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연천을 다녀오면서

  • 입력 2019.06.02 18:00
  • 기자명 전용중(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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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중(경기 여주)
전용중(경기 여주)

오늘은 연천을 다녀왔습니다.

연천군농민회가 처음으로 통일 모내기를 하는 날입니다. 참으로 경사스런 날입니다. 연천은 불과 몇년전만 해도 북쪽의 총탄이 날아들고, 대북방송 소리가 어지럽던 곳입니다. 한국전쟁 전에는 북쪽 지역이었고 전쟁 후에는 군사 밀집지역이다보니 경상도보다도 더 보수적인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런 곳에서 처음으로 통일 모내기를 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정상회담과 지방선거를 지나면서 지역민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물론 평화 분위기가 위축됐던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심리도 작용했겠지만 농업회생의 근본적 활로가 평화와 통일에 있다는 자각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전농의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에 어찌 보면 가장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접경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운동을 전개하지 못한 미안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내기 행사에 가기 위해 새벽부터 오이와 호박을 따느라 아침밥도 거른 채 연천으로 달렸습니다. 내가 사는 여주와 연천은 경기도에서 최남단과 최북단입니다. 과속과 불법(?)으로 겨우 행사시간에 대어 도착했습니다. 이미 많은 회원들이 나와 천막을 치고 간단한 행사와 기원고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농민회, 친농연, 전교조가 주축이 되고 군수, 군의원들도 참석해서 농민회 통일사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기염을 토합니다.

준비한 3,000평의 논에 모내기를 끝내고 뒤풀이를 하면서 회원들은 한껏 들떠 있습니다. 마음은 벌써 통일트랙터를 타고 연백평야를 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이곳 연천은 분단 전까지 품앗이를 하던 지역이니까 그 설렘은 더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서울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셨다고 하지요. 분단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을 때 끝도 없는 암담의 벽이지만 통일이 이미 됐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그 벽은 구멍이 나고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끼리 모내기를 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한 논에서 다리 걷고 모내기를 할 날이 오늘 시작이구나 싶었습니다.

연둣빛으로 변한 논을 보면서 문득 임진각에 멈춰선 통일트랙터 생각이 났습니다. 4월 27일, 우리는 임진각에서 멈췄지만 통일의 논갈이를 위해 우리는 나선 것이고 우리의 마음속에선 이미 통일농사의 씨앗을 뿌린 것입니다. 씨앗을 뿌린 농부는 가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름날 땡볕과 장마와 가뭄도 악착같은 농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이 농부고 그것이 순리입니다.

행사를 마치고 여주로 돌아오면서 4월 27일 이후에 조금은 답답했던 가슴이 설렘으로 되살아옵니다. 찬물에 손 불어가며 담궜던 볍씨가 어느새 들판을 연둣빛으로 진녹색으로 바꿔 놓고 있습니다.

통일농사의 들판에 씨앗을 뿌린 농부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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