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다방 DJ④ 변두리 다방에도 ‘뮤직 박스’는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다방 DJ④ 변두리 다방에도 ‘뮤직 박스’는 있었다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9.06.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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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1970년대 중반, 서울에서 입시공부를 작파하고 음악 감상실 등을 전전하던 김동욱은 고향인 원주로 내려간다. 원주터미널 인근에 다방을 차릴 터이니 자신과 교대로 디스크자키로 일해 볼 의향이 있느냐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들 대학 보내겠다고 품 팔고 소 팔아서 등 떠밀어 상경시켰던 부모의 처지에서 보자면…그는 말하자면 ‘돌아온 탕아’였다.

“지방 소도시의 경우 음악다방이라 해봐야, 서울의 음악다방하고는 달랐지요. 그저 전축 하나 들여놓고 보통의 다방으로 문을 열었다가 젊은 층 고객들이 와서 자꾸 음악을 틀어 달라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이참에 파트타임으로라도 음악 틀어주는 사람을 하나 쓰자, 해서 음악다방 흉내를 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일하게 된 원주터미널 근처의 ‘지구음악다실’은 달랐어요. 앰프도 꽤 고급으로 설치하고 음반도 2,000장이나 갖췄으니까요.”

그 무렵에는 아무리 작은 다방이라도 이른바 뮤직 박스라는 것을 갖추지 않은 곳은 없었다. 변두리 일반 다방의 경우 200장 내외의 레코드가 꽂혀있는 뮤직 박스는 대개 주방 옆 공간에 자리했다. 정다방, 학다방, 종점다방, 삼거리다방…등 다방 이름이야 각각이었으나 앞 유리에다 영문자 ‘M·U·S·I·C·B·O·X’를 아치형으로 휘어서 새겨놓은 모양새는 변두리 다방 뮤직 박스의 ‘표준 사양’이었다.

그렇다면 전국에 수도 없이 많았던 다방의 주인들은, 뮤직 박스에다 구색 갖춰서 꽂아둘 음반들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했을까?

“제법 규모를 갖춘 음악다방이야 서울 광화문의 레코드점에 가서 신품을 구입했지만, 디스크자키가 따로 없는 변두리 다방의 경우 청계천의 중고 음반 가게들이 공급처였어요. 청계천 중고 가게에 가서 다방 하나 신장개업한다고 일단 얘기를 하면….”

-어서 오세요. 음악다방 개업하게요?

-아뇨. 주택가 변두리 다방이라 나이든 사람이 주로 드나들 텐데….

-아, 그런 다방도 요즘 뮤직 박스 없으면 장사 안 돼요. 나이든 손님들도 남인수나 황금심 노래라도 틀어줘야 커피 마실 것 쌍화차로 바꿔 마신다니까요. 몇 장이나 필요하세요?

-글쎄요, 다방이 별로 넓지 않은데 어느 가수 노래를 구비해야 할지….

-걱정 마세요. 200장, 300장, 500장…말씀만 하시면 아주 잘 나가는 인기곡으로다 구색을 좍 맞춰서 준비해놓은 세트가 있으니까.

식당 개업할 때 밥그릇 몇 벌 하는 식으로 레코드를 아예 규모별로 세팅을 해놓고 팔았다. 물론 레코드 자체가 중고품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전축에 걸고 틀다 보면 스피커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거나 참깨를 볶기도 하고, 더러는 홈이 패어서 바늘이 제자리를 돌기도 했다.

-예, 김양아, 배호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 끝났다. 판 뒤집어라.

-마담 언니, 나 배달가야 돼. 주방 삼촌 시켜.

-주방 삼촌! 뮤직 박스에 가서 판 좀 뒤집어!

-예, 뒤집으러 갑니다!

그 시절의 다방 풍경이 이러하였다. 마지막 노래가 끝나면 보통은 ‘주방 삼촌’이 후다닥 뮤직 박스로 달려가서는 판을 갈아 끼우거나 혹은 앞뒤를 뒤집는 DJ 노릇을 겸하였다. 그래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디스크자키는 ‘뒤집어 제끼는 사람’이라는 우스개가 유행하였다.

또한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먹고 잘 데가 없어서 다방에서 그럭저럭 디제이 노릇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외지에서 온 젊은 사람이 오갈 데가 없으니까 DJ를 자칭하고 다방에 와서는, 뮤직 박스에 종일 들어가 앉아 ‘판돌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다방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업계에서는 그런 친구를 ‘노숙자’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다방 레지를 사이에 두고 주방장과 ‘노숙자’ 사이에 심각한 삼각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니까요. 재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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