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음리 밀랍떡 이야기

  • 입력 2019.06.02 18:00
  • 수정 2019.06.02 21:5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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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산음리 밀랍떡 복원의 일등공신인 최종호씨가 지난달 28일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에 위치한 가공시설에서 밀랍떡으로 방금 만들어낸 와플을 내보이며 이야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산음리 밀랍떡 복원의 일등공신인 최종호씨가 지난달 28일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에 위치한 가공시설에서 밀랍떡으로 방금 만들어낸 와플을 내보이며 이야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가장자리에 위치한 산골마을 산음리. 해발 480미터의 소리산 기슭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마을엔 자랑거리가 있으니, 이름하여 ‘밀랍떡’이다. 산음리 주민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 밀랍떡을 접하며 살아왔다. 산음리에 50년째 살고 있는 이연순(77) 할머니도 그 중 한 명.

“5월 단오가 되면 인근 산에 가서 떡취(취나물의 일종)를 뜯으러 다녔어요. 당시엔 기계도 없다 보니 집에서 불 때서 찹쌀과 떡취 섞은 걸 시루로 찌고 떡메를 친 다음에 각 농가에서 기른 토종벌로부터 만들어낸 밀랍을 섞었었죠. 떡메 치는 일을 집집마다 서로 도와주던 일도 생각나요.”

이 할머니는 원래 강원도 춘천의 한 농촌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원래 살던 마을은 1960년대 말 소양댐 건설로 인해 수몰됐다. 이 할머니 가족은 멀고도 험한 산길을 걸어 산음리까지 왔다. 지금은 사라진 옛 마을에서도 이 할머니는 밀랍떡을 해먹었다. 밀랍떡은 그에겐 지금 산음리의 명물일 뿐 아니라 옛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밀랍떡은 옛날부터 경기도 동부, 강원도 서부 일대 산간지역 농민들이 해 먹었던 떡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서유구 선생이 쓴 백과사전 ‘임원경제지’에 따르면, 옛날 사람들은 노란 밀랍을 기름 삼아 흰 밀가루 한 근에 넣고 달여 떡을 만들었고, 이를 배부르게 먹으면 100일이 돼도 굶주리지 않았다고 한다. 제조법은 약간 달랐을지언정, 공통으로 밀랍을 떡 재료로 썼다는 특징이 있다. 쓰고 남은 밀랍은 입술에 ‘전통 립밤’으로 바르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만 해도 워낙 쌀이 귀하다 보니, 밀랍떡도 늘상 먹을 순 없었다. 이연순 할머니는 “어릴 땐 쌀이 귀해서 명일(명절) 때만 밀떡을 해먹었고, 평소엔 옥수수로 밥을 해먹을 정도로 식량이 귀했다. 만들어놓은 밀떡은 당시엔 냉장고가 없어서 우물에 담갔다가 꺼내서 먹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토종벌을 길렀기에, 밀랍떡은 경기·강원도의 내륙 산간지대에서 제법 익숙한 먹거리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양봉업이 한봉(韓蜂)업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농가마다 있던 토종벌도, 밀랍도, 밀랍떡도, 밀랍떡이란게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었다. 같은 양평군 내에서도 양평읍, 용문면 사람들은 밀랍떡을 모른다.

사라져가는 토종먹거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밀랍떡은 2015년 국제슬로푸드협회 지정 ‘맛의 방주’ 먹거리 목록에 등재됐다. 맛의 방주는 절멸위기에 빠진 토종먹거리의 보전을 위해 국제슬로푸드협회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밀랍떡을 비롯해 현재 대한민국의 100가지 토종먹거리가 맛의 방주에 등재돼 있으며, 각지에선 이 먹거리들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의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맛의 방주 프로젝트를 포함한 슬로푸드 운동은 토종먹거리 다양성의 보전뿐 아니라, 그 배경에 담긴 지역 농업의 가족농 중심 재구성, 지역의 토착문화 보전, 그리고 지역 공동체 복원 등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밀랍떡 복원은 산음리 밀랍떡의 맛을 살리는 일임과 함께, 과거 집집마다 토종벌을 기르던 우리 옛 문화의 복원과도, 서로 떡메를 찧어주던 마을공동체의 훈훈한 전통을 복원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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