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르신들의 애환 담긴 밀랍떡을 지키겠다

산음리 밀랍떡 지킴이 최종호·김윤주 부부 이야기

  • 입력 2019.06.02 18:00
  • 수정 2019.06.02 20:5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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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최종호·김윤주 부부가 지난달 28일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에 위치한 가공시설에 밀랍떡 복원에 깃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최종호·김윤주 부부가 지난달 28일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에 위치한 가공시설에 밀랍떡 복원에 깃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에서 토종벌을 10년 이상 길러온 최종호씨. 그는 사라져가던 밀랍떡(밀떡) 복원의 1등공신 중 하나다.

“원래 서울에서 학원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해서 토종벌을 기르기로 결심했죠. 처음엔 충북 괴산에서 귀농 수업을 받고 난 뒤 전북 남원에서 벌통 150구를 구해 이곳 양평에서 토종벌 사육을 시작했습니다.”

최씨와 밀랍떡의 첫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2009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쌈짓길의 한 갤러리에서 최씨를 초청해 먹거리 관련 교류를 가졌는데, 그곳에서 밀랍떡을 처음으로 맛봤다.

“이후 산음리에 귀농해 마을주민 분들과 만났을 때 ‘이 마을에서 밀랍떡을 해 먹는 농가가 어디냐’고 물었어요. 거의 대부분의 마을 어르신들이 밀랍떡을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 먹었더군요.”

밀랍떡을 만들어 먹은 경험이 있는 주민들은 모두 고령이었다. 반면 그 자녀세대로만 가도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만들어 먹는 방법을 모르는 건 물론이고, 밀랍떡의 맛 자체에 대해서도 익숙치 않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최씨와 아내 김윤주씨는 사라져가는 밀랍떡의 제조법을 복원하고 지켜나가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토종벌 사육 과정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밀랍, 즉 벌집을 가열해 만든 물질은 밀랍떡의 주 재료였다. 최씨 부부는 양평에 귀농한 직후부터 ‘토종벌의 꿈’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토종벌꿀을 가공한 식품들을 연구해 왔는데, 2013년 밀랍떡의 제조·공급확대를 위해 마을기업 ‘양평착한떡마을’을 만들었다.

최씨 부부는 밀랍떡을 만들기 위한 기본 원칙을 세웠다. ‘친환경·토종·지역먹거리’란 3대 원칙에 해당되는 식재료를 쓰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먹거리를 구하는 게 어렵다면, 최소한 이 중 한 가지엔 해당되는 먹거리를 반드시 쓰고자 했다. 밀랍떡에 들어가는 쌀의 경우 가급적 양평군 친환경 쌀을 쓰나, 그것만으론 부족할 시 전남 장흥군 정남진의 토종 친환경 쌀 ‘고대미’도 쓴다. 밀랍은 최씨 부부가 만든 것을 쓴다.

최씨 부부는 ‘토종벌의 꿈’에서 대추청과 도라지청도 만든다. 대추청에 들어가는 대추는 양평에서 생산된 대추로, 도라지청의 도라지는 인근 홍천군의 영농조합법인에서 구하는 등 가급적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고자 노력 중이다.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2009년부터 전국 각지에 발생한 낭충봉아부패병은 전국 토종벌의 90%가 폐사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 영향을 끼쳤다. 최씨 부부의 토종벌들도 두 차례의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래도 장기간 토종벌을 재배하며 밀랍떡 제조를 위해 모아온 밀랍으로 3~5년 치의 밀랍떡은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밀랍떡이 더 널리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끌수록, 남아있는 밀랍은 더 빨리 떨어질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 8월 농촌진흥청에서 낭충봉아부패병에 저항성을 가진 토종벌을 개발했다는 건 희소식이다. 기존 토종벌은 낭충봉아부패병에 걸리면 7일 안팎의 기간에 폐사했지만, 새 토종벌은 이 병에 걸리지 않고 꿀 채집능력과 청소력도 더 뛰어나다.

그럼에도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최씨는 “현재 농진청은 저항성 벌 보급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데, 일선 농가에 저항성 벌이 보급되기까진 최소 몇 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한 데 이어 “또한 아무리 저항성 벌을 개발해도 외지 벌과 저항성 벌이 교배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병에 취약한 벌들이 나올 수도 있다. 이는 고립된 지역에서 기존 벌을 저항성 벌로 완전히 교체하지 않는 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 걱정을 표했다.

한편으로 도시민들의 입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최씨의 오랜 고민이다. 각종 설탕 및 첨가물이 들어간 떡에 익숙한 도시민들 입장에선, 첨가물 하나 없이 순수 ‘자연의 맛’으로 만들어낸 밀랍떡 맛이 익숙치 않을 수 있다. 이에 최씨는 밀랍떡을 갖고 와플, 피자를 만들기도 했다.

“양평군 공무원들에게 ‘밀랍떡 피자’를 먹여본 적이 있다. 재료는 밀떡과 장아찌, 산나물, 무항생제 닭가슴살, 임실 자연치즈였다. 장아찌는 고르곤졸라를 대체한 것인데, 고르곤졸라는 전량 수입품이기 때문이다. 원래 피자도 안 먹던 공무원들인데 밀랍떡 피자는 맛있게 먹더라.”

주변 사람들 중에도 최씨에게 “설탕을 넣어라”고 권유하는 이들이 일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씨는 요지부동이다. “설탕을 넣는 순간 그 동안 내가 밀랍떡을 지키기 위해 벌여온 활동의 의미는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현재 밀랍떡은 양평 리버마켓을 비롯한 각지의 먹거리장터에 공급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의 슬로푸드 매장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서울 동대문에도 밀랍떡을 팔던 매장이 있었으나 수익상의 문제로 정리했다. 현재 최씨는 판로를 늘리기 위해 양평군과 논의 중인데, 일단 6번 국도 상 양평휴게소에서 판매 겸 홍보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이와 함께 밀랍떡의 ‘친환경·토종·지역성’ 강화를 위해 두레생협 소속 팔당생명살림과 친환경 쌀 수매 관련 논의도 진행 중이다. 팔당생명살림과 이야기가 잘 풀릴 시,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통한 떡 제조가 더 용이할 것이란 게 최씨의 판단이다.

끝으로 온갖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최씨가 밀랍떡 만들기에 전념해 온 이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수익만 생각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면 애시당초 접었을 겁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밀랍떡을 지키고 싶었고, 이와 같은 우리 토종먹거리가 어떻게든 지켜지길 바라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매년 적자를 보면서도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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